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와 최선의 수 //영화광



이번 만큼은 트레일러 관해서 왈가왈부 하기 싫었는데 남의 블로그에서 덧글 쓰다 너무 내용이 지나쳐져서 결국 따로 분리해서 쓰기로 했습니다. 제 속에서 말을 하고픈 의지가 강하다는 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별로 영양가 있거나 말초신경은 자극하는 건 아니고, 사적 생각과 잡담이 너무 길어져서요;



이건 제게 크로니클을 기억나게 했습니다. 크로니클 때, 저는 제 기억을 떠올렸어요. 매번 말하지만 한끗 차로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었을 것이라. 그래서 공감해서 보았고, 크로니클을 보며 주인공이 불쌍하다고 했는데 같이 본 분은 단칼에 자르며 이런 말 했습니다. '난 그 녀석이 답답했다, 이해할 수 없다.'고요.

사건의 여파에서 벗어나고 용서하는 데 시간이 걸렸기에, 저 말의 의중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제서야 온전히 벗어나서는 이해가 가더라고요. 어떤 사람이 비뚤어지면 비뚤어진 감성을 이해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감성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정확히는 사회적 병폐에 의해 온전히 비뚤어져서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을 보는 것을 보는 이들에게 보여주면 그 감성을 세밀하게 포착해도 '지금 내게 이걸 보여주는 의중이 뭐냐'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말이죠.

네, 물론... 크로니클은 그런 사회적 병폐속에 시들어가는 사람을 묘사했기에 그나마 납득될 수 있었습니다. 허나 자세히 보면 주인공은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지, 이 상황을 타계할 시도는 전혀 안 하고 있습니다. 토 한번 했다고 미친듯이 날뛰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가는 겁니다. 자신의 처지나 사정을 주변인들에게 알리거나 벗어나려는 시도를 안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그걸 견디고 비틀어지지 않고 멀쩡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좀 해괴해지는 겁니다. 그냥 답답한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그냥 스스로 안주하다 비뚤어지는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단 말이죠.

잘못하면 모두의 공감대와는 상관없이,
이 녀석 혼자 폭주하는 이야기를 듣는 격이 되버리는 겁니다.

조커는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배트맨이 그를 완성하기에 조커의 존재 의미가 완성된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본 작에는 배트맨이 없기에 조커의 의미가 없다고. 허나 말이 의미지 저는 조커가 타 빌런처럼, 배트맨의 생각을 뒤흔드는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히어로물 안에서 소비되는 존재, 그 이상은 아니라고요. 그런데 그 의미에서의 조커라면 조커의 단독영화를 내보낼 의미는 없습니다. 그 생각 때문에 저는 애초부터 빌런 다룬 영화가 나온다는 점에 의심을 품었습니다.








허나 그건 제 생각이죠. 쟤들이 뭔 생각이 있으니 영화를 만들었을거고, 프로젝트는 베테랑 다수의 생각이 모여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조커 단독영화 프로젝트는 어떤 방향으로든 제 생각과 우려를 침식시킬 뛰어난 아이디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안 쓰려고 했던 거죠. 결국 위처럼 소개나 한 줄의 우려가 아니라 허공에 대고 이거 뭔가 이상한데라는 쓰는 격이라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생각하기를, 가장 최선의 수는 그거였습니다.

조커란 인물을 조명하는 게 아니라 작품 자체가 조커가 되는 겁니다.

영화 [조커]는 계속 비뚤어진 사회를 다룰 겁니다. 그리고 배트맨이 존재하진 않지만, 배트맨을 조롱할 방법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일단 고담안에 있고, 언젠가 배트맨은 탄생할 테고, 관객이 배트맨을 알고 있고 배트맨의 편일 테니까요. 그렇기에 배트맨을 지지하는 관객의 생각을 뒤흔들면, 고담시의 모순을 뒤흔들면, 배트맨을 뒤흔드는 것과 같은 셈이 됩니다. 그를 위해 영화 자체는 조커가 되어 비뚤어진 사회를 그리고 관객에게 깊은 mindfuck을 선사하는 거죠. 가장 좋은 방법은 조커 스스로가 배트맨처럼 구는 겁니다. 배트맨처럼 굴다가 망가지면 그것 만한 조롱이 또 없으니까요.

정리하자면 작품 내에서 배트맨이 없어도 됩니다. 이상한 소리지만 그래요.

허나 말했듯이 이건 정말 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 말에 동의하게 만들려면 정말 사람들의 생각을 관통하는 엄청난 수를 연속해서 둬야 합니다. 한 수라도 잘못 두기만 해도, 관객은 이입차원에서 빠져나옵니다. 이입차원에서 빠져나오면 어떤 관객이든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라며 불쾌감을 표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생각을 해봤습니다. 위처럼 메타적 차원이 아니라 극적 차원에서 해본 거죠. 그 결과, 아서는 배트맨이 활동할 적의 조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배트맨이 활동할 적의 조커를 만들어내는 원인을 제공하는 사람이 될 거란 점이죠. 즉, 아서는 조커의 원형을 제시했고, 배트맨이 활동할 적의 고담 시민 중 누군가는 그 조커의 원형을 받아들어 2대 조커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배트맨에 대해 집착하게 되는 계기가 암시되듯이 나오겠죠.

아, 근데 그렇게 되면 또 희한한 이야기가 터질 수 있겠네요. 조커고 배트맨처럼 굴었다면 그의 언행을 따르는데 두 가지 면이 나올 수 있는 겁니다. 어쩌면 미래의 배트맨이 과거의 조커가 이룬 많은 일에서 영감을 받아 배트맨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의 조커도 선대 조커의 영향을 받을 수 있지요.

즉. 그렇게 생각해보면...
하나의 조커에 의해,
선대 조커와는 다른 생각을 지닌 조커와 배트맨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

...생각해보면 할 수 있는 수가 꽤 되네요.








결정적으로, 이 글은 개연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이야기든 개연성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세상의 일부를 떼내어 작가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비약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허나, 감정의 이입이 들어가면 그 비약이 설득력있게 메워집니다. 때로는 장르적 재미에 의해 비약이 메워지기도 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가지고 비약을 메우기도 합니다. 이제 어떻게 그 비약을 메웠냐가 중요한데, 조커같은 작품은 지나치게 아싸적인 이야기라, 저는 그 이해의 갭을 메우기 힘들거라는 우려를 계속 돌려말하고 있는 겁니다.

...근데 제작자 양반들이 그 정도로 영리한 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광기의 정의 때문에요. 제가 광기의 정의에 대해 이야기 했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