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허슬 └ 액션/모험





처음엔 비디오로 빌려다 봤었고, 이후엔 케이블에서 자주 틀어줬을 때 봤었는데, 이걸 TV시청포함해서 10번 넘게 봤다. 근데 또 나오면 그냥 또 봤다. 그냥 재미있어서. 이걸로 무협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비슷한 코믹무협이든 퓨전무협이든 하나하나 찾아봤었는데 이거만한 작품이 없었다. 주성치 작품도 다 뒤져봤지만, 여전히 나에게 주성치 최고 작품은 [쿵푸허슬]이다. 나에게서 '이거만한 작품'이란 말은, 모든 장면들이 군더더기 없는 작품이란 뜻인데. 느슨해도 느슨한 이유가 있고, 뜬금없어도 뜬금없는 이유가 있고, 뜸을 들여도 그 뜸 자체가 의미가 있다. 그냥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척 봤을 때 그 의미가 눈과 뇌로 쏙 들어온다. 들어올 뿐 아니라, 그 순간 자체를 즐기게 된다. 이 경험이 굉장히 신기하다! 이건 늘 보는 데도 질리지가 않는다.

각본이나 스토리보드 쓰는 법을 배운 이후로, 가끔 심심할 때 뭔가 장면같은 걸 끄적이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 영화에서 본 장면이 그려질 때가 있고, 완성되고 나서야 그걸 느낄 때가 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나에겐 무의식적인 교과서 중에 하나로 남아버린 거다. 영화를 다시 보니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장면 외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구나를 느꼈다.

[쿵푸허슬]의 매력은 무협에 대한 온전한 러브레터란 점에 있다. 의성어섞인 서정체를 써가며 들이대는 듯이 애정을 표시하는 것이 아닌, 매우 센스있게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데 있다. 그래서 영화 자체가 느끼하지 않다.

느와르에서나 볼법한 설정을 통해 현실성을 가지고 정착하지만, 가끔씩 코믹하게 띄우며 장르파괴를 하면서 관객의 기분을 들었다 놨다 한다. 느와르의 기원과 역사를 생각해보면 이러는 게 정상적인 짓이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완성적이고 집중력있다는 사실이 기이하다. 무협이 주체이고 거기에 느와르적 요소를 살짝 섞어서 그런걸까. 아무튼 유쾌하게 섞인 느와르 테이스트 덕택에 세상과 동떨어진 무협을 관객의 세계에 섞이도록 연결시킨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유치하지 않은 거다.

제4의벽을 뚫는 개그를 섞어서 관객의 눈치를 보는 것도 매력. [둠] 2016버전의 제작진들은 이를 클리셰 환기라고 말했는데, 제4의벽을 뚫어 클리셰임을 환기시키면서 골수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낸다고 했다. 뻔하게 가는 걸 뻔뻔하게 가기 보단, "우리 뻔하게 갈꺼야, 뭐 니들도 알 거 잖아?"라며 말하고 가는 것이 의외로 호응도가 있다는 말이다. 관객과의 대화같은 거랄까. 아님 록페스티발에서 관객과 떼창 부르는 거랑 비슷한 이치일 것도 같다.

한편으로 클리셰범벅이라 영화 내용은 뻔하다. 다만, 스토리가 뻔하기 때문에 스토리가 내포한 서사와 기교에 시선을 두지 않고 어떻게 풀어나가는가... '텔링'에 시선이 옮겨지게 된다. 어차피 내용은 뻔하니까 다른 것(연출이나 연기등등)에 가치를 두고 보려는 거다. 그런고로 어떻게 이야기하는 가에 시선을 두게 만들려면, 클리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게 좋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노파심에 쓰지만 나는 이야기를 독특하게 짜서 뒷통수를 시원하게 치는 사람이든, 뻔한 이야기도 재미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든, 다 좋다.

다만, 재시청할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다.

내용도 뻔하고 어찌될 지는 알지만, 이상하게 그 순간만큼은 긴장하게 되는 것 땜에. 그것은 내가 처음봤을 때의 영화적 경험을 되새겼기 때문일까, 아니면 영화가 인물들의 감정선 차분하고 세밀하게 담아냈기에 그 표정들을 통해 관객과 캐릭터와의 감정적 교류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아무튼 여러 이유로 나에겐 교과서적인 영화로 남을 것 같다.














PS.
참 기이한 게, 그렇게 영향을 받고 좋아했던 작품이지만 "당신의 최고의 작품은?" 이라고 말할 때 이 작품이 떠오르지 않는다. 떠오르려면 시간이 지나야 한다. 어떤 심리학자는 빠르게 떠오르지 않으면 정말 최고로 치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근데 나는 정말 좋아하는 작품도 순간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워낙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알고 있다보니, 질문이 들어오면 뇌를 한창동안 뒤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참동안 기다려야 추억들과 기억들과 좋아해야 하는 이유들이 떠올라서, 그제서야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래도 정말 좋아했던 작품이고, 내 정신세계를 구축해준 작품인데, 왜 퍼뜩 떠오르지 않는 걸까?

덧글

  • 케찹만땅 2018/06/17 19:16 #

    주성치 영화의 결정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에 백미로는 서유기 1, 2 무장원 소걸아 녹정기 등등
    쿵푸허슬 2가 나온다는 소리 나온지도 꽤 되었는데. . .
  • 로그온티어 2018/06/17 19:37 #

    일단 본 작품의 후속은 기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언급하신 대로 주성치 걸작들이 꽤 많잖아요. 근데 제 맘에 안 들고 [쿵푸허슬] 한 작품만 붙잡는 걸 보면, 제 시선이 좁은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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