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DC 마블 안 따집니다 └ 일상의발견



단순히 쓰자면 저는 되게 박쥐같은 사람입니다. 어떤 것에 팬이지만 팬덤에는 들지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게임이 있다면 좋아하는 게임회사는 없습니다. 좋아하는 슈퍼히어로가 있다면 좋아하는 '소속'은 없어요. 아무리 잘나가는 소속이든 오랫동안 살면서 경영진이 좆망테크를 걸어 엎어지는 꼴을 수십번 보고 나서 차라리 소속, 회사를 빨기 보다 작품을 빠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 소속이 아니라. 소속에 들었을 때에 창작에 있어서 생기는 문제점들이 많은데, 그렇기에 내가 원하는 방향의 작품을 고르게 내줄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나온 작품을 보고 그게 맘에 들면 빠는 겁니다. 그리고 DC든 마블이든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은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서, 어느 편에 설래? 하면 저는 항상 망설여집니다. 그래서 박쥐가 되는 거죠. 결국 양 팬덤에게 두들겨 맞는 놈이요.

노파심에 쓰는데, 사실 저는 왜 그렇게 편 가르고 싸워대는데? 라며 팔짱끼는 부류가 맞습니다. 그걸 불편해하는 사람도 맞고요. 하지만 남에게 너도 불편해해라라고 강요하려고 이 글 쓰는 건 아닙니다. 그냥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걸 쓰는 것 뿐입니다. 그걸 가지고 '인상을 받으면 받는 거고 아님 아닌거고'입니다. 이걸 쓰는 이유는 가끔 시비가 걸려서요. 시비가 걸리면 저는 이 글 링크 걸어서 내가 어떤 입장인지를 대신 표명하려고, 그럴 의도로 이 글 쓰는 겁니다.

제가 무언가를 대표하는 존재도, 좆나 똑똑하거나 중요한 건 수를 쥔 사람도 아니라는 건 알아요. 근데 뭐 썩 유쾌하게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렇다보니 너는 무슨 편이냐가 중요한 거겠지요. 무슨 편에 서있을 때 상대진영이라면 공격하기 편하고 아군진영이라면 군기잡기 편하니까. 뭐 나는 박쥐라서 모두의 상대진영이라서 줘패임당하기 딱 좋은 포지션이지만.

아무튼, 아무튼. 슈퍼히어로에서 DC냐 마블이냐를 따지는 사람이 많고, DC는 왜 그렇게 못하냐 마블은 왜 그렇게 유치하냐 그렇게 따지는 게 싫어요. 싫은 게 아니라 귀찮아요. 그리고 어벤저스를 극히 싫어했는데, 그거 하나 위해서 내가 맘에 안들어하는 영웅영화까지 봐야 하는 게 맘에 안 들어서요. 물론 애초에 그게 싫어서 어벤저스를 안봤지만. 그냥 말하자면 어느 진영의 것이든 전 제가 싫으면 싫습니다. 좋으면 좋은거고요.

제가 슈퍼히어로를 좋아하는 이유는 슈퍼히어로 특유의 비극 때문입니다. 있잖아요, 적을 만드는 건 쉽습니다. 어떤 편에 서 있으면 됩니다. 그것도 강하게요. 만일 제가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며 그를 통한 태극기부대처럼 자경단(?) 짓을 한다면 저는 정말 적을 엄청 만들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안 합니다. 적을 만들기 싫으니까요. 제가 박쥐처럼 사는 이유도 욕은 먹고 쳐맞더라도 그래도 적은 만들기 싫어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유진영 속에서 양쪽으로 쳐맞지만 그래도 어디든 붙어 있을 수 있거든요.

일단 적을 만들면 그 자체가 비극입니다. 만일 제가 위처럼 굴 때, 가족 중에 저와 가장 친한 동생이 극렬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라고 생각해보세요. 어우야 비극이죠. 혹은 내가 진압방패로 사람들 때려잡다가 그 사람이 빡쳐서 나라를 뒤집어놓는 테러리스트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 정의감을 이해못하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욕을 먹겠지요. 언론에서는 시도때도 없이 조롱할거고. 어느날은 함정에 빠져 반대파에게 얻어맞을 수도 있지요. 그 속에서 자기 신념을 지키기란 어려운 겁니다. 스파이더맨처럼 버틸 수도 있지만, 제이슨 토드처럼 비뚤어질 수도 있죠. 저는 비뚤어지든 올곧게 가든 모두 좋아합니다. 모두 제 딸감 안에 있어요.

아무튼 저는 괴로워하고 고뇌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계속 문제와 직면하며 상처를 받지만 자신의 신념을 고치거나 견고히 다지는, 그런 인간상을 좋아해요. 사실 그건 슈퍼히어로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모든 이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죠. 하지만 슈퍼히어로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변하면서, 날아다닙니다. 그럼 내가 날아다니는 느낌이 들어요. 왜냐하면 그 과정성을 빼면 사실 이것도 삶을 사는 이야기 중에 하나니까요. 그래서 그 삶에 공감하는데, 그 공감한 캐릭터가 날아다니네! 그러니까 나도 나는 기분이 드는 거죠. 그렇다보니 가끔은 내 걱정과 분노와 삶에 대한 남루함을 저들이 대신 들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받은 이슈들이나 작품들은 딱히 마블에 국한되어 있거나 DC에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가끔 DC의 분위기에 젖어들다가도, 가끔 마블의 분위기에 젖죠. 뭐 테이스트란 소속에 국한되어 있기보다 작가의 취사선택에 달려있는 것이긴 합니다만... 어쨌거나 대체로 그러니까요. 이것은 파장범위같은 것이니.

그래서 저는 박쥐의 삶을 사는 거죠.
저는 어떤 유니버스에 종속되고 싶지 않아요.
그냥 테이스트가 잡탕이란 말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노인이든 수인이든 상관없어요.
하크니스 테스트를 통과했고, 맛만 있으면 그만입니다.

근데 꼭 사이드를 정하고 서로 배척해야 할 필요가 있냔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