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티풀, 말로 감염되는 좀비 그리고 PC └ 호러/미스터리



여러분은 아타스테이션에 있습니다. 아타스테이션에서 아타는 outta가 아니라 아다입니다. 아다는 님들이 생각하는 그 뜻이 아닙니다. 아디다스를 줄인 말이죠. 아디다스는 아디다스가 아닙니다. 아디다스는 쿠크다스죠. 어제 밤에 제가 본 꽃 말인데요, 그건 꽃이 아닙니다. 반찬통이죠. 꽃은 성차별단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럴 지도 모르고요. 지금 제가 하는 말은 어떤 정치적 의미가 있는 걸까요? 어떤 의미가 있나요? 프로그램은 프로그래밍이 아닙니다. 해방이죠. 어젯밤에 저는 아디다스를 먹으며 해방을 했고 꽃을 보았어요. 저는 꽃을 만졌죠. 꽃은 텀블러입니다. 텀블러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 반찬통이 아닙니다. 반찬통은 꽃이 아닙니다. 혼란은 질서가 아닙니다. 호텔이죠.

지금 제가 정신병 걸렸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은 제가 어떤 메타포를 가지고 뭔가를 돌려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혹은 정치적인 말을 하려고 [폰티풀]이란 영화를 리뷰하는 것일까요? 제가 지금부터 말하죠. 제가 지금 이 리뷰를 쓰면 이것은 당신의 말의 이해체계를 교란시킬 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제 말을 이해하는 순간, 어떤 말들과 주장은 개념이 새로 형성되게 되는 거죠. 그 순간 그 말은 그 말이 아니게 됩니다.

저는 강간을 당했습니다. 어떤 남자에게요. 근데 그 남자가 제게 우유를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남자는 우유를 정액으로 비유해서 말한 것이었습니다. 안에다 싸겠다는 말이었죠. 그 이후 저에겐 우유는 정액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저께 선배 집에 갔어요. 선배는 냉장고에 있던 우유를 보았습니다. 상하기 직전인데, 본인은 먹기 싫어했죠. 그래서 제게 우유 먹겠냐고 묻습니다. 저는 기겁을 하고 놀라며 좆같은 변태새끼라고 외치며 집을 나갔습니다.

위는 사례지, 현실이 아닙니다.

[폰티풀]은 2008년에 나온 영화입니다. 라디오부스에서 일어나는 기묘한 사건을 다루고 있죠. 95년도에 나온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그 작가가 직접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좀비영화입니다. 하지만 좀비가 되는 과정이 기이합니다. 말로 감염되거든요.

자, 봅시다. 저는 위에 썼듯이 우유를 정액이라고 말했어요. 앞으로 여러분들은 우유를 우유로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누가 우유라고 말하는 순간 여러분들은 자신에게 상대방이 성희롱을 한 것 같아 화가 나겠죠. 이처럼, 영화 속 사람들은 말에 분노하고 좀비가 됩니다. 그 말을 듣고 이해하는 순간 뇌 안에 바이러스같은 게 퍼져서 제대로 된 행동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앵무새처럼 그 말을 반복하죠. 다수는 누구것이냐.

제가 뭔갈 건드렸나요? 그럴 수도 있겠죠. 근데 전 다수라고 했어요. 그 말한 게 아닙니다.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거에요? 계속 리뷰하도록 하죠.

말은 이렇게 기이합니다. 본래 뜻은 알고 있지만 비유적 표현과 은어때문에 본질을 본질로 이해할 수가 없게 되었어요. 영어를 하지 말라고 작중 주인공들이 말하는 이유는 영어야 말로 비유적 표현의 산지, 은어의 결정체로 무장한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Take no prisoner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저게 뭐로 들리나요.

제가 Take no prisoner라고 말하겠습니다. 제 말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죄수를 가지지 말라고요? 아뇨, 남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허나 제가 갑자기! Take no prisoner!라고 말하면 여러분들은 제가 한 말을 무슨말로 해석하실 겁니까. 정황으로 해석하겠죠. 하지만 정황도 맥락도 없다면 사람들은 그 단어의 의미를 개인적인 경험에서 꺼냅니다. 객관적이 아닌 주관적인 의미의 그것으로 해석해버리는거죠.

압니다, 좀 지나친 해석일 지 몰라요.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그 단어의 감정을 부릅니다. 작중에서 시드니는 한 이란 소녀를 우발적으로 죽인 후에 죽이다라는 단어에 민감해집니다. 그 결과 죽이다는 그녀를 미치게 만들 단어가 되어버리죠. 그래서 토니는 죽이다는 키스라고 말합니다. 죽이다가 주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을 씻을 수 있도록 단어의 개념을 바꾼 겁니다. 마치 이전에 수많은 황색언론들의 자극적 보도들에 의해, 수많은 차별자들에 의해 변질되어 일상적인 단어도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킬 단어가 되었듯이 단어의 개념을 바꿔서 그 사람을 치유한 겁니다.

이게 진정한 말의 힘이라고요.

의미 하나 때문에 뜻하지 않은 오해와 혼란과 분노가 창궐하는 현대 언어체계를 어떻게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요. 우리는 말로 상대를 죽이려는 사람과 그냥 평상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을 어떻게 구분할까요? 말에 악의와 잘못이 없음은 어떻게 구분합니까?

[폰티풀]은 말합니다. 지금이 세상의 끝은 아니라고요. 이미 말은 변질되었고, 수많은 악마같은 언론은 그 말을 이용해서 사람들에게 분노를 감염시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말을 이해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저 순수했던 단어 그대로만 쓰면 됩니다. 나를 화나게 만드는 단어의 개념을 원점으로 돌리거나, 다르게 받아들이면 됩니다. 누군가가 내세운 개념에 휘둘리지 마세요. 그 순간 [폰티풀]의 세계는 오게 될 겁니다. 아무것도 말하지 말아야 하고, 아무것도 이해하면 안되는 세상이 올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언론의 자유는 자유로 인해 일어난 수많은 사건사고로 인해 언론을 억압해야 할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자유와 평등을 위했던 정치적 올바름은 오히려 단어에 색다른 가치를 부여해 자유와 평등을 억압합니다. 그 이전에 이런 원점을 뒤바꿔 놓은 수많은 악마들을 생각해야 하지만, 많은 반론을 통해 바로잡아야 하지만,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의 정황인 아닌 말에 반응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사람들이 무지하고 멍청해서요? 아뇨. 초반에 토니는 어떤 여자의 기묘한 행동을 봅니다. 어찌 기묘한 지 그는 그 현상을 해석하려 들죠. 그는 그 일로 "911에 전화를 걸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라고 묻습니다. 말하지만 그에게 어떠한 위해가 가해진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미스터리했을 뿐이죠. 하지만 토니는 그 현상을 곱씹으며 "저게 뭘까?"라고 묻습니다.

동시에 사태가 심각해지기 전에 토니는 다른 사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합니다. 그게 과장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청자들에게 자기 의견을 마구 털어놓죠. 그게 청자들의 분노를 부르고, 이걸로 시청률이 오를 거라고 합니다. 뭐랑 비슷하지 않습니까? 전 [더 테러 라이브]가 생각나네요. 그리고 유튜브의 수많은 TV들도요. 수많은 할 말 많거나 화제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자극적인 단어를 쓰거나 은어를 새로 만들어서 화젯거리를 만듭니다. 그럼 그 단어는 더이상 그 단어가 아니게 되고, 사람들은 그 단어에 자극됩니다. 그래서 그 이후엔 그 단어를 제대로 못 듣고 화를 내고 말겠죠!

네, 그겁니다! 이미 [폰티풀]의 시대가 도래한 겁니다! 95년도의 소설과 SNS가 유행타지 않던 08년도의 영화가 지금 흔히 벌어지는 말의 오류를 짚어낸 걸까요? 어쩌면 이 글이 유행해지면 지금 현상을 폰티풀현상이라고 말할 지도 모르죠. 그럼 폰티풀은 어디서 기이하게 짜집기한 생각없는 단어가 아니라 정치적 개념이 박힌 단어가 될 겁니다. 개념이 심어지는 순간, 여러분들은 폰티풀에 대해 생각을 가지게 될 거에요. 누구는 반감을, 누구는 옹호를 하겠죠.

써봐요, 여러분들은 어떤 단어에서 감정이 북받칩니까?






...
아, 갑자기 갈증이 나는데 우유를 햝고 싶군요.

질문하겠습니다, 제가 무슨 의도로 저걸 말한거죠?
뭔가 화가 났나요? 성희롱 같나요? 왜 화가 납니까?

여러분은 이 사회에서 고작 단어에 미쳐날뛰는 좀비가 되겠습니까?
남은 그래도 전 그러긴 싫어요. 전 이기적이거든요.
남들이 병신짓 할 때 전 조용히 있겠습니다.

그래서 전 누가 뭐래든 꽃은 꽃이고, 우유는 정액이 아니라고 말할 겁니다.
저 너머에 있을 미친 새끼들에게 고하길 저는 제 소신 가지고 그리 말하겠습니다.

앗, 제가 뭔 말을 했죠.
소신. 아니 그게 아니라 소신. 소신. 소신이. 소신. 소신. 소신....












PS.
작중 토니 버지스는 95년 폰티풀 3부작을 집필한 작가입니다. 허나, 영화속에서 걸걸하고 멋진 목소리에 색깔있는 표정연기를 해내죠. [폰티풀]에서 토니를 보면서 저는 그가 원로 배우인 줄 알았습니다. 허나 아니었어요. 세상에, 근데 저렇게 연기를 맛깔나게 한다고? 샬토 코플리도 그렇지만, 세상에 평범한 사람 중에도 연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있나 봅니다. 어쩌면 그 사람들은 사기꾼들이 되어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앗, 제가 사기꾼의 정의에 대해 말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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