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아이 (1995) └ ADV/퍼즐





애드거 앨런 포가 살아있다면 칭찬할 만할 기묘한 작품.

90년대로 또 돌아가보죠. 상당히 많은 실험적인 작품들이 있었던 때로요. [다크 아이]는 그 실험의 시대에서, 그것도 끝물에 탄생한 작품입니다. 뭐, 사실 게임이라긴 뭐한 작품이긴 합니다. 어드벤쳐라고 하지만 너무 직선형 구조에 퍼즐도 없고 게임오버도 없는 게임이거든요. 물론 가만히 있으면 깨지는 건 아니지만, 그냥 여기저기 클릭하다보면 진행되는 게임입니다. 선택지없는 비주얼노벨이나 인터렉티브 게임이라고 말하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네요.

[다크 아이]는 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과 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입니다. 아예 크레딧에서 대놓고 앨런 포의 작품을 원작으로 함이라고 말하고 있고, 게임 자체의 분위기나 연출도 앨런 포의 작품의 클리셰나 주제에 맞춰져 있습니다. 위에 앨런 포가 칭찬할 만하다는 말은 이런 이유에서 말할 수 있는 거에요.

[다크 아이]는 게임으로서는 형편없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의 경험적 완성도를 말하자면 그건 '형편없다'고 쉽게 말하기 힘들어요.

물론 옛날 게임이니 만큼 지금 보면 허접한 건 사실입니다. 640*480 그래픽에, 당시 컴퓨터 사양을 고려한, 프레임이 뚝뚝 끊기는 애니메이션이나 국면적으로 사운드가 들리지 않고, 어딘가 뚝뚝 끊어지는 움직임, 움직이지 않는 고정적 배경까지. 솔직히 지금 하면 지루하고 끔찍하게 하기싫은 게임이에요. 아, 게다가 영문권 게임인데 자막도 없고 배우들도 억양을 엄청 흐려서 알아듣기도 힘듭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하다보면 텍스트를 넘어선 경험을 하게 됩니다.
거기서 이 게임의 장점이 발휘되죠.

게임의 전반적 애니메이션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이뤄지는데 인형의 표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툭툭 끊어지는 움직임이 더해지니 생명력을 더욱 잃은 모양새를 보이죠. 애니메이션의 목표가 캐릭터에 생명을 부여하기 위함인데, 이 게임은 오히려 생명력을 앗아가는 선택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게임을 하는 동안은 마치 유령공간에 고립되어 있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소통을 해도 외롭고 정지된 화상에 고립되어 있는, 고독함에 의한 우울함으로 가득한 유령공간이죠.

시간과 산소조차 멈춘듯한 이 숨막히는 배경 속에서, 주인공은 악몽과 현실을 오가며 진실에 다가가는 여정을 하게 됩니다. 악몽이 현실의 이야기에 영향을 주진 않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이야기 테마는 비슷하죠. 즉, 이 게임은 옴니버스 구성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전개가 시작됩니다.

유저는 살인하는 가해자와 살인당하는 피해자의 시점을 교대로 오가게 됩니다.

게다가 재밌는 점은, 게임 자체는 1인칭에다 주인공의 독백이 귀에 들리고, 말했듯이 타 인형의 생명력 없는 모양새와 움직임 때문에 고독감을 더욱 향상시킨다는 점입니다. 꿈을 꾸게 되면, 시야가 집중된 부분으로 좁혀지는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이 게임은 배경의 화려함과 탁트인 시야를 제공하지 않고, 정지된 화상들의 연속에 유저를 몰아넣기 때문에 악몽을 꾸는 느낌을 더해줍니다. 그것도 상당히 개인적인 악몽이요. 그렇다보니 고독감이 상당히 깊게 다가 옵니다. 마치 누군가가 당하거나 저지른 일을 하나의 좁은 필터 너머로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요.

고독한 악몽인 셈이죠.

이 게임은 캐릭터의 광기나 개인적인 심정을 1인칭 시점을 살린 연출로 담아냅니다.

그래서, 게임은 지루하지만 이야기의 포텐셜에서는 경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건 어떻게 쉽게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워요. 직접 보세요.



특유의 느낌 덕택에 [다크 아이]의 연출방향이나 방법론은 정말 배울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이 게임을 지금, 텔테일 게임즈 수준의 역동적인 애니메이션과 화려한 그래픽으로 리메이크한다면, 그것이 원작의 느낌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 게임이 어쩔 수 없이 차용한 방식이 오히려 그 특유의 암울한 느낌을 더 강하게 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게임 그래픽이 비약적이고 생략적인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험적인 요소를 살릴 줄 아는 탁월한 전문가가 생략적인 그래픽과 만나면 큰 비용 들이지 않고 더 효과적인 연출을 낼 수 있다는 것은 믿습니다. ...믿기지 않는다고요? [죠스]가 이미 그걸 증명한 지 오래인데요.














PS.
어쩌면 고전 게이머가 계속 그 허접한 그래픽의 고전게임을 붙잡는 이유는 그래픽을 살리지 못하자, 상상력을 발휘하는 쪽으로 발달한 개발자들의 역량이 고전게임 속에 잘 묻어났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은 상상이고 뭐고 그냥 보여주기 시대잖아요. 물론 세대 갈등을 일으키려는 건 아니지만, 요즘 게임들이 너무 표현주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생략해도 그만의 장점이 있는데 말이죠.

덧글

  • 작두도령 2018/10/10 10:49 #

    90년대 어드벤처 게임들이 참으로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았었는데 요즘은 다 죽은 장르라 문득 이때가 그립네요...
  • 로그온티어 2018/10/10 11:41 #

    죽진 않았습니다. 완전히는요. 텔테일이 다시 살렸고, 텔레일이 지금 사장됬지만, 그래도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여러개 나오고 있으니까요. 다만 과거애 비해 실험적인 작품이 없단 게 문제죠.
  • G-32호 2018/10/10 20:23 #

    뭔가 유튜브 같은데 올라오는 기괴한 인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들 생각이 나더랩지 말이죠

    그나저나 이 포스팅을 보니 생각나는 게임리뷰
    https://youtu.be/0RaSv1ePsY4
  • 로그온티어 2018/10/10 20:34 #

    제가 모르는 게 많네요
    하지만 과한 사이키델릭은 별로 안 좋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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