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가소년살인사건 └ 스릴러/드라마



아무리 생각해도, 시대를 뛰어넘을 수 밖에 없는 걸작. 과언이 아닙니다. 초반부엔 흔한 명작 영화처럼 지루해서, 평론가들이 너무 과도하게 띄워준 영화가 아닌가 싶었는데, 2시간 넘어가면서 서서히 영화 속으로 말려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단순하지만 심장을 궤뚫는 결말까지...

영화가 담아낸 주제는 현재진행형이고, 아마도 앞으로도 꾸준히 논란이 될 만한 소재인지라 주제면으로서는 시대를 뛰어넘을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하나의 사건을 신파나 편파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차근차근 세밀하게 떡밥을 밟아가며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맛깔나게 설명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래서 지루해요.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사정들이 한 소년의 살인사건의 간접적 이유로 이어지는 과정을 무서울 정도로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느리지만 그 정서를 온전히 담아내어, 개인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두기도 합니다. 시대 정서를 온전히 담아내고, 암시적이거나 심리적인 방법을 써서 기술적으로도 담아내려 노력하는 영화입니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혼란과 폭력이 쉽게 환기되는 당시 대만의 환경을 충실히 담아냈습니다. 그 노력덕택에, 시대를 살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는 것 만으로도, 인물들이 이런 시대때문에 부분적으로 피폐해지는 과정에 설득력을 부과합니다. 그리고 이런 환경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혼란과 폭력에 쉽게 젖어 들어버렸고, 아이들의 혼란과 과격함을 어른들은 요즘 애들은 개판이라는 식으로 무시하거나 멸시합니다.

이렇게 보면 왠지 가해자에게 유리한 이야기가 될 것 같지만, 또 아닙니다. 영화는 그럴 뻔 하면, 바로 냉정해지거든요. 시대를 담은 이유는 가해자를 두둔하려는 이유가 아니라, 그저 문제를 복합적으로 다루려고 사실을 드러냈을 뿐입니다. 그저, 이 세계에서 모두 각자의 사정으로 움직였고, 이 과정에서 의도치않게 잘못이 알음알음 드러나버렸으며, 이 잘못들이 뭉쳐져 터져버린 과정을 그려냈을 뿐.

선악을 떠나서, 인과성이 세상에 있고, 이 사건은 그 인과요소들의 어떤 결론입니다. 마음 속 혼란과 불안을 받아줄 이와 들어줄 이가 주변에 없던 소년은 자신이 유일히 의지하던 사람에게조차 배신을 당하자, 바로 사건을 벌이고 맙니다. 그리고 소년을 방치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한 주변 어른들에겐 또 각자의 사정들이 있으며, 소년도 스스로의 행동을 멈출 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소년을 마냥 가해자가 된 피해자로 두둔하기도 어렵습니다. 영화가 설명하는 것은, 사실 이게 답니다.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고,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 가를 따지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의 불합리함과 신파조로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사건의 모든 것을 뿌리채 뜯어내어 보여줄 뿐입니다.

그 점에서 저는 사람 삶의 복잡함을 느꼈습니다. 때로는 선과 악이 명료해 보이고, 어떤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불쌍한 사람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아니라는 거죠. 사람은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으로서 사회와 시대에 불안에 젖어들어 폭력적이거나 불공평함에 무관심해지거나, 도덕성을 무시하는 일을 벌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회에든 불안한 점은 존재해요. 이런 세계에서 사람들은 서로 알게 모르게 폭력성을 드러내거나 무시하며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상처와 상처가 주고 받는 과정에서,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방법을 모르는 아이들이나 성인은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지 못하고 상처를 벌리고 맙니다.

이런 사실이 한때 사회학 실험과 통계에 의해 발견된 적이 있었습니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어느 섬에는 사회적 불안이 팽배하여, 불량한 아이들과 성인들이 가득했는데요. 그 곳에서도 도덕성을 가지고 자라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재미난 점은, 그 사람들을 취재해보니 '자신을 이끌어주는 존재'가 있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이끌어 줄 사람'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비슷한 이야기인 [문라이트]를 예로 들어볼게요. 에서 샤이론은 불안정한 집안과 불안정한 사회에서 자라납니다. 하지만 후안이라는 사내가 샤이론을 발견하고, 그를 부분적으로 이끌어줍니다. 하지만, 샤이론은 후안처럼 마약상이 됩니다. 이처럼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치유하고 스스로 일어나는 능력을 가르쳐주기도 하지만, 역으로 말하자면 나쁜 영향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어째 이야기가, 만일 소년의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귀기울여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되는 것 같군요. 하지만 글쎄요, 그런 일은 없었으니 모르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실화바탕이며, 현실에서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조사하지 못한 영역에서, 소년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었던 사람이 있었을 지도 모르죠. 다만, 모릅니다. 그저 여기까지가 한계일 뿐이죠.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보면서 느낀 점은 '나는 이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고 판단 내리기엔 아직 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겁니다.

물론 쉽게 정의내릴 수 있습니다. 소년을 살인을 한 가해자나 시대적 피해자로 치부하고 분노하거나 연민감을 느끼며 영화를 볼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세상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이며, 언젠가는 역설과 오류에 부딪히고 말겁니다. 그걸 원치않는 저는 그저 방관할 뿐이죠. 어쩌면 감독은 뜨거운 감자를 손대기 힘들어하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고 싶었는 지도 모릅니다. 소년에 대한 분노와 연민감, 모두를 향한 안타까움이 마지막 대학합격자 방송과 함께 건조하게 흘러갑니다. 언젠가 나이들면 한번 더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상영시간이 4시간에 육박하지만,
적어도 당신이 인간이라면 진짜 봐야할 작품입니다.


덧글

  • 펭귄알 2018/07/13 10:36 #

    마지막에 팩트!

    4시간!!
  • 로그온티어 2018/07/13 16:34 #

    ??
  • 펭귄알 2018/07/13 16:38 #

    상영시간이 4시간이라고 하셔서 너무 긴거같아서요 ..^^

    우선 추천을 해주셔서 찾아보니 1991연작 이더군요.

    주말에 볼 예정입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로그온티어 2018/07/13 16:44 #

    아아 ㅋ 저도 그래서 이틀에 나눠봤습니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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