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즈 파라독스 └ ADV/퍼즐



니어 오토마다 감독인 요코 타로가 디자인을 맡은 서바이벌 호러. 서바이벌 호러인데 서바이벌과 호러는 빠진 게임이라는 해괴한 평을 듣는 게임.

서바이벌 호러보다는 어드벤쳐에 가깝습니다. 카메라 방식이 바이오하자드 스럽지만 게임자체는 그렇지 않아요. 그냥 이동하며 아이템 찾고, 아이템 적절한 데 끼워넣고, 이벤트 일어나는 곳만 찾으면 끝나는 게임이라 호러와 서바이벌이 들어갈 틈이 없거든요. 심지어 전투도 "쏠까요?", "말까요?" 선택하는 것에 가까운데, 전투에서 살아남는 답이 1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냥 수많은 갈래중에 성공하는 솔루션 하나를 찾는 것에 가깝습니다.

게임이라고 하기엔... 쫌 무리가 있어요. 그냥 비주얼 노벨입니다. 어떤 분들은 비주얼 노벨에 게임성이 있다고 말합니다만, 비주얼 노벨은 게임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그게 비주얼 노벨의 가치를 깎는다고 생각하는데 그거 아니에요. 비주얼 노벨은 스토리를 전달하는 매체일 뿐이라 게임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치를 매겨야 합니다. 선택과 결말의 아이러니에 대한 것이지, 유저가 능력을 발휘하고 도전하고 성취하는 것이 존재하는 게임과는 다르다고요. 작가가 선정한 수많은 떡밥 가운데 진엔딩 떡밥을 찾는다는 것도 도전이다라고 주장하는 건 억지입니다. 남의 생각을 읽는 것도 도전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요. 어떤 맥락도 논리없이 제가 에이스 카드를 던져놓고 내 마음을 읽어봐라고 말하고 당신이 그에 응한다면, 그게 도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건 점이죠.

이렇게 페이즈 파라독스는 대부분의 상황에 어떤 힌트도 없습니다. 좀비가 나타나면, "쏜다"를 고르는 게 정답이잖아요? 근데 쏜다를 선택하면 좀비를 쏘다 총알이 나가 버려, 끝내 좀비에게 쳐맞고 죽습니다. 정답은 한번 쏘고, 한번 기다리는 겁니다. 그러면 총 쏘는 소리에 *어디서 있었는 지 알 길이 없는* 동료가 도와주러 옵니다. 문제는 한번 쐈을 때 동료의 존재를 암시하는 영상은 없단 말이죠. 한번 쏘고, 다음 선택지에선 쏘지 말아야... 그러니까... 이걸 대체 뭐라고 해야 합니까?; 개연성이 없는 건 아닙니다. 설명하다보면 개연성이 생겨요. 하지만 그래봐야 게임에서는 주먹구구식으로 선택지를 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유저는 속을 알 수 없는 작가의 떡밥의 미로 속에 있거든요.

좀비하니 말인데, 좀비가 등장합니다. 투명 괴물도 등장합니다. 그리고 인간 중에 누가 좀비가 될 수 있을 지 알 수가 없는데, 이 좀비가 그냥 좀비가 아니라, 인간들을 선동하거나 인간 뒤에서 공격하는 좀비입니다. 멀쩡한 척 있다가 자기가 유리한 위치에 있을 때 공격하는 놈들이죠. 근데 또 좀비가 되면 공격본능외엔 지능이 전무한 멍청한 존재가 됩니다. 이게 뭡니까.

그래도 바이오하자드보다는 좋은 구석이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지도를 볼 수 있단 거요. 옛날 PS1 시절 바이오하자드 저기에 더 갈 필요가 있나, 공간이 있는 건가 라며 해멨던 요소가 단번에 해결됩니다.










게임 자체의 결말은 뭔가 이상합니다. 그러니까 결말 직전에 각 캐릭터의 시선에서 게임을 플레이 하게 됩니다. 근데 그... 까페베네 있죠? 그렇게 끝납니다. 흑백 정지화면으로 탁 변하더니, 주인공의 독백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보스와 직접 대면하는 남자캐릭터의 경우엔, "우리는 다음 페이즈로 넘어간다"라는 알 수 없는 메세지를 받습니다. 그리고 끝나요.

어떤 사람들은 위의 무맥락성과 애매한 결말로 인해, 본 게임을 쿠소게라고 합니다. 근데 그에 반기를 들고 "아니, 이 게임은 평작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디, 그 사람들 말을 들어봅시다. 그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게임은 아니지만 스토리는 전작의 요소를 잘 담습했으니까."

전작이 있다고요? 궁금해지네요. 95년도로 돌아가 봅시다. Philosoma라는 게임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횡스크롤 슈팅 게임이며 충격적 결말로 유명합니다. 그 결말이 뭐냐면... 용병들이 임무를 수행하는데, 수행하다보니 어딘가 깊은 곳으로 가게 됩니다. 거기서 외계인을 처리하고 탈출하죠. 허나, 그게 실수였습니다. 외계인은 전투하며 자신을 공격하는 용병단의 뇌 속에 도킹을 시도하고, 본체는 터졌지만 외계인의 정신은 용병의 뇌에 있던 거죠. 그 상태로 용병단의 모선에 들어간 겁니다. 그게 결말이었습니다.

그리고 페이즈 파라독스는 Philosoma의 정식 후속작이었습니다. 초반에 인큐베이터 속 여성이 눈에 보이죠. 그리고 결말에서 그 여성이 눈을 뜨며 게임이 끝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전작의 주인공이었던 거죠. 그러니까 주인공 일행들이 겪는 외계인의 습격은 바로 전작의 주인공 때문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위에 쓴 결말은 결국 주인공 일행들이 다 해결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조차 외계인의 계략속에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즉, 어떻게 해도 외계인의 '페이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주인공 일행들에게 계속 선택지가 주어지는 것도, 하나의 결말로 나아가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어떤 방식이든 외계인이 이기지만, 마지막에 유일하게 주어지는 해피엔딩은 주인공들이 살아남지만 그래도 외계인이 이기는 결말인 셈입니다.

페이즈 파라독스는 게임 자체는 훌륭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전작인 Philosoma도 좋은 평을 받는 게임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전작을 해본 이들이 "어린 시절 나의 트라우마였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호러적인 요소가 은연중에 깔려있었습니다. 정확히는 코스믹 호러요. Philosoma는 처음에는 그냥 신나는 슈팅, 중반으로 갈 수록 외계인이 등장할 때는 R-Type과 그라디우스에 영향 받은 슈팅처럼 보입니다. 페이즈 파라독스는 당시 흔하게 튀어나온 서바이벌 호러게임 같죠.

하지만 두 게임의 목적은 같습니다. 게임을 클리어하려는 유저의 목적과 본능이 역설적으로 외계인의 진화를 돕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유저는 급한 불을 진화하려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놈들은 진화합니다. 그런 역설을 스토리로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페이즈 파라독스인거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게임이 좋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말했듯이, 이건 은연중에 상당히 무서움을 자아내요. 게임 자체는 지루하고, 너무 상투적이고, 바이오하자드를 연상케하는 발연기와 해괴한 상황연출이 웃기지만, 그 놈의 상황 하나는 기가막히게 소름 돋는단 말입니다. 외계인에 의해 행동이 제어되는 게 좀비라면, 감염되지 않아 자유의지적으로 생각은 할 수 있지만 본능을 건드려 통제당하는 상황이라면 그게 좀비와 뭐가 다른 상황인가요?

물론 게임 안에서 선택을 만드는 것은 디자이너입니다. 유저는 디자이너가 만든 선문답 안에서 놀고 있는 셈이죠. 그렇기에, 화면밖으로 넘어가 인간적인 비판을 하기엔 확실히 모자름이 있어요. 따라서 스토리 안에서, 외계인 안에서 놀아나는 인간들이라는 테마의 코스믹호러를 즐기는 정도에 그치는 겁니다. 허나, 가끔 제시하는 선택지가 가끔 속을 움찔거리가 하는 게 있어요.

여태껏 사람이 좀비가 되서 공격하는데, 누가 당신에게 총을 들이댑니다. 당신은 무슨 짓이냐고 공격하려 하겠죠. 근데 거기서 그 사람의 눈의 멀쩡함을 눈치챘다면 총을 내릴 겁니다. 하지만 수 초 내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럴 수 있을까요? 수 초 안에 선택하게 되는 건 이성보다는 사람의 가장 개인적인 생각에서 일어나는 행동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가장 원했던 선택이 수 초 안에서 빠르게 떠오르는 것이라고요. 그 선택에서 당신은 공격하게 될까요, 아니게 될까요?

그리고 당신이 흔히 선택하게 되는 그 선택의 성향을 놈들이 안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