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블스 애드버킷 └ 스릴러/드라마





이 영화는 어릴 적에 봤을 땐 지루한 영화였는데, 어른이 된 지금도 그래요. 하지만 영화적 매력이 없는 영화는 아닙니다. 필름의 색감이 주는 풍부함과 약간 덜 정석적이지만 견고하고 정직한 플롯, 마지막으로 초현실성과 현실성의 불가능한 결합을 종교적 테마와 세기말 감정으로 붙여내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영화가 흔히 가지고 있는 종교적 꾸짖음보다는 인간의 가식을 비꼬는 쪽에 가깝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이 봐도 거부감이 없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변호사가 주인공인 이유가 확실히 있는 셈이죠. 주인공이 영화속 재판에서 이기는 비결이 가식을 통한 역설로 찌른다는 것인데, 주제와 상통하면서 공감을 자아낼 만한 부분입니다. 실제로 모든 변호사들이 그렇지 않지만, 세간의 인식이 그러했으니까 이 부분에서 공감을 자아내는 거죠.

다만 부족합니다. 이 영화가 지루한 이유는 아이디어는 좋은데 그를 활용해먹는 방안들이 너무 재미가 없다는 게 문제에요. 기이한 일들이 터지는 부분들은 [오멘]이 떠오를 정도로 움찔하지만, 가슴 깊이 몰아치진 않습니다. 그저 '떠오를 뿐'이지 그 이상은 못 갔습니다. 감정적 포텐이 잘 일어나지 못하는 거죠. 좀 더 쪼아댔으면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말은 즉슨, 각본가가 그만큼 영리하지 못했고, 풍부한 지식과 철학과 통찰력을 지닌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각본가가 영리해 질 때는 그냥 종교적 테마를 래디컬하게 표현할 때 만이고, 나머지는 강조점을 죄다 놓칩니다.

영화 구성은 이러합니다. 주인공이 성공하는 이야기를 상당히 비틀어낸 구성이에요. 주인공이 성공하는 이야기에 [로즈마리의 아기]와 [오멘], [노스페라투]와 같은 유명한 걸작들을 살짝 섞어 불안감을 조성하고, 반전을 통해 주제를 보이며 자기 자신의 개성을 찾습니다. 묘한 게, 초중반에 온갖 고전 공포영화들의 오마주들로 점칠해놓고 끝에 가서 자기 개성찾는다는 게 좀 괴랄해보이긴 합니다. 그래도 정교하진 않지만 튼튼한 플롯과 설득력으로 잘 엮어놨으니 그렇게 난잡하진 않습니다. 다만,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후반부는 좀 도취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작가가 직접 나타나 주제를 주절거리는 느낌이랄까. 알파치노가 연기를 잘해서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전달이 잘 안 되었을 겁니다.

연기하니 말인데, 여기서도 샤를로즈 테론이 출연했더군요. 그리고 괴랄한 게, 샤를로즈 테론이 키아누 리브스보다 연기를 더 여유있게 해냅니다. 키아누 리브스는 못 하는 것은 아닌데 너무 경직되어 있습니다. 마치 어버이연합 사이에 진보주의 피켓 든 외로운 늑대마냥요. 아니면 한국드라마거나. 장난 말고 디테일하게 설명하자면, 연극톤 있잖아요. 발음을 하나하나 씹고 감정이 잘 안 보일까 애써 표정으로 강조하려고 하는 연기태도 말입니다. 키아누가 채택한 목소리 톤은 최악이에요. 동네 양아치가 정장차려 입고 고급진 척하고, 외견상으론 고급져 보여서 요거 귀족인가 싶은데, 목소리 듣자마자 확 깨는 그 느낌이 계속 듭니다. 키아누 리브스가 대사 치는 모든 순간마다 영화의 톤이 산산조각나는 느낌입니다.

어쨌거나 키아누 리브스에게 뭔 일이 있었는 지는 몰라도, 그는 이 영화에서 상당히 경직되어 있습니다. 다시 쓰지만 못하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가 빡치는 연기 할 때는 진짜 모든 걸 내려놓고 진심으로 빡친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참 희한한 게 키아누 리브스는 다른 영화에서도 빡칠 때 빛을 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키아누의 빡침 연기는 니콜라스 케이지보다 훨씬 유연합니다. 찰나의 순간에 다양한 심정이 오가는 게 보이거든요.

마지막으로 제가 필름으로 찍혔던 영화를 많이 못 본 것은 아닌데, 이 영화에서 필름 색감의 매력을 많이 느꼈습니다. 늙어서 이게 보이는 건지 뭔지 몰라도요. 필름으로 찍은 [인터스텔라]보다 이 영화에서 매력을 더 크게 느꼈습니다. 필름 영화에는 토널 배색과 노란색이 훨씬 잘 산다는 사실도 여기서 처음 봤어요. 필름영화에서 기타노블루가 서늘함보다 선선함으로 느껴지듯이, 필름 영화는 묘하게 사람 기분을 여유있게 하는 것이 있는 듯 합니다. 그러니 약간 느슨하게 진행되는 140분짜리 영화를 제가 버틸 수 있었겠죠.












PS.
설정에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확실히 서양 플롯의 근간은 아버지와 아들에 있는 것 같습니다. 서구에 통하는 스토리텔링과 컨텐츠를 만들고 싶다면 일본으로부터 물려받은 전체주의를 멀리하고 성경과 신화와 니체를 가까이 하는 게...

PS2.
일본보다 리버럴한 우리나라 영화에선 없을 것 같지만, 은근히 있어... 전체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