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요더스톰과 '회의주의' 게이머의 신조

조나단 요더스톰은 핫라인 마이애미의 개발자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만든 50여개의 미니게임들의 개발자이기도 하죠. 그는 짧게는 몇 시간부터 길게는 2~3일에 걸쳐서 게임을 만드는 다작꾼입니다. 동시에 그말은 즉슨, 깊게 레벨디자인을 생각하지 않고 떠오르는 심상을 표현하기 위한 작품만을 그린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핫라인 마이애미 외의 다른 50여개의 작품들은 그가 자신의 사이트에서 무료로 공개한 상황이며, 대다수는 깊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게임적 깊이보단 추상적 느낌과 철학의 깊이가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몬도 시리즈에서 그의 철학과 테이스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로테스크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그만의 답을 내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해요. 이런 방향성의 명확함이 동시에 조나단 요더스톰이 자신을 작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핫라인 마이애미2]의 추상적인 느낌을 생각해보면 그게 확실한 것 같아요.

그의 작품인 몬도 시리즈를 해보면 조나단 요더스톰이 [핫라인 마이애미] 시리즈를 통해 표현하고 싶던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상 외로, 단순 애국주의나 영웅주의나 폭력에 대한 비판이 아니었어요. 그건 주제를 말하기 위해 선택한 테마일 뿐이지 핵심은 아닙니다. 정확히 핵심을 짚자면, '회의주의'가 요더스톰 작품의 근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반복적인 일을 행하고 일이 순조롭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아까 한 일이 잘못되가고 있는 것인지에 관해 간과할 때가 있습니다. 요더스톰은 [몬도] 시리즈와 [핫라인 마이애미] 시리즈에서 주인공과 유저가 그냥 게임에 몰입해서 하다가 놓치게 되는 기시감에 대해 지적합니다. 만일 현 상황에 대해 회의하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초래되는 가를 지적하고픈 거죠. [몬도 메디칼]에서는 죽음으로, 그 후속작에서는 죽임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결과는 유저에게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반복적인 일상들이 어느 순간 자신을 무너뜨리는 광기로 돌변하는 게 아닌가하는 불안감 말이죠.

국가와 명령/지배에 대한 클리셰적 테마나 영웅주의나 프로파간다는 그걸 말하기 위한 소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걸로 '너넨 다 한심해' 식의 인간비판을 하지 않습니다. 각 작품엔 빛이 되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죠. [몬도] 시리즈에서는 명령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해방하는 주인공이 그 빛이 되겠고 [핫라인 마이애미]에서는 수염이란 캐릭터가 있습니다. 특히 수염은 폭력과 지배적인 환경을 겪었음에도 광기에 휩쓸리지 않고 멀쩡한 삶을 영유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작중에 가장 인간다운 캐릭터기도 하고요. 다만 같은 일을 겪은 자켓은 명령적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50블레싱의 명령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광기에 휩쓸리게 됩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듣다보면 이런 광기에 대한 경멸과 증오보다는 두려움이 느껴집니다. [몬도] 시리즈가 폐쇄적인 분위기와 소리지르는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으로 기묘한 공포감을 조성했던 것처럼, [핫라인 마이애미]와 [핫라인 마이애미2]에서 제정신이 아닌 상황을 공포영화 클리셰에 빗대어 공포스럽게 그려내기 때문입니다. 만일 증오를 느꼈다면 이렇게보다는 열받게 만드는 구조로 만들었겠죠. 하지만 두 작품의 척추엔 찌릿한 두려움이 흐릅니다. 생각에, 이것은 요더스톰의 두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의식적인 사이에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게 되진 않을까, 제정신이 아니게 되지 않을까라는 경계심이죠. [핫라인 마이애미2]에서 마약에 취한 도련님이 필름 끊긴 사이에 자신의 부하들을 죽인 장면에서 그 공포감이 드러납니다. 앨런 포가 추구했던 심리적 공포가 색다르게 발현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다만 떡밥을 뿌려놓고 점층적으로 위기감을 조성하기 보다, 나쁜 상황을 갑툭튀시켜서 회의감을 불러일으키는 전개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몬도 시리즈에서든 핫라인 마이애미에서든 마찬가지에요. 이건 점프스케어랑 똑같아요. 점프스케어의 남발이 본래 목표인 공포심보다는 공포심의 휘발을 가속화시키는 것처럼, 유저가 납득할 만한 설정을 쥐어주지 않으면 어떤 상황이든 유저는 그 장면에서 관심이 흩어지고 말 겁니다. 떡밥을 두면 관객이 눈치채고 회의함으로써, 회의하지 않음으로서 느끼게 되는 광기라는 주제를 완성시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간다고 그 주제를 사고할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겁니다. 이 주제도 제가 기분적으로 느낀 거지, 논리적으로 사고하면 이 상황들이 설득력을 부여하지 않아 견고함이 없을 느낍니다. 부실공사로 만든 다리처럼 어이없게 무너지는 거죠. 많은 이들이 [몬도] 시리즈와 [핫라인마이애미2]에 어이없음을 느낀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는 조나단 요더스톰의 향후 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일단 그는 본인만의 그런지하고 그로테스크한 톤, 주제의식을 명확히 갖추고 표현할 줄 아는 작가가 맞습니다. 하지만 이걸 설득력있게 이야기하는 것이 그의 과제입니다. 작가주의란 틀에서 보자면 요더스톰의 전개방식은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메세지를 오래 남길 수 있는 원동력을 작품에 지니게 하려면 어느 정도 설득력은 담보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공감하고 대화하는 것이 사람이니까요.

그가 주장하는 회의주의에는 당연히 사람이 '회의'해야 성립되는 거고, 회의를 하려면 설득이 필요합니다. 회의하게 되는 것이 외부적 정보와 본인이 가지고 있던 정보의 차이에서 일어난다면, 그 정보를 유저가 잘 들을 수 있게 잘 가공하는 게 문제겠죠. 다시 생각해보면 그는 자신이 말하고자하는 주제와 맞지 않는 작가주의 의식을 택하고 있는 게 아닌 가 싶습니다. 작가주의는 파토스에 가깝지만 그의 작품에 필요한 것은 로고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