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가치론 게이머의 신조



1
내 기억이 까마득한 오래전의 일이지만 꺼낼 떄마다 아직도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여러 개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컴퓨터실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어느 시골에 살았고, 그 시골에는 도서관이 하나 있었다. 그 도서관은 내가 살던 집과 거리가 좀 되어서, 가려면 버스를 타고 10여분은 가야 했다.

그 도서관은 1층은 도서관, 2층은 컴퓨터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3층은 어떤 것이 있었는 지 안 올라가봐서 모른다. 단지, 조용히 해야 하는 장소이며 내가 아직은 올라갈 필요가 없는 곳이라고 해서 늘 내 상상만 돋구다 마는 장소였다.

나는 항상 1층의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열람실에 처음 들어서면 책들이 책장에 늘어져 있는 것이 바로 보인다. 난 그 풍경보다 내음이 좋았는데, 퀴퀴하면서 오묘한 종이내가 그 책들이 가지고 있는 시간을 풍기는 것 같아 호기심을 이끌기 때문이었다. 책들은 대부분 기증된 것들이라 삶의 흔적들이 묻어있곤 했는데, 나는 늘 책을 읽다 그런 흔적을 보게 되면 더럽다기 보다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에 더 관심을 두곤 했다. 각자의 사연을 품은 책들이 도서관에서 안식을 취하니 좀 이상하게 말하면 납골당같은 곳이나 어쨌거나 내 상상을 늘 부추기는 곳이었다.

도서관은 내 상상을 부추기는 곳이었다. 당시엔 과학책같은 상식책은 읽지 않았지만, 무민 트롤이나 스티븐킹식 소설을 어설프게 따라한 청소년 공포물을 읽었다. 소년 추천 도서나 문학 소설도 읽긴 했었는데 대체로는 나에게 따분한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책 속에서 긴장감이 형성될 때만 좋아했던 것 같다. 호기심을 이끌거나 긴장감이 윤곽을 드러낼 때 아니고서는 모두 그를 위한 복선과 설명하는 것에 그치는 소설들을 읽었으니까. 무민 트롤 뺴고. 무민트롤은 나에게 힐링책이었다. 지금 무민트롤 유명해지기 전에는 해리포터보다 무민트롤을 좋아했다.

책을 읽을 때는 항상 장면을 상상하며 읽었고, 장면이 머릿속에서 형상화되는 것을 편집하는 것을 즐겼다. 생각해보면, 그게 내 유년기의 즐거움이었던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으니까 실제화시키고픈 욕망에 그랬던 것 같다, 어느 정도는.

아무튼 도서관에서 내가 볼만한 책들을 거의 섭렵했을 때, 나는 2층 컴퓨터실이 궁금해졌다. 사실 당시 시골 아이들은 복지 덕분인지, 컴퓨터가 보급된 상태였고... 내 또래 아이들은 바람의나라나 네오다크세이버등의 넷마블이나 넥슨 게임을 즐겨하고 있었다. 그것에 관심을 들이기 시작했던 나였지만, 결정적으로 나의 집에는 컴퓨터가 없었다. 그래서 친구의 집에 가면 자유롭게 즐기거나 게임 속에서 호기심을 충족할 수가 없었다.

게임을 계기로 컴퓨터에 관심을 들였기에 내가 2층 컴퓨터실을 탐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날, 나는 책을 읽기를 포기하고 컴퓨터실로 과감히 올라갔다. 컴퓨터실의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처음 내 자유대로 접했다. 공포물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여러 것을 구경하고, 직접적으로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넷마블 게임에 특히 현혹되었었는데, 솔직히 나중에는 PC방마냥 도서관의 컴퓨터실을 이용했다 (...) 검색하라는 자료검색은 안하고 컴퓨터 게임만 하던 나는 결국 컴퓨터하나를 고장내버렸고 그로 인해 꾸지람을 받았다. 그 이후 나는 컴퓨터실 금지령을 받았지만 실례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서, 자발적으로 컴퓨터실을 출입하지 않았다.








2
요즘 내 조카들이 스마트폰에서 얼굴을 떼지 않고, 동시에 스마트폰에서 고개를 들지 않는 조카들을 나무라는 친척들을 자주 본다. 아이들은 게임을 쉽게 즐기는 시대가 왔고, 그리고 가능한 그들은 오랫동안 게임을 잡는다. 그리고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방에 천장까지 닿을 듯이 높다란 책장엔 부모가 읽으라고 사다준 다양한 분류의 책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 책을 보지 않는다. 이 광경을 보고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친척들의 말을 듣고 친척들이 순간 게임을 노려볼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움찔하게 된다.

친척들은 게임이 상상력을 앗아간다고 주장했다. 오락성을 강하게 띄고 있으며, 흥미유발도 오락성에 국한되며, 상상력을 펼칠 기세도 없이 장면이 바로바로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책은 종이와 잉크의 베일 사이로 보일 듯 말듯한 화면을 보여주어 상상을 부추기는 매력이 있는데, 게임은 그걸 아예 전면에 배치해버리니 상상력과 창의력을 막는다는 추론이다.

그리고 그놈의 중독성...;; 게임을 몇 시간이고 붙잡게 만드는 게 정상적인 일이냐는 말을 할 때, 나는 정말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내가 기획공부할 때는 체류시간을 늘이는 것도 온라인게임에서는 상업적으로도, 타 유저와 만날 확률을 높여 같이 놀게 만드는 요소로도 중요한 요소라고 배웠다. 플레이타임을 늘이는 것이 중요해서 그렇게 만들 수 밖에 없으니 거기에 딴지를 걸면 나는 거기에 빠져드는 애들이나 그렇게 만든 부모의 문제라고 말할 수 밖에 없으니 입을 꾹 다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게임을 플레이 하는 것이 삶을 교양있게 하거나, 스스로 유용한 것이 될 수 있을까? 물론 게임은 유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약간 생각하기 어려운 주제이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내 기준에서 답을 찾았다. 내가 책을 읽을 때와 게임을 할 때의 감정선, 그리고 얻어낸 깨달음에 대한 것들이 일치함을 알게 된 것이다.

내 어릴 적엔 삶이 윤택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불안으로 가득찼다.

이런 상황에서 읽은 책들은... 바로 공포서적과 무민트롤이다. 공포서적이나 무민트롤을 읽었던 이유는, 그 속에 전신을 아찔하게 만들 위기와 설득력 있는 극복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민트롤은 다른 자극적 소설보다는 편안해보이지만, 그 속에서도 불안 (당시의 나의 공감대) 이 존재하며 거기서 또 자연스럽게 해결로 나아가기 때문에 좋아했다.

그러니까, 나는 늘 그런 이야기에 빠져들며 공감과 위안을 받곤 했었던 것이다.

게임도 마찬가지.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오묘한 불안이 있다. 어떤 도전을 요구하는 게임인지, 내가 어떤 환경에 마주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하는 게임에서 나는 항상 약자며, 약자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존재도 항상 있다. 내가 게임을 좋아했던 이유는 책에서는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그를 물리쳐주지만, 게임에서는 내가 그 존재를 직접 물리치기 떄문이다. 가상의 세계라고 할 지 언정, 이 세계에서 살아남고 위기를 극복했다는 것에 대한 다행스러움과 자신에 대한 대견함이 있다.

게임은 결국 상상력을 유발하진 않는다. 게임 그 자체는 예술적이지 않다. 하지만 유저가 그것을 가지고 놀고, 플레잉함으로서 게임은 비로소 '유용'해진다. 책이나 영화같은 단방향 매체가 드라마를 스스로 만들고 주입시키는 형태이기에 그것이 내포한 것에 의미가 있다면, 게임은 유저가 자발적으로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형태이기에 유저가 손을 대야 빛이 나는 케이스다. 즉, 유저가 스스로 자기만의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심취하게 할 수 있는 전후무후한 매체인 것이다!

물론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상상은 심어주지만, 그 조차 발견하는 즉시 사라지기 마련. 결국 게임의 존재가치에 대한 답은 달성감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수많은 인디게임들이 예술성에 집착하여 이미지와 상징에 매달리지만... 그것은 단방향 매체로서의 텔링 방식을 게임에 접목한 것일 뿐이다. 난 그런 게임을 하면서 게임이 살아 숨쉰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다. 단지 전달받는 느낌을 받을 뿐이지.














3
영화 [그래비티]에서는 여주인공이 크디큰 상실감으로 가득찬 삶을 산다. 그리고 그녀는 위기를 스스로 극복하고, 다시 땅으로 내려와 두 발로 땅을 디딘다. 그녀는 상실감과 위축감에 자신이 사는 세상이 모질게만 느껴져 자살도 생각할 뻔하지만, 끝내 스스로 자신이 사는 세계의 정답을 찾아 나간다.

게임은 [그래비티]의 세계관과 같고, 그와 같이 희망을 말한다. 책과 영화가 나름의 철학과 논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반면, 게임은 유저가 스스로 알아내고 성장해야 한다. 그 영광스런 끝, 생존이란 결과에 맞닿기 위해 유저가 해야하는 도전과 드라마틱한 과정들을 생각해보면 게임은 늘 [그래비티]같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협업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고, 때로는 모질게 자신을 내쳐야 한다.

...

결국 게임의 특성은 모든 이들이 살고 있는 삶과 다를 수가 없는 것이다. 생존과 평안이라는 달성을 위해 어떻게든 자신만의 룰을 만들고, 죽도록 달리는 것. 게임은 단지 삶의 한 부분을 떼어내어 규칙을 만든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삶을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굳이 이 행위를 해야할까? 사실, 여기부터는 자기만족성에 가깝다. 현실이 노력에 대한 보상이 어정쩡해서 부족한 만족감을 긍정적인 마인드로 해소해야 하는 반면, 게임은 게임 내 물적인 보상을 충실히 해주기 때문에, 심리적 만족도가 크기 때문이다. 가상의 것이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있음을 알고 그보다 더 나은 것을 욕망하면, 그 수요를 받아들여 공급하여 주는 것. 게임에 대한 이론이나 기초를 배울 때 같이 배우는 기획자들 나름의 상식이다. 삶을 살면서 "너는 잘 살고 있어"란 느낌을 받은 적이 얼마나 될까. 맹세컨데, 게임은 보상을 해줌으로 유저에게 그런 느낌을 심어준다고 생각한다. 그 말이 현실에서 잘 살고 있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일치감에 위안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가끔,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빠져들 떄가 있는데, 게임은 세이브/로드를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 내가 싱글플레이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게임이 세이브/로드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도 심리적 위안을 해주는 쪽에 가깝다.

내 생각을 정리하자면, 게임이 가치 있는 이유는 2가지가 있다.

1.
불안하고 예측불허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사는 데 불안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게임은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가지고 있기에 비교적 안정적인 공간이고, 욕망을 일으키고 그에 걸맞게 해소시켜주는 공간이기 때문에 심리적 위안을 받을 수 있다.

2.
게임은 유저가 스스로 진행하는 성격을 띄기 때문에 목표달성까지의 과정이 다양하게 나타나며, 그 안의 상황의 드라마틱함을 느끼며 이야깃거리나 특징적인 상황들을 유저가 스스로 만들어 낸다. 이런 점에서 '깨달음'을 느낄 수도 있기에, 경우에 따라 교양있는 매체로 둔갑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1의 이유에 따르면 게임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삶에 불안한 것이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위안을 받으려고 게임에 정신을 투신한다는 말이 된다.













PS.
...원래는 이런 거 쓰려고 했던 게 아닙니다. 원래는 썰만 풀고 말려고 했는데, 늘 그랬듯이 또 삼천포와 사색, 쓸데없는 고찰로 빠진 글. 그나마 열심히 고쳐서 하나의 주제로 나아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제가 급물살을 타는 느낌이 들거나, 앞뒤가 안 맞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냥 3의 결말만 보면 됩니다 (...) 머리로 계산을 마치면 과정을 잘 안 쓰는 체질이라.

덧글

  • G-32호 2017/09/01 22:12 #

    책이든 게임이든 지적 유희를 할 수 있고 심적 만족을 느끼게 해 준다는 점에서 사실상 같죠.
    책이 상상력을 길러주고 게임이나 영상물들이 상상력을 빈곤하게 만든다는 지적은 영상과 활자, 그저 평면위에 고정되어있는 인쇄 매체와 직접 조작가능한 능동적 전자조작채계가 각각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특화되어있다는 걸 인식못한 생각없는 발언이죠.
    활자로만 구현할 수 있는 영역의 표현이 있고, 그림이나 영상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있으며, 게임구조를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있어서 다른 도구로 그것을 표현하려고 시도해도 본디의 것에 미치지 못하는 하위호환의 조잡한 것밖에 되지 못하는데 이런 표현 영역이 왜 중요하냐면 상상력이라는 요소 자체는 자신이 습득한 표현 요소들에 의해서 확장되는 것인지라 단순히 한 영역에만 치중해서 습득된 표현력은 당연스럽게 빈곤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려고 해도 재료가 있어야 상상이 만들어지는 거죠. 때문에 단순히 활자뿐만이 아니라 시각, 청각, 촉각, 조형감, 입체감, 조작감 등등의 여러 영역의 경험이 필요해지는데, 책만 가지고는 택도 없는 거죠. 활자랑 삽화만 가지고는 상상력의 재료로 쓰기에 너무도 빈곤할 뿐이죠. 그런 점에서 책 이외의 것들은 상상력을 좀먹는다고 주장하는 건 그저 헛소리에 가까운 소리가 되는 겁니다. 도리어 게임은 활자, 시각, 청각, 조형감, 입체감, 조작감과 같은 여러 표현 요소들이 다종하게 나타나는 상상력을 키워주기에 매우 좋은 요소죠.
    그리고 눈 나빠지고 몸이 운동부족으로 둔해진다고 뭐라 그러는 거. 책도 그렇거든?
    사족으로 자기들도 책 안보고 허구언날 티비 막장 연속극이나 보면서 애들한테 그런 소리 외치는 것들은 더더욱 그런 소리를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소리 할 거 같으면 니들도 좀 보고나서 애들한테 말하라고.


    그리고 본문 읽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던 부분이

    ---친척들은 책이 상상력을 앗아간다고 주장했다---

    부분인데 게임이라 적힐 부분을 책이라고 적은거 아닌가요.
  • 로그온티어 2017/09/01 23:57 #

    1. 제 생각과는 조금 다르군요. 두 매체가 '상상력을 유발하는 측면이 다를 뿐, 상상력을 발휘시키는 것은 같다'란 점은 생각을 못 해봤는데 그것도 맞는 이야기 같습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저는 일단 제 주장을 고수하겠습니다. 본문이, 상상력을 일으킨다는 것에 대한 가치보다 유저가 스스로 만드는 드라마와 그 가치에 대해 쓴 글로 빠졌기 때문입니다.

    +. [생각의 탄생]에서 나온 주장과 비슷한 주장을 하시는군요. 따라서, 그 책을 한번 챙겨보심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좋은 책이라서요. 이런 생각에서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생각이 탄생하는가에 관해 깊게 고찰한 책이라서 경우에 따라 감명깊게 보시지 않을까 해서 추천합니다. 이미 읽으신 것 같기도 하지만요;

    2. 그 오타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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