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향의테러 └ 드라마/스릴러





내가 봐온, 비뚤어진 청춘들이 세상을 뒤집는 작품은 늘 클리셰가 있었다. 잘 나가다가 어느샌가 계획이 틀리고, 결국 예정된 파멸로 가지만 끝내 비극으로 간다는 것. 근데 죽을 때 비극과 청량감이 동시에 폭발한다. 드디어 죽어서야 자유를 찾았다는 느낌.

본 작품도 그런 작품. 테러 이야기를 하지만 사회나 정치권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의 슬픔과 현재의 극단을 대비적으로 그려낼 뿐이라. 테러씬 묘사가 가장 묘한데, 폭탄이 터지기 직전의 폭풍전야를 그려냈다가 폭발하는 순간엔 온갖 재즈, 빅밴드 음악을 뒤섞어 혼란과 기쁨을 표현한다. 그래서 혼란스럽지만 어쩐지 신나는 기분이 들었다.

폭탄 테러를 할만한 사유가 되냐는 말에는 확실히 동의한다. 차라리 세상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면 다른 방법도 충분했을 거야. 그래서 전말을 보고나니 폭탄테러로 간다면, 시원한 복수극으로 깔끔하게 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특정 사상에 대한, 자신들을 그렇게 몰아버린 전체주의의 망령에 대한 복수극. 하지만 뭐 이렇게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머리는 좋지만, 타인에게 어떻게 속마음을 표현해야 할 지 모르는 이들이란 설정이 붙기 때문에. 약간 비뚤어진 인격과 타인에게 어설픈 대처가 그 느낌을 더 견고히 한다. 생각해보면 이들은 자신들의 작전을 개시할 때 분장으로 자신의 몸을 숨기지만, 단 한 마디도 타인과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럴 위기를 안 준 것도 그렇지만, 그럴 상황이 안 나오도록 계산한 것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그런 위기가 닥쳤다면 그냥 대충 몇 마디로 때우다 걸리고 말았지 않았을까. 과거의 트라우마나 성장기의 경계심, 꼬리를 지우는 삶에 갇혀 타인과의 교류를 많이 못하다보니 표현력이나 소통능력이 서툴렀던 것이다.

그 서투름의 극단은 리사를 대하는 트웰브의 태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기도 하고. 트웰브가 리사를 협박하는데, 생각에 자신이 리사에게 관심이 있고 좋아한다는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 지 몰라서 협박한 느낌이다. 트웰브가 리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테러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계속 표현하는 부분은 리사에 대한 마음이 있지만 어떻게 꺼내야 할 지 몰라 일단은 붙들고 보는 심리상태를 보여준다. 그리고 리사의 실수에도 자신들이 겪었던 냉소적 현실을 언급한다. 냉소적이다 보니 남에게 쉽게 상처주지 못하는 리사에게 편안한 마음을 넘어 온정을 품게 된 것이겠지.

과거 정치권 사람을 바라보는 형사의 노려봄은 그동안 일본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또 하나의 세력을 기억나게 했다. 일본 내부 정치권에서 전체주의의 위험성과 경각심을 가지자고 말하고 뿌리까지 뽑으려다 못해 밀려나간 사람들. 내가 알기론 독일은 내부 인식 개선에 성공했지만, 일본은 그러려다 모종의 이유로 막혔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형사와 의원의 대담은 그 결과로 사이드로 밀려났던 그들을 대변하는 느낌이었다. 허나 그걸로 우익까는 애니메이션이라고 본다면, 비뚤어진 청춘들의 마지막 한방을 묘사하는 잔향의 테러의 카타르시스를 깎는 느낌이라 그렇게 보기는 싫었다. 그냥 청춘이야기는 저항주의적 성향이 들어가니 일본에서 저항주의라면 딱 그거라 그 소재를 살짝 꺼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두뇌싸움을 벌이는 부분은 너무 지적과시가 심한 느낌이라 싫었다. 고도의 두뇌싸움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려는 방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스핑크스가 내놓은 수수께끼들이 작품 속 주인공들의 처지를 암시했으면 좋겠지만 그 수수께끼와 주인공들의 사정은 연결이 되지 않는다. 작품 내에서 형사가 오이디푸스라고 하던데, 형사의 이력을 살펴봤던 나인과 일레븐이 할 비유가 전혀 아니다. 형사가 거기서 자기 눈을 찌른다는 비유까지 가려면 형사가 정부에 반대하는 존재가 아닌 친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즉, 오이디푸스 비유가 맞지 않는다. 이렇듯 모든 암시들이 시원하게 연결이 되지 않고, 어딘가 빙 둘러야 겨우 연결될까 말까하는데, 난 그게 싫다고.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도 않은 걸 보면 작가진들은 수수께끼를 극적 요소로 쓰거나 암시로 쓰는데 별 관심없던 것 같다. 문제는 그게 작품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는 게 문제지. 이대로 가면 그냥 지적 과시 가능한 문제 내서 관심끄는 두뇌대결 작품들과 뭐가 달라.

체스도 어떻게 보면 두뇌싸움 대결의 필수로 등장하는 것으로 이 또한 과시적인 느낌일 수 있지만, 그건 반대되는 주인공의 머릿속을 암시하는 부분이라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그녀에겐 이 모든 게 거대한 체스판으로 보이고, 지적 승리만이 그녀의 목표였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니.





아무튼 잔향의 테러에서 극적 요소로 두뇌대결이나 테러리스트와 경찰과의 대결, 정치비판요소를 집어넣긴 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극적 요소일 뿐이라고. 그보단 복잡한 세상과 대면하며 혼란과 안정의 극단적 폭풍을 겪는 청소년기의 정서에 모든 게 집약되어 있다. 보다보니 예전에 봤던 어떤 일탈형 청춘소설을 보는 것 같았다. 사회의 묵인 속에 어딘가 음지에 숨어 있다가 더이상 견딜 수 없어 뛰쳐나온 녀석들. 안타까운 결말이 이어지지만, 생각해보면 그걸 조용히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건 늘 어른들 몫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일어낸 일이라기엔 멀어서 마냥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고, 저녀석들이 심한 일을 저질렀기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뭐라고 일방적으로 누군가를 비난하기 어려운 상황에 앉아 한숨만 푹푹쉬게 되는 상황들. 잔향의 테러는 그런 사회의 일면을 비극적 카타르시스란 폭탄 속에 숨겨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