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 선샤인 └ 스릴러/드라마





어찌보면, 현대식 사랑 영화의 대명사. SF의 특성과 주제의식은 모두 가지고 있기에, SF영화로 분류할 수 있기도 합니다. 정말 기묘한 영화에요. 기억을 소멸시키지 않기 위해 도망치는 장면들에서는 서스펜스가 느껴지고, 그 다음 자고 있는 조엘의 침대 위에서 방방 뛰어대며 노는 철없는 기억소멸자들의 모습을 보면 블랙코미디가 느껴집니다. 장르가 계속 전복되면서 영화는 잔잔한 롤러코스터를 탄 듯 관객의 감정을 가지고 놉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영화는 비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정작 묘사는 리얼리즘이 심하다는 겁니다. 정말 꿈 속 내용을 제외하면 진짜 현장감이 느껴질 정도 입니다. 길거리에서 저런 일이 있을 것 같고, 어느 연인은 정말 저런 대화를 나눴을 것 같습니다. 배우들의 열연도 한 몫합니다. 연극식 연기보다는 메소드 연기를 깔고 있기에 X를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X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도록 만든 게 영화를 더 괴이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BGM을 깔지 않아서 그 순간의 공기를 온전히 담았기에, 때로는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밤 공기와 쓸쓸함이 느껴질 때는 영상을 넘어 제가 보고 있는 공간까지 침범할 정도입니다.

이쯤되면, [이터널 선샤인]은 누군가의 부끄러운 흑역사들을 담은 푸티지를 보는 것 같습니다. 아까 '꿈 속 내용을 제외하면'이라고 썼는데, 사실은 꿈을 꾸는 장면도 표현 정도가 뛰어납니다. 의식이 순간적으로 끊어지고 이상하게 연결되는 의식의 흐름, 보고 있는 것만 조명되는 특성조차도 너무 디테일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 영화이지만, 따뜻함 뿐 아니라 냉소적이고 거리감 있게 관찰하는 투로 대하는 특성도 영화를 인상깊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결코 비웃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는 특유의 건조한 시선으로 관객의 자의식을 자극합니다. 관객은 스스로의 사랑의 기억을 조용히 관찰하게 되면서, 때로는 뜨끔하기도 하고, 때로는 공감하기도 하고, 때로는 잊었던 무언가를 다시 되찾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든 기억의 끝에서 조용히 무너져 내리는 집과 동시에, 보는 이의 마음도 무너집니다.

시적인 대사보다 그 한 장면이 사람을 울립니다.

그 다음 둘이서 다시 시작하는 장면은, 사실 이건 스포일러가 아닙니다. 이미 처음부터 이야기했던 거니까요. 이것은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떤 루프가 느껴지면서 결코 좋은 것이 아님을 느끼게 만들기도 합니다. 결국 언젠가 둘은 싸울 테고, 언젠가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알고서 다시 시작하는 둘의 강경함은 어쩌면 가혹한 운명일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삶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그 매듭은 영화가 정확하게 지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모호함이 결코 답답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부터 영화를 보는 제 목표는 사랑 그 자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자체는 말로 쓰면 지나치게 비인간적으로 느껴지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경제학의 의미처럼, 살면서 더는 아쉬운 사랑을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얻었고 그걸 실천하는 것 뿐이죠. [이터널 선샤인]의 가장 큰 의미는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PS.
솔직히 말해, 세상에 훌륭한 영화는 많지만 그 영화들은 대단하다거나 놀랍기만 한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처음 봤을 때도, 이후에 지금 봐도 제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 중 하나입니다. 지금 이 리뷰를 보는 분들의 마음도 뒤흔들어 놓을 영화이지는 알 수 없지만요.

PS2.
지금 보면 상당히 명배우들이 많이 출연했는데요. 마크 러팔로의 찌질하고 한심하게 나오는 연기도 그렇지만, 저는 여전히 짐 캐리의 의외의 호연을 가장 인상깊게 보게 됩니다. 사실 그런 걸 표현할 수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동시에 미중년의 기를 풍기며 얼핏 커트코베인이 보이기도 하는 그 고독함의 페이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상깊게 보게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짐캐리가 스스로 자신의 연기를 회고하는 다큐멘터리인 [짐과앤디]에서, 스스로 가장 마음이 아팠던 촬영장(...)으로 [이터널 선샤인]을 꼽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그가 메소드 연기를 하기 때문에, 실연의 상처가 너무 깊게 들어왔었기 때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