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빌 Vol1 └ 액션/모험



이것은 과거의 찬바라/사무라이 액션 영화와 현대를 잇는 징검다리, 혹은 외다무다리입니다. 징검다리라고 말한다면 차라리 [사무라이 픽션]과 [자토이치]가 징검다리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킬빌 Vol1]은 일본 영화에 경의를 표하면서 이상한 쪽으로 툭툭 건드리는 짓을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특유의 요소를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은 장르영화의 교본을 넘어섭니다. 그 장르의 해괴성을 극렬하게 드러내어 까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외나무다리라고 쓴 겁니다. 은근히 거리감을 두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일본문화에 전면으로 대적하는 느낌도 납니다. 징징대는 국민배우의 목을 거침없이 잘라낸 것은 선전포고이자 일본 태도에 대한 삐딱한 시선의 극치입니다. 한편으로 이런 도전과 대적하는 모양새는, [킬빌 Vol2]가 약간 서부극 느낌이 난다는 점에서 왠지 장르도장깨기인 듯한 느낌도 듭니다.

지금에 있어 [킬빌 Vol1]은 장르영화에 대한 일종의 교본이 되었습니다. 지난 전성기 시절의 특정 장르영화들, 마이너했던 영역을 메이저로 끌어올리는 방법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다양한 것을 뒤섞어 캘리포니아롤을 만드는 법도 보여줬구요. 무엇보다 제 생각에,
이 영화 이후에 영화제작진들의 선곡센스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서사보단 연출이 중요해지는 영화입니다. 유명한 영화들과 마이너한 영화들의 연출방식을 뒤섞어 캘리포니아롤을 만들어 놓고 능청스럽게 깔아놓는 연출방식은 지금봐도 센스가 좋습니다. 다만, 뭔가 판이 튀는 면이 종종 있습니다. 장르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드라마성을 절제시켰기 때문일 겁니다. 차분히 쌓아올리는 것보다 하나의 큰 자극으로 몰아붙이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하나의 서사를 느끼게 만들기 보단 현재의 드라마를 완성하는 부분은 지금봐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상황을 마주하는 캐릭터들의 태도와 반응을 통해 관객에게 현재의 드라마를 전달하는 방식인데요. 어떠한 느글느글한 대사없이 상황과 대척점을 효과적으로 주입시킵니다. 액션씬도 말이죠. 액션씬이 등장할 때 그 순간의 긴장감을 위해 음악을 절제하는 구성은 지금써도 유효한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보고나니 한가지 의문점이 생겼습니다. 전에는 복수동기가 효과적으로 이해의 영역으로 들어왔는데, 지금 보니 소꿉장난처럼 느껴졌거든요. 물론 상황을 보면 상당히 험악합니다만, 이렇게 무감각해진 이유는 관객의 분노를 이끌어내려고 복수극을 만든 게 아니라 그냥 썰고 뜯는 맛을 즐기라는 의도에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한국영화의 자극성에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르영화의 교본인 [킬빌]이 나온 후 15년 동안, 한국영화의 연출력은 이런 방식보다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왔거든요. 보이는 자극보다 안 보이고 연속적인 자극으로 잔인함과 분노를 일으키는 방식, 그리고 더 격렬한 폭력으로 이를 묻어버리는 방식을 온전히 완성해버렸습니다. 이런 심리적 고문을 주는 방법론에서는 한국영화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말이죠.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흥행을 느끼면서, 과연 유행은 있는가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합니다. [킬빌]이 제일 심합니다. 여전히 이 변태같은 영화의 흥행과 많은 이들의 뇌리에 인상을 집어넣을 수 있었던 현상을 제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상하고 시대착오적인 낯선 영화는 보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어쩌면 수요와 갈증이 특정한 상황에 심하게 겹쳐져서 한번에 터진, 운의 요소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걸로는 좀 설명이 부족합니다. [킬빌Vol1]이 개봉하기 이전 게임계에선 [닌자가이덴]과 같은 찬바라/검술 액션 게임이 은근 인기를 끌었다는 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법도 한데, 여전히 모르겠어요.

제 아무리 연출의 천재라도 돈줄을 읽는 흐름은 미약할 법도 한데, 어떻게 예상 외의 작품을 만들고도 여태껏 무사할 수 있는 건지가 정말 궁금합니다. 누군가는 '독창적이고 작품성이 있기 때문에'라고 말하겠습니다만, 독창성과 작품성이 있어도 관객에게 외면받는 작품들이 존재하는 걸 보면 꼭 그렇게 볼 수 만은 없거든요.

거기에 관해서는 다른 글에서 쓰겠습니다. 뭐... 길어져서 분리하는 겁니다;

덧글

  • 파란장미Jack 2018/02/04 21:29 #

    쿠엔틴감독님 영화라던가
    예전에는 뭔가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가 참 많았다 생각이 드네요
    지금은 그런영화는 별로 안팔리겠지만..
  • 로그온티어 2018/02/04 22:14 #

    그런 생각하게 만드는 점에서 저는 [킬빌 Vol2] 가 훨씬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 오락물일 것 같았던 경쾌한 1편과 대조적인데, 거기서 특유의 드라마가 숨어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파트1과 같은 오락물을 기대하고 왔을 관객에게 빅엿을 주는 영화지만, 1편의 경쾌했던 복수극마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2편의 결말과 그 드라마들의 세세한 표현들은 지금봐도 대범하게 느껴집니다. 1편의 일본풍 찬바라와 대조적으로 서부극의 배경에서의 무협을 택했고, 중국과 일본의 관계를 대척되는 것으로 명확하게 표현한 것도 특이했구요.
  • Megane 2018/02/04 21:37 #

    이건 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만, 킬빌이란 영화가 뇌리에 강하게 남았던 건 아마도 생사를 알 수 없는 딸을 향한 여주인공의 모성애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단순히 무의미한 복수가 아니라 폭력앞에 무력하게 당해버린 자신의 난관을 극복하는 [자기극복]과 [모성애].
    이게 킬빌의 스토리를 이어가는 큰 라인으로 작용을 했다고 봅니다.
    인간의 저변에 깔린 가장 기본적인 본능에 대한 담론을 잘 담아낸 것이라서 그렇다는 거죠.
  • 로그온티어 2018/02/04 22:23 #

    복수적 살인은 모성애로 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딸을 잃은 것에 대한 보복심과 살인에 대한 키도 본인의 본능에 의거한 행동이죠. 빌을 죽이기 전까지 아이의 존재는 몰랐다는 점과, 마지막에 빌의 심문에서 살인이 즐거웠다고 말하는 키도의 말에서 그 것이 드러납니다. 여기서 암사자가 자식을 되찾고 정글이 고요해졌다는 문구는, 빌을 죽이고 나서 키도의 내면의 안정이 일어났으며, 동시에 살인본능의 가라앉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쓰레기같던 인간이 비로소 인간이 되었는데, 그것이 아이의 탄생에 의해 일어났음을 상징하기도 하죠.키도가 아이가 생기고 나서 빌에게서 도망친 이유도, 빌을 죽일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저 아이를 품은 상태에서는 사람을 죽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킬빌을 특이하게 만드는 점이기도 합니다. 이미 관객은 이 영화가 구출 플롯에 속함을 알고 있지만, 키도는 그걸 모르고 그렇기에 영화 속 구출 플롯이 성사되지 않거든요. 복수극이란 테마지만 펄프픽션처럼 은근히 플롯이 꼬여있는 셈입니다. 나중에는 키도가 멋대로 드라마를 표출하도록 내버려두며 액션영화인데 정적인 드라마적인 요소까지 이끌어냅니다. 저는 거기서 큰 인상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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