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힐:섀터드 메모리즈 └ ADV/퍼즐



지금은 다소 묻힌 감이 있는데, 2000년대 초반의 코나미는 확실히 행보가 이상하긴 했다. 정확히는, 메이저 게임 개발사 치곤 행보가 이상했다. 작가주의적이었다고 해야할 지. 아니, 그냥 작가주의적인 게임이 많았다. 지금은 프롬 소프트웨어가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프롬이 유명해지기 전에는 코나미도 만만찮은 작가주의의 첨단을 달리고 있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근래 코나미가 타락한(?) 이유는 별나봤자 돈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일런트힐 시리즈는 2000~2010년대의 코나미의 대표작 중 하나로서, 아케이드의 느낌이 있던 코나미의 이미지를 탈바꿈하기도 했다. 게임성은 둘째치고, 가끔 아티스트적인 기질이 보이는 느낌? 호러지만 겜성과 작가주의적 암시가 넘치는데, 가끔 돌려보면 이게 메이저에서 나올 게임인가라는 의문이 들곤 한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게임 시스템에 대한 심오함(파고들기의 부족함)의 문제는 있지만 그래도 사일런트힐 시리즈는 늘 새로운 시도를 하는 부분이 있었다. 아이디어가 넘쳐흘렀다.

요오즘 인디게임들이 사일런트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영향은 개뿔. 그냥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부랴부랴 그 뒷자취를 따라가는 데에만 급급한 게임들이 많다. 호러RPG의 중심엔 시스템쇼크2가 있다면, 겜성호러의 중심엔 사일런트힐이 있다. 내가 아까 사일런트힐의 방법론을 지금도 따르고 벗어나지 못한다고 썼는데, 이 말은 인디게임개발자들이 게으르고 창의력이 없다는 말을 정중하게 돌려말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일런트힐이 그만큼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는 찬사이기도 하다.





[셰터드 메모리즈]는 그 시리즈 중에 상당히 묻힌 감이 있는 작품이다. 일단 사일런트힐2와 3는 지독하게 언급되는데 이건 언급이 안되니까 묻힌거지. 허나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높게 친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리부트라는 것에 대한 기준을 향상시키거든.

리부트 영화를 본 사람들이 있다면, 그걸 만든 작가들이 있다면 이 생각이 들거다. 결코 원작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원형이 이룬 업적을 현대적 분위기에 맞게끔만 고치는 정도에 불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안전한 리부트를 만들 수 있지만, 그래도 문제가 있다. 원작의 정서와 리부트의 정서가 뒤섞이면서 서로 덜그럭 거리는 게 눈에 보인다는 것이고, 원작 따라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혀서 작품에 대한 호응이 좋아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작품이란 게 '난 원래 이랬어'라는 스웨그가 있어야 그 카리스마에 빨려들게 되는 것인데, 그게 안되면 정말 빨려들기 힘들다.

이건 이런거지,

원래 욕을 하던 할머니가 식당을 차려서
자연히 욕쟁이할머니 식당이 된 거랑

욕을 천생 안하지만 욕쟁이할머니 식당이 돈이 된다고 하니까
컨셉을 이걸로 잡았으나 애초에 개인성향이 욕을 천생 안하던 사람이라
캐릭터가 덜그럭 거리고 다소 싱겁고 뭔가 덜 여문듯한 느낌이 드는 식당주인

여기서 리부트 작품의 완성도는 대체로 후자의 느낌에 가까웠다.
게임원작영화도 마찬가지










근데 셰터드 메모리즈는 다르다.
이걸 위의 사례로 비유하자면,

분명히 욕쟁이 할머니 식당을 따라한 식당인데
그 주인이 사무엘 L 잭슨이다










셰터드 메모리즈는 1편의 코즈믹호러와 2편의 심리 호러 노선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1편이 코즈믹호러 노선을 대놓고 고르던 것에 비해 노선이 살짝 다른 것. 색상 톤도, 이면세계의 컨셉도 모두 변화시켰다.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느꼈겠지만, 호러성은 많이 뒤떨어졌다. 원작이 코즈믹호러에 심리 호러 테마를 살짝 붙인 셈이었으나, 이 작품은 심리 호러 노선을 중심으로 깐다.

심지어 심리테스트적 요소가 가미되었고, 유저가 선택한 것이나 심리에 따라 세상이 변하는 것은 사일런트힐의 이면세계의 특징인 악몽의 컨셉을 아예 무시한 게 아닌 동시에 새로운 활용성을 제시하는 것과 같았다.

특히 이것은 보통 기술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지만 구현하기 어려운 기술도 아니었다.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유저가 '오, 이거 흥미로운데?'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의 기술인데 세심하게만 신경쓰면 구현가능한 기술이었으니. 기술을 써먹는 방법은 흥미를 끌어야 하는데, 내가 선택한 대로 월드가 변하고 그 월드가 내 심리를 반영한 거라니 흥미가 안 갈 수가 없잖아. 왜냐하면 내적인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싶어하는 심리도 있으니까, 그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일런트힐과 같은 오프라인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내적 성향이 분명히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셰터드 메모리즈의 스토리는 부녀관계에 대한 이야기이자 가벼운 심리학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정확하진 않지만 흔히 들어봤을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부모는 아이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왜냐하면 아이가 처음 접하는 작은 사회이기도 해서다. 아이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정치를 배운다. 아이가 떼쓸 때, 부모가 소리를 지르며 제압한다면 아이는 목청이 큰 사람이 이긴다는 심리가 뇌리에 각인되게 된다. 그럼 그 아이가 커서 뭐가 되느냐? 목소리로 이기려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

하지만 부모 잘못이라고만 마냥 쏘아붙이지 않는 절묘한 스토리와 심리 묘사가 인상적이다. 위와 같은 사실에 의거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결함을 부모 탓으로 돌리고, 자신의 미래는 이미 부모가 망쳤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어떤 설교도 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그런 사람들에게 셰터드 메모리즈를 권유하고 싶다. 직접적이지만 온건적으로 말하는 게임이거든. 마지막 반전도 그렇고, 다분히 교훈적이나 감동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본작이 2편의 노선과 같지만, 애드거 앨런 포의 찝찝한 단편을 보는 듯 했던 2편의 느낌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동시에 2편보다 더 많은 것을 시사한다.








허나 의미와는 다르게 게임 자체는 너무 끔찍하게 지루하단 게 문제. 기술과 스토리텔링과 심리적 디자인과 분위기를 세공한 디테일이 매력적인 게임이나, 게임 플레이에 대한 흥미는 너무 빠르게 사그러든다. 한번 심심풀이로 하는 심리테스트 요소와 같이 재회차가 의미가 없다.

숨바꼭질 요소는 단순하지만 생각이 없다. 그냥 미로같은 레벨에서 길을 찾으며 뛰어다니고 적들 붙으면 떨치고 하면 되는 거니까. 잠입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지만, 그게 그렇게 효율적으로 먹히는 것도 아니고 거기서 복합적 요소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아웃라스트 생각하면 된다. 단순하고 시원시원함이 좋지만 동시에 그런 미니멀함에 파고들 깊이가 얉아져 버린. 퍼즐도 깊이가 얉고.

그래서 흥미가 사그러든다. 무거운 분위기 탓에 사일런트힐 특유의 시리즈의 고약한 개그나 뒤틀린 배경센스도 많이 부각되지 않아서 탐험할 맛이 많이 나지 않기도 하다.









그래도 추격파트와 어드벤쳐 파트를 따로 나눈 건 호평할 만하다. 긴박한 시간 동안 도망치면서 바닥이나 구석탱이에 숨은 아이템 찾으라고 하는 게임들이 참 많은데, 그런 짓은 가끔 하다보면 짜증만 나곤 했으니까.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도망치면서 흐르는 노르 아드레날린이 사고를 경직되게 만들기에 결국 이 방식은 외우기 신공으로 나가는 방법밖엔 없다. 그래서 추격 파트에 어드벤쳐 파트를 넣는다면 흔히 써먹는 어드벤쳐 파트 클리셰를 집어넣고 대놓고 그 방법을 써야 한다고 배경과 UI로 설명을 주어서 사고가 유연할 필요 없이 깰 수 있도록 만든다.

물론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건 게임을 공평히 어렵게 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그 두 개가 동시에 시행되었을 때의 시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캘리포니아 롤같은 거야. 당장 300m 달리기 코스 아무 곳에 바늘 하나 던지고 300m를 1분안에 독주하면서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진 바늘을 손 다치지 않게 줍는 시도를 해보라고. 그게 재밌냐.

즉, 내가 추격파트와 어드벤쳐 파트의 분리에 호평한 이유는 시너지 없는 도전에 시간을 낭비하게 하지 않고, 유저가 자신이 하려는 것에 대해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며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그냥 할 일을 나눠서 어드벤쳐 파트땐 어드벤쳐를 즐기고, 추격전 땐 추격전을 즐기면 되니까.








게임 시스템 자체는 전례가 없고, 그 1회의 감동과 생각할 거리들이 주는 여운이 상당하다. 창작자로서 정신교육(?)이 되기도 한다. 진짜 무언가 리부트를 하려거든 셰터드 메모리즈를 보고 그들의 정신을 본 받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당시엔 진짜 무시했는데, 이렇게 정교하고 깊은 생각을 가지고 시행한 리부트 였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고...

허나 위의 호평은 개인적인 것. 만일 경험적 요소와 실험적인 것에 가치를 둔다면 본 게임은 긍정적으로 보이겠지만, 레벨디자인의 깊이와 탐험적요소나 화려한 것들, 파고들 요소에 신경을 쓴다면 크게 좋은 게임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난 전자와 후자 사이에서 전자에 가깝기 때문에 호평하는 거다.












PS.
후반에 놀이공원 근처에서 나오는 BGM에 샘플로 들어간 멜로디가 하나 있는데, 그게 귀에 익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바로 이거였다.



Dustbin의 Pinknoise인데, tracker로 만들어진 음악이다. 그 중에 중심으로 돌아가는 샘플 멜로디를 하나 쓴 것. 그나저나 이거 아는 사람 극히 드문데 어떻게 찾아서 써먹을 생각을 했는지 기이하다; 이게 어디 로얄티프리 샘플CD에 있었던 건가...




PS2.
크레딧에 유저의 심리테스트 결과를 내보이는데 전혀 맞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진심으로 테스트에 임했는데 전혀 내 맘과 맞지 않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친구를 만들기를 두려워하니 히키코모리 성질이 있고, 섹스를 경계하지만 하면 침대에서 날아 다닌다느니, 나와는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테스트가 정확하지 않은 게 분명하다.

그래 테스트가 잘못한거야.
안 그래? 윌슨? 윌슨?? 분명에 내 오른손에 붙어 있었는데 얘가 어딜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