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B AFK └ 스릴러/드라마



세계 최대였던 파일공유 사이트 파이럿 베이의 마지막 순간,
그 개발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TPB는 The pirate bay의 약자고
AFK는 Away from keyboard의 약자입니다. 뜻은 "현실에서 만나다"
원래 IRL(In real life)를 썼지만 구려서 AFK로 썼다네요 (...)

파일공유에 대한 인터넷 윤리에 대해서는 모두 아실 겁니다. 파일 공유는 상관없지만, 저작권을 무시하며 공유되는 파일에 대해선 벌이 내려지는 게 당연한 것. 그게 인터넷 윤리였죠. 그리고 파이럿 베이는 직접적으로 저작권을 깨진 않았지만, 저작권을 무시하는 업로더들을 방관했습니다. 그게 사실상 그들의 죄였죠. 그래서 결국 그들은 벌을 받았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죠.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그 당연한 이야기에 감춰진 작은 이야기들을 발굴해냅니다. 그리고 그 작은 이야기들이 뭉쳐져 또 다른 의문점을 자아내죠.

노파심에 쓰지만 본 다큐멘터리는 이상적이지 않습니다. 인터넷 윤리를 지켜야 한다는 메세지 설파나 아니면 '불법공유가 자유주의를 누릴 시민에 대한 권리다'라는 메세지를 설파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 사건이 일으킨 문젯거리들과 그 안의 인간군상들을 고구마 캐듯이 모조리 뿌리뽑아 보여줄 뿐이죠.

볼 수록 의문이 증폭되는 부분이 있는데, 파이럿 베이의 중심인 3인방의 죄가 큼에도 불구하고 형은 8개월, 4개월 형만 내려지는 솜방망이 처벌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물론 수백만의 빚도 떠안겼지만, 그래도 이 사건의 중축이 정의를 위해서인데 고작 형이 적다는 말은 이해가 안 됩니다.

동시에 광고 수익 계산에 대해 의문인데, 아무리 개발자들 말대로 배너 4개라도 수백만명이 이용하는 사이트였는데 정말 서버운영비로 다 날려서 남는 돈이 없다는 말이 사실일까? 라는 점입니다. 사이트 페이지 별로 계산한 쪽도 잘못했긴 한데, 그래도 거대 사이트였는데 광고 수익이 크게 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작 중에서 3인방은 그렇게 돈이 많아 보이지 않게 묘사되었는데... 모르겠네요.

어떻게 보면 이런 의문들을 양산하기 위해 다큐를 만든 거겠지만,
그래도 저건 명료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잖아요.

다만 이런 의문의 의문만 만드는 답답한 질문이 아닌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는 구석도 있습니다. 이 질문은 그들을 뿌리 뽑는 과정에 있습니다. 소송거는 쪽 (저작권협회 + 저작권 회사) 이 의외로 연줄이 탄탄해서, 뒷선에서 조건을 주고 경찰을 매수하거나 자신의 정치성향과 비슷한 판사를 내정하고, 개발자들의 정치색 치부를 드러내어 언론플레이를 했거든요. 저작권협회에서 학회를 협박해서 파일공유에 옹호적인 교수를 자르도록 하는 만행도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러지 않았다면 이 사건에서 파이럿 베이를 뿌리 뽑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여기서 다큐멘터리는, 사회에 만연한 악을 쉽게 뿌리 뽑기 위해 더러워져야 한다면 더러워 져야 하는가 아니면 두고 보며 보다 의로운 방법을 찾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다만, 말했듯이 이 다큐멘터리는 이상적이지 않습니다. 보는 사람에 따른 거죠.



한편으로 캐릭터들이 너무 강렬합니다. 심지어 중간에 잠깐 나오는 인물들도 인상적이에요. 길쭉한 숀코너리같이 생긴 교수가 나오는데, 청문회에서 '당신 우리에게 이력서 제출 안했다.' 질문이 날아오자, 얼굴을 인상적으로 구기면서 "구글 검색 안 하오?" 라고 시니컬하게 응수하는 분이었습니다. 잠깐 나오는 데도 불구하고 너무 인상깊었습니다. 아니, 그 전에 파이럿 베이의 3인방도 캐릭터가 확고합니다. 겁쟁이지만 할 말은 하는 이상주읮거 사람, 인종주의에 술꾼독설가인 사람, 범죄와는 무관하게 재밌는 일만을 쫓는 해커까지. 보다보면 저 캐릭터들이 일구어내는 기이한 시너지에 빠져보게 됩니다. 영화의 주제나 메세지와는 별개로, 이 3인의 캐릭터는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느낌에 너무 독특해서 재밌었어요.

여튼, TPB AFK는 저작권법과 불법공유를 향해 하나의 큰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위에 썼죠, 그냥 이 이야기에서 발굴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발굴해낸다고. 그렇다보니 제가 TPB AFK에서 느낀 것은 불법공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각자 자신만의 정의(사회적인 암묵적 정의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옳고 그름)를 가지고 싸우고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였을 뿐이죠. 조용하지만 첨예한 대립은 상당히 인상깊었습니다.

중후반에 드러나는 사실이고 그다지 크게 언급하는 부분은 아닙니다만, 또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요. 위키리스크의 자료를 파이럿 베이가 보존(?)해줬다는 사실이 나옵니다. 선더스톰의 사상에 의거한 행보였는데... 공공악과 손잡은 신정의(?)라니 정말 흥미롭지 않습니까. 이걸보면 아마도 세상은 빛과 어둠이 명확한 세계가 아니라 선과 악으로 완벽히 구분지을 수 없는 회색일지도 모릅니다. 그저 다 똑같은 회색이기에 이념으로만 구분 지을 수 있는 세계인 것이죠.



마지막으로 색을 뺀 서늘하고 건조한 영상미가 일품인데, 이 영상미 덕택에 작품 자체가 네오누아르의 느낌이 납니다.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란 걸 잊지 마세요. 다만 이런 영상색 덕태게 작품의 분위기와 정서가 한 방향을 갖춥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톤이라서 좋았어요. 모든 인물들과 쿨하게 거리를 둔 것 같거든요.










PS.
이전부터 이런 이슈거리가 연루된 컨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너는 누구편이냐"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미리 써둡니다. 인터넷은 큰 힘을 가지고 있고,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릅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큰 책임이란 의로운 것을 지킬 의무가 아닙니다. 그냥 한 일에 따르는 것이죠. 여튼,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모두 할 수 있는 공간이 인터넷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큰일을 벌이는 사람에겐 큰 책임(적)이 따를 뿐이죠. 그 적이 헌법의 철퇴든, 불법해커들의 공격이든 간에 그 일을 자초한 사람의 책임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사람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즐기는 편입니다. 가끔 정치색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 하에, 저에게 냉담하거나 응수하는 분들이 계신데, 저는 뻔한 이야기를 싫어하는 편일 뿐입니다. 재밌는 이야기가 터지면 거기에 올인하는 편이죠. 때로는 한 사람의 신념은 정치에 국한되어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그걸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