끝까지 냉정하게 └ 스릴러/드라마





어제 [비밀의 숲]이 종영했습니다.

솔직히 [미생] 이후 이런 드라마를 또 볼 수 있을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여느 드라마와 같이 마지막은 냉정함을 풀고 좀 도취된 듯한 느낌이 들어 그 부분은 아쉬웠지만, 메세지로 강한 귀결을 내야하는 드라마의 특성상 끝까지 건조할 수는 없었겠죠. 그나마 그 '도취'된 느낌도 일반적인 드라마의 그 도취보다는 상당히 절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바운더리 안에서 선을 긋고 최선을 다했던 거죠. 그렇기에 끝까지 인상적인 드라마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비밀의 숲]의 차가운 분위기가 [미생]과 같으면서 다릅니다. [미생]이 회사원들과 그 군상들을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그들을 성공시키고 구원한 한편, [비밀의 숲]은 유독 냉정하기 때문이죠. 모든 등장인물에게 냉정합니다. 아니 플롯 자체가 자신에게도, 관객에게도 냉정해요.

비밀의 숲은 완전한 승리도 아니고, 끝까지 싸워야 함을 암시하며, 경우에 따라 특정 주인공들은 고생길이 열렸음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동시에 러브라인도 성립하지 않았어요. 신파도 절제했습니다. 어떤 주인공들은 울지만, 신파로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자신만의 결단으로 다시 냉정함을 찾는데 거기서 드러나는 엄청난 캐릭터성, 위압감이 느껴집니다.

정말 감성주의 사회에서 이성으로 철저하게 빚어낸 기이한 드라마인 셈입니다. 규칙을 깬 웰메이드 드라마인 [미생]조차 결말가서 세계관과 분위기를 깨면서까지 주인공들을 구원했다는 점에서 이건 차원이 틀립니다.

[비밀의 숲]이 가장 잘 표현했던 점은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닌 혼돈과 질서에 대한 대립도 구현했다는 겁니다. 그간 막장드라마에서 선을 표현하기 위해 악을 강하게 표현하고, 그럼으로써 선이 더 악랄해져 악을 강하게 짓밟는 구성을 많이 차용했었습니다. 악의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느껴지는 일탈성, 그 쾌감에 의존한 셈입니다. 하지만 [비밀의 숲]은 그 혼돈을 지적합니다. 황시목이 방송에서 이야기할 때 나온 말들은 다소 도취적이고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지적할 만한 부분이었습니다.

세상에 범법을 저지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굳이 사법부, 상류층을 뒤적이지 않아도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존재합니다. 탈세를 하거나 아니면 세무사를 시켜 회계를 조작하거나 누군가를 착취하는 등의 일은 지금도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런 행위들은 개인의 욕심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주로 같은 식구나 사원을 먹여살리기 위해서 싫더라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선과 악의 꼬인 관계, 기형적인 구조가 일어난 이유는 어쩌면 누군가의 욕심이 만든 기형적 경제구조 때문일 수도 있고, 지나치게 도취된 개인의 감정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원흉이 벌인 일이 취지는 좋지만 이런 일들이 결국은 혼돈을 야기했을 뿐이란 점을 지적하는 부분은 그 파급력이 상당합니다. 선과 악에 대한 고민을 포기하고 자신만의 도덕성을 가지고 살던 사람들, 누군가의 희생으로 끝나는 문제를 당연하게 여겨온 사람들, 한 순간의 위기를 타파할 영웅을 기다리는 사회가 얼마나 괴물같은 지에 관해 지적한 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큰 충격까진 아니지만, 그릇된 생각의 뿌리가 어디서 온 것인 지를 잠깐 되새겨 볼 정도의 충격은 됩니다.

어떻게보면 이거... 다크나이트 식 결말을 철저하게 비웃는 부분이 되기도 합니다.






법과 정의을 다룬 드라마가 질서선으로 가끔 법을 어기면서까지 선으로 향하는 모순을 가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질서 중립 성향의 드라마입니다. 가슴이 찔릴 정도로 무덤덤하게 질서 중립으로 향합니다. 그래서 큰 자극이 없어 지루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의 감정표현의 절제됨을 통한 지루함을 덜기 위하여 조그만 긴장감을 더하는 편입니다. 주인공이 감정표현이 없어 어떤 일을 벌일 지 모를 것 같다는, 혹은 이 혼돈의 숲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른다는 것을 암시함으로써 소소히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이야기가 다루는 상황을 즐기거나 아니면 감정표현이 강하지 않아 부담없는 드라마를 원했다면 이를 추천하지만, "뭔가 빵 터지는 것이 있어 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시청자라면 다른 드라마를 찾아보시는 게 좋습니다.

일말의 감정의 폭발보다 플롯과 이성을 중시한 부분이 서구적인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한국적인 친근함과 정의 정서를 잃지 않았습니다. 과도한 신파와 극의 강조없이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 진행하는 법, 그 독자적인 가이드라인을 정한 겁니다. 이런 점에서 [비밀의 숲]은 의미가 있습니다. 사전 제작 드라마라는 점과 퀄리티와 시청률도 우수했다는 점에서 드라마 제작 방식의 틀을 바꿀 수도 있는 작품이 되기도 합니다.

신파도 중요하지만, 이성적인 스토리도 중요하기에 저는 이를 해낸 [비밀의 숲]을 강하게 찬양합니다.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정의 요소도 중요하지만, 전달하려는 메세지의 틀을 벗어나 모순처럼 들리지 않기 위해 끝까지 이성의 끈을 놓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비밀의 숲]은 끝까지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성공했습니다.

사실 드라마 속 상황의 긴장감보다 이 드라마가 자기 틀을 깨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으로 인한 긴장감이 더 컸던 게 사실이긴 합니다.

이성적인 플롯을 중시하던 미국드라마도 막장계열로 치닫는 상황이라 어쩌면 이제부턴 미드보다 한드라는 말이 나올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드라마 덕분에 한국드라마의 앞날이 기대됩니다.








이제부터 한국드라마 쓰레기같다는 평이 있다면 제가 친히 이 드라마를 입에 쑤셔넣어줄게요.













PS.
이건 진짜 명장면이라 적어요.

살해협박을 당한 황시목이 그 와중에서도 가만히 생각하며

'목을 치지 왜 머리카락만 뜯어갔어? 목을 치는 건 니 스타일이 아냐?'

라고 통찰할 때 정말 소름돋았음.

드라마 역사상 가장 냉철한 장면.

덧글

  • 아힝흥힝 2017/07/31 14:59 #

    찝찝하면서도 약간의 희망(?)을 남겨둔 결말이 참 마음에 들더군요.

    여담이지만 이 드라마에서 제일 무서운 점은 작가가 이 작품이 입봉작이라는 점입니다(...)
  • 로그온티어 2017/07/31 15:57 #

    세상에... 그 작가는 미래에 어떤 일을 해낼려고 벌써부터 포텐을 터트리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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