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 - 리얼 └ 스릴러/드라마

이제서야 보게 되는 군요. 엄청난 망작이라기에 무척 궁금했고, 그래서 보고 싶었지만, 동시에 망작이란 소문 때문에 극장에서 보면 지갑 출혈이 지나치게 크다고 느낄 것 같았습니다. 개봉 후에 VOD로 보자고 생각했는데 그걸 잊어버린 채 몇 개월을 지냈어요. 그러던 오늘 정신병자가 길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부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갑자기 정신병자... 하니까 이 영화가 떠올랐어요. ...그 생각의 흐름의 개연성을 알 수 없지만 그 한단어에 의해 순식간에 이 영화가 떠올랐고, 그리고 결국 이제서야 보았다는 말입니다.

타 리뷰어들처럼 조롱이나 화를 던질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본 이유와 리뷰를 쓰는 이유는 그저 궁금해서 였거든요. 왜 엉망인 영화가 탄생했는지, 혹은 왜 엉망처럼 보였는지. 일단 보고나니 엉망처럼 보이는 영화는 명백히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는 누가봐도 엉망이에요. 그러자 제 포커스는 '왜 엉망이 되었는 지'로 옮겨갔습니다. 그래서 본 리뷰는 그를 향한 리뷰가 될 겁니다. 신랄한 욕설을 기대하신 분들은 스크롤을 내리거나 뒤로 가기를 내려주세요. 그건 지금 제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니까요.







Part1. 의문

리얼의 가장 큰 단점은 개연성의 부족입니다. 장면 하나하나의 만듦새는 훌륭하지만, 왜 그런 상황이 일어났느냐, 이전 상황과 어떤 연관이 있느냐에 대한 설명이 부족합니다. 현재 진행되는 줄거리에 흥미가 있을만할 때, 다른 줄거리가 이어지고, 그 줄거리에 흥미가 있을만할 때, 다른 줄거리가 이어집니다. 그렇기에 흥미가 계속 깨어지기에 중후반은 극에 대한 매력을 느낄 수 없습니다. (흥미를 가질 만한 요소들이 죄다 깨져버렸으니)

극의 논리 구조와 캐릭터들의 행동동기가 이해하기 힘들고 이상하단 면도 한 몫합니다. 너무 지나치게 동기에 대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고, 행동하는 방식도 일반인의 방식과 약간 동 떨어져 있습니다. 덕분에 중반부부터는 약간의 경계적인 반응이 올라왔습니다. 이런 논리 구조에 익숙해질까봐서요. 논리 구조에 익숙해져서 생각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정신병자가 될 것 같았어요. 이건 조롱이 아니라 진심으로요.

반대로 장면을 몽땅 떼어놓고 보면 개개별로 장면의 퀄리티는 높습니다. 하나하나의 때깔과 연출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시각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씬들도 많았어요. 그런 장면들은 이렇게 버려지기 아까울 정도로 괜찮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 생각에 몇 분을 잘라서 리얼이란 영화 자체를 모르는 사람에게 보여주면 '어라, 이 영화 뭐냐, 재밌어 보이는데.' 혹은 '뭔가 희한해 보이지만 흥미간다.'는 반응이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아까운 컨셉이라면 주인공1에 의해 탄생한 주인공2가 주인공1을 따라하고 행적을 따라가는 과정입니다. 그 장면들에서 김수현이 정말 변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상당한 연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느끼하고 음침합니다만, 그러라고 만든 캐릭터였으니까요. 솔직히 그 장면은 괜찮아서, 차라리 거울증후군으로 주인공을 따라하려고 하는 싸이코와의 대결로 포멧을 만들어도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꽤 괜찮은 사이코 스릴러가 나왔을 거에요.

또 아까운 컨셉이라면, 마약으로 초능력을 가지거나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후반부 반전 요소이긴 합니다만, 안 보신 분들은 안 보고 싶으실 테고, 어차피 정작 보면 괴로우실 영화니 스포일러라도 쓴 겁니다. 하지만 깊게 이야기한다면, 아래에서 설명할 것을 또 설명하는 셈이 될테니 흐름을 위해 언급만 하고 더 안 쓰겠습니다.

아무튼 떼어놓고 보면 모든 컨셉들은 다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왜 그렇게 갈팡질팡하면서 서로 안 맞는 것이라고 융합시키려고 했을까요? 대체 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같은 작품이 탄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Part 2. 떡밥
[들쥐와 손톱]의 줄거리를 생각해보면, [리얼]과 상당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들쥐와 손톱]을 현대적인 이야기로 옮겨오려면 [들쥐와 손톱]이 가진 줄거리의 판타지성이 너무 강합니다.

[들쥐와 손톱]은 손톱을 아무데나 버린 아이가 겪게 되는 고초를 보여주며, 손톱을 아무데나 버리지 말 것을 이야기하는 전래동화입니다. 아이가 버린 손톱을 들쥐가 갉아먹자, 들쥐는 아이와 똑같은 존재로 변신합니다. 변신한 들쥐는 손톱을 버린 아이의 행세를 하고, 마침내 아이의 위치를 차지합니다. 진짜 아이는 집안에서 문전박대를 당해 쫓겨나고 거지차림으로 돌아다니는데, 그때 지나가던 어느 현명한 스님이 나타나 진짜 아이를 도와줍니다. 진짜 아이가 누구인 지를 판가름해주고, 그 고생끝에 가족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아이는 손톱을 아무데나 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겪는다는 내용입니다.

[리얼]의 주인공인 장태영은 분열된 자아를 죽어가는 사람에게 아무나에게 버렸는데, 높은 재력을 가진 그 아무나에게 심어진 인격이 자신에게 자아를 버린 장태영을 따라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 성공하죠. 여기까진 괜챃습니다.

문제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사람이 컴퓨터, 객체, 클래스도 아니고, 어떻게 사람의 인격이 복제될 수 있을까? 정확히는 복제보다는 상속의 개념에 가까운데요. 진지하게 말해서 [리얼] 속 인간들이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라고 가정하면 저 행동들도 모두 납득이 가는 내용이 된다는 겁니다.

아무튼 그래서 작가와 제작진드은 개연성을 위해서
원 시나리오에 이것 저것 갇다 붙이기 시작합니다.








3. 혼돈과 파멸의 시작

[들쥐와 손톱]의 줄거리를 현대식으로 전개하는 과정에서 [리얼]에 붙은 사족들을 하나씩 떼어내어 보자구요. 마약으로 초능력을 가진다는 내용은 [리미트리스]와 [루시]가 가지고 있고, [들쥐와 손톱]과 유사한 내용은 [왕자와 거지]가 있습니다. [왕자와 거지] 컨셉을 차용한 [광해]가 있었구요. 그걸 좀 뒤집어주자니 너무나도 대작인 [카게무샤]가 있습니다. 마약을 수사하는 영화로 가자니 이미 레퍼런스 되는 영화도 많습니다.

뻔해지기 싫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단순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쪽에서든 이렇게 덕지덕지 가져다 붙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뻔해지고 싶지 않았다"는 욕망이 감독이나 제작자의 내면에 깃들어 있었다는 가정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이것저것 어울리지 않는 서사마저 붙여버린 나머지 [리얼]은 이도저도 아닌 영화가 되었지만, 동시에 이 세상에 없던 영화가 탄생하게 되었기도 했거든요.

이 점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과 같은 케이스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 영화도 매트릭스 스럽지만 뭔가 기이하게 다른 영화가 되었고, 그 결과 괴물이 되버린 케이스이기도 하니까요.

다시 [리얼]의 이야기로 돌아오죠. [리얼]이 줄거리는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괴물이지만, 시체들을 스테플러로 연결시켰기에 전체가 견고하지 않은 괴물입니다. 연결부의 허술함은 괴물이 크게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덜렁 거립니다. 결국 거기에 새로운 것을 박고, 그 힘이 가중되고, 가중되다가, 결국 터져버려서 시체 부분들이 사방으로 튀기 시작해버린 겁니다!

결국 가장 많은 이들이 폭소하거나 문제로 삼는 최악의 결말로 드러나고 마는 거죠.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 장면을 유의미하게 보았습니다. 스파이크 존즈의 [어덥테이션]처럼 작가의 속마음 바깥으로 뛰쳐나와 관객 앞에 드러난 것 같았거든요. 갑자기 터지며 주인공이 초능력을 선보이는 장면은 아무리 봐도 제작진이 한계 끝에 정신을 놔버린 것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건 이 영화를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같았습니다. 배를 버려라! 같은 선언이죠. 이렇게 된 이상, 멋진 장면은 만들어주고 가자. 우리가 가진 시각적 효과의 가장 극한을 보여주고 떠나자. 라는 선언. 솔직히 거기서 '이건 더이상 이을 수가 없다.', '망했다'는 스스로의 자조적인 성찰과 폭주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4. 의외의 결론

그리고 그 점이 드러나자 이 영화는 유의미해졌습니다. 그러니까, 메타적으로 봐서 [리얼]을 작가의 멘탈붕괴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상당히 유의미한 작품이 되는 겁니다. [리얼]은 작가의 정신 붕괴 과정을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던 거죠. 이 이야기를 멋지게 이을 거야, 혹은 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정신분열이 생겨난 겁니다. 이렇게도 잇고 싶고, 저렇게도 잇고 싶고, 이 장면도 넣고 싶고, 저 장면도 넣고 싶고 라면서 하나하나 완성하다보니... 결국 이상한 결과물이 나오자 작가는 멘붕합니다. 모든 장면들을 이을 수가 없고, 각 장면에 다른 전개에 대한 떡밥을 집어넣었으니 취사선택하여 완성할 수도 없었으니까요.

이제 자기가 일으킨 문제를 수습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는 겁니다. 결국 중반부터 어찌저찌 이어보려 하지만, 더이상 이을 수도 없고, 예산은 이미 상당수 낭비된 상황이며 마감도 서서히 다가옵니다.

이 상황에서 마지막 선택은... 보신 분들은 아실, 바로 그 피에스타 전투씬입니다. 결국 장렬하게 자멸하고 만 작가는 망작을 만들었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겠죠.







5. 교훈

결국 후일에 이르러 이 영화는 쓰레기라는 별칭을 얻었어요. 하지만 저는 어떤 쓰레기도 만든 것은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리얼]은 매우 이상하지만, 모든 것을 포함하는 이상한 세계관을 완성해버린 영화가 되었기에 그 점으로는 유의미합니다. 하지만 그게 진짜 유의미한 것일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리얼]은 분명히 누군가의 흑역사입니다. 정확히는 자신들의 능력밖의 걸작을 만들고 싶었던 작가들/ 감독/ 스탭들의 흑역사죠. [리얼]을 보면서 정말 중대하게 기획되었지만 결국 기대와는 부족하게 튀어나온 결과물들을 기억나게 했습니다. [리얼]은 그것과 별반 다를 거 없는 실수를 가진 작품입니다만, 문제는 규모에 있습니다. 제작진의 스토리텔링 역량 부족이 너무 극심해서 기본기도 없었기에 그로 인해 대참사적인 작품이 나왔다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하지만 [리얼]이 개봉용 영화였기에 이렇게 크게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이지, 일반인들도 자신의 야욕을 못 이겨 프로젝트를 너무 거창하게 키우다 망하는 사례들을 겪기도 합니다. 그것이 대학용 과제처럼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사업실패처럼 자신을 나락으로 빠트릴 큰 사례가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모두 끝 전까지는 자기가 망할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문제가 왕창 커진 다음에서야 대충 매듭짓고야 맙니다. 작게는 F를 맞고 끝나지만, 크게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겁니다. 저는 그런 일들이 규모가 다를 뿐이지 [리얼]같은 실수와 다를 게 없다고 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역량을 알고, 그에 따라 가장 최적의 결과물을 완성하는 겁니다. 하지만 제 기억에... 초심자 중에선 그걸 똑바르게 행동했던 사람들은 없어요. 대다수가 조금 알면 그 이상을 실천하려 덤볐죠. 그러지 말라고, 이제라도 괜찮으니 그만두라고 팔을 잡고 애원해도, 그 중 몇몇은 결국 말을 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 도취된 상황에서는 자신이 똥을 먹는 지 뭘 먹는 지 판단이 잘 안 서거든요. 그리고 결국 그 누군가가 처참히 망하는 꼴을 보며 눈을 감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는 [리얼]을 보며 누군가의 흑역사,
나에겐 없을 일이라고 치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조롱과 멸시, 다 남의 일인 것 같죠.

잘못하면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저건.
제가 저 작품을 분석하려 하고 쉽게 조롱할 수 없던 이유는...

이미 그렇게 망한 사람을 많이 봤거든요.
나라도 망하지 말자라며 열심히 탐독했던 겁니다. 그래서.






하지만 이리 말해봤자, 강조해봤자, 이 말 중요하게 생각 안하겠지.
늘 그랬듯이. 이 지긋지긋한 현실의 클리셰라니.


덧글

  • G-32호 2017/10/31 19:48 #

    그러니까 작중 스토리와 배우들의 꿀꿀이죽 퍼레이드를 보지 말고 야욕과 허세에 가득차서 음식을 만드는데 점점 꿀꿀이죽이 되어가면서 정줄을을 놓아가다가 결국 미쳐버리는 감독의 파멸을 머릿속에 그려가면서 보면 참으로 의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거군요.

    진짜 영화 중간중간에 감독이 나오는 씬을 삽입해서 감독이 파멸해가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보여줬다면 영화 평이 꽤나 달라졌을것 같지 말입니다.
  • 로그온티어 2017/10/31 23:53 #

    아뇨 그렇게 안해도 이미 결말에서 확 느껴집니다. 손을 놨다는 게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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