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 오브 로즈와 예술성에 대해 └ ADV/퍼즐

[룰 오브 로즈]를 하면서 지루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이 게임의 스토리에 대해 크게 감탄했기에 저는 궁금해서 플레이한 건데 말이죠. 하지만 끝내 너무 지루하고 핀트가 자꾸 어긋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스토리텔링은 [사일런트힐2]의 추상적 화법의 극한을 몰아붙인 느낌이지만, 그게 나쁜 게 아니에요. 단지 어딘가 방향성이 심히 뒤틀려 있고 거리도 멀어있습니다. 일단 저와는 거리가 매우 멀었어요.

주인공이 마주하게 되는 현실은 두려움과 죄의식이며, 보자기 둘러쓰고 청소하는 애들은 사실 죄의식의 상징이자 환영입니다. 허나, 이런 이야기에서 꼭해야 할 주인공이 진실을 마주하기 어려운, 두려워하는 경계선에 대한 묘사가 없습니다. [사일런트힐2]는 피라미드 헤드가 서서히 주인공의 주변에 다가오는 것으로 그 경계를 표현했습니다. 피라미드헤드는 경계선이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플레이어가 두려워해야 할 것으로 인식하기 쉽고, 동시에 주인공이 두려워하는 감정에 대해 명확하게 짚어주고 있어요. 처음에 다짜고짜 보여주는 게 아니라 무너진 천장 너머에 피라미드헤드를 보여주고, 죽일 수 없게 처리한 이유도 피라미드헤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그것이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고 있단 불안을 심리적으로 주기 위해서에요. 이 방법은 실제로 스릴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인상과 즐거움을 동시에 줄 수 있어요.

근데 여기 적들 보세요. 베일 너머의 존재들은 보자기를 둘러쓴 애들인데 주인공이 휘두른 포크에 갈려나가요. 그러니까 포크에 갈려나가는 녀석들에게 겁을 먹어야 할 이유가 뭡니까. 물론 다수가 몰려드는 두려움에 관해 이야기해볼 수 있겠죠. 허나 그 외적 이야기는 어떤가요? 클럽이야기와 거기서 주인공이 괴롭힘당하는 걸로 때운단 말이죠. 호러적 요소는 그렇다쳐도 주인공이 자신을 괴롭히는 클럽에 헌신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클럽이 자신의 목숨(영혼)을 저당잡고 있다는 판타지 설정을 두었어야죠.

물론 계급사회에 대한 우화를 표현한 점이 있습니다. 캐릭터들이 영국말하는 거 보면 (북미기준) 영국 내의 있는 계급사회(노동계층과 중상위계층, 상위계층)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아요. 실제로 제작진들은 어른들의 못된 행위를 따라하는 아이들의 심리를 게임 속에 반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게 '진실'에서는 언급되지 않아요. 그냥 애매모호하게만 설명되기에 비판거리로 나아가질 못합니다. 실제로, 고아원은 사회의 계급사회를 아이들이 느끼기 어려운 환경이잖아요. 아이들이 각자의 사회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는 설정이면 좋겠는데, 만일 그랬다면 또 이야기가 길어질겁니다. 그냥 애초에 이 소재를 써먹고는 싶은데 어떻게 써먹지는 못하겠고, 그래서 대충 휘갈긴 겁니다. 뒷이야기에서도 주인공이 클럽의 괴롭힘을 받았다는 사실이 있지만, 주인공이 그걸로 인생이 뒤바꿀 깊은 상처가 난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된 계기는 따로 있어요.

제작진이 하나 더 언급한 게 있는데, 아이들이 점차 자라며 어린 시절 기억이 왜곡되거나 편향적으로 흐르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클럽의 괴롭힘으로 포장된 과거 기억에서 점차 기억이 개방되며 자신이 그들에게 죄책감 느끼고 괴롭힘받아 마땅하다는 심리의 이유가 구체적으로 명시되는 과정을 그린 것이 [룰 오브 로즈]인 셈이죠.

하지만 애새끼들이 심판관의 느낌보다는 너무 다들 쌍년처럼 굴고, 심지어 그 중 한 아이는 주인공(제니퍼)을 옹호합니다. 그 순간 저는 어이가 계속 터지는 거에요. 차라리 단체로 불링을 하고, 이유에 대해 추궁하는 이야기로 가라고! 게임 내내 아이들의 괴롭힘과 주인공에게 누명을 덧씌우는 짓을 반복하는데, 보다 보면 이게 주제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괴롭히는 부분에서 괴롭히는 게 어떤 상징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냥 자극주의에서 벗어나질 못해요.

그럼 가장 큰,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나 알아 봅시다. 애가 어떤 남자를 꼬셔서 남자가 그 애의 노예가 됩니다. 그래서 그 노예가 고아원 애들을 다 죽이고, 자신이 홀로 살아남았단 죄책감이 든 제니퍼는 그 아이들을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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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토리에 감명받았다는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죠.

억측하지 마세요. 조롱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묻고싶은 겁니다. 저는 정말 이해가 안 가거든요. 아이(웬디)가 그 남자의 죽은 아이(조슈아)로 변신했고, 남자(그레고리)가 정신병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요?;; 제니퍼가 웬디 뺨때리고 웬디가 타락해서 밖에서 미친놈 데려온 거에 제니퍼가 죄의식을 느낀다면, 작품 바깥의 사람들이 그 죄의식에 공감할 부분이 어디 있는 겁니까? 애초에 질투심에 병신짓을 시작한 건 웬디인데요?; 사일런트힐2의 제임스는 아내를 죽이기라도 했지, 이건 너무 아니잖습니까.

비행선에서 나가고 싶은 느낌이 들지만, '절실하게' 나가고 싶은 느낌은 없습니다. 비행선이 무서운 이유는 왠 끔찍한 꼬마애들이 사람들을 쓸어담기 때문인건가...요?;; 보통 호러게임은 '여기가 불안하니 나간다'인데, 이 게임은 좆나 병신같은 새끼들이 돌아다니니까 불쾌해서 나가야 겠다는 느낌이지, 여기가 진심으로 무섭다라고 생각되어서 나가겠다는 생각이 심어지질 않습니다. 게다가 틈만나면 마당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폐쇄공포가 느껴지지도 않아요. 그냥 클럽의 뜻에 따라 밖으로 나갈 수 있다면, 그러니까 절대적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절망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결말부에서 빈 고아원에서 주인공이 생각을 정리하는 씬이 환기적 요소로 작용되지 못하는 거죠. 원래 공포의 환기와 지난 심상들에 대한 이성적인 정리를 하라고 만든 게 결말부인데, 애초에 정리되는 내용도 해괴하게 말이 안 되잖아요. 심지어 저게 공감되는 내용이에요? 왜 1930년입니까? 시대상은 제대로 반영되기라도 한 건가요? 고작 제펠린 비행선 써먹으려고 1930년 썼냐?




[룰 오브 로즈]의 문제점은, 그 안의 정서가 너무 뒤틀려 있단 점에 있습니다. 취지는 좋았지만, 누군가 현실적인 고삐를 잡아줄 사람이 필요했어요. 물론 고삐가 없었기 때문에 전례없던 매우 추상적인 게임이 탄생했습니다. 허나, 문제는 그 추상이 문제인 거에요. 이미지는 멋있는데 내면이 부실하다면? 그 사람을 굳이 따라가서 이야기를 파봐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예술의 의의는 다른 관점의 인상을 관객에게 주어, 그 생각을 확장시켜주는 것에 있습니다. 죄의식에 대한 생각의 확장, 삶에 대한 생각의 확장, 착각에 대한 생각의 확장등이죠. 그런 확장을 통해 우리는 보잘 것 없었던 것들을 다시 보며 깊은 의미를 새기게 되거나 새로 발견한 것에 의해 나의 삶 속 가치와 불가치한 것들을 다시 정리하는 계기를 가집니다. 그래서 예술은 중요하고, 필요가치가 있는 거죠.

그래서 본 작품으로 얻게 된 시야의 확장은 무엇인가에 대해 저는 묻고 싶은 겁니다.

왜냐하면 그 틈을 타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자신이 가치있다고 외치는 예술가는 세상에 대해 통찰할 생각은 없이 자기 생각만 가득한 것을 던져놓고 예술이라고 우기며 타인들은 자신을 몰라준다고만 말합니다. 어떤 관객은 스노비즘에 의해 예술을 파고들고 찬양하는 게 가장 양질의 삶을 사는 것이며,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하합니다. 어떤 예술적 가치가 풍부한 작품에 대고 일반성향인 B관객이 '난 모르겠다', 혹은 '난 이게 싫다'라고 생각하면, 스노비즘어린 관객이 B관객에게 달려들여 "너는 시야가 매우 낮다"라고 말해버립니다.

사람들의 인식을 달리하게 만드는 예술은 영혼의 해방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위처럼 군다면 진정한 영혼의 해방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예술은 심상을 통해 설득해야 합니다. 설득이 되려면 관객 스스로가 작품에 온전히 이입하고 변화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작가는 심상을 분석해야 합니다. 그래서, 심상이라는 공감대를 통해 관객은 설득되고 사물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내적으로 이뤄집니다. 그러면 관객은 다른 뜻의 세계로 갈 수 있도록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어요. 하지만 위 같은 강요는 오히려 영혼을 압박하는 행위입니다. '내 뜻이 옳다'라는 생각으로 타인을 압박하는 것은 영혼의 해방을 역으로 억압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예술분야에서 자신의 뜻과 작품을 권유하고 의미있음을 강요하는 걸 매우 싫어합니다.

지금쯤, 그걸 알면서 여태 그런 글을 싸지렀냐고 말하실 분이 계실겁니다. (본문도 그런 뉘앙스가 있음)
하지만 진실을 알아도 그게 잘 안 시켜지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도 전 변명 안 합니다. (뻔뻔) 저도 스노브라서.

아무튼, 어떤 작품이든 공감할 거리는 존재합니다. 작가가 직접 주제를 정하고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작품의 이야기하려는 바와 관객이 이해한 바가 다를 때가 많습니다. 그 말은 즉슨, 작가가 독자들의 생각을 온전히 컨트롤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럼 전달되는 이야기의 뜻은 어디에 있을까라고 말한다면, 관객의 머릿속에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러니까 [룰 오브 로즈]에서 관객이 감명받은 것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아니라 키워드 속의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주제가 아니라, 그 키워드들과 자신의 경험을 연결지어서 사고하며, 거기서 다른 목적의 이야기가 탄생한 거죠. 예를 들어... 암흑속에서 비뚤어진 아이들이나, 어린시절의 기억의 왜곡, 트라우마, 집단괴롭힘등입니다. 제니퍼의 서사가 아닌, 불쌍한 아이들에 촛점이 맞춰졌을 지도 모른단 거죠. 혹은 변태라면 로리에게 노예화된 어른에게 초점이 .....

[룰 오브 로즈]는 뒷이야기가 있지만 추상적으로 이야기함으로서 구체적 이야기를 피합니다. 뒷이야기는 사람들이 깊게 파고 들었을 때 나타나는 것이고, 실제로 나머지는 추상으로 이야기되기 때문에 거기에 많은 이야기를 붙일 수 있습니다. 공백이 많아 자신의 이야기를 투영할 수 있다는 것이 추상적 스토리텔링의 장점입니다. 뒷이야기에 진실을 둔 이유는 구체적 스토리텔링을 원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입니다. 상징을 파고들고 뜻을 아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죠. 추상적 스토리텔링을 원하는 관객은 더 파지 않고 추상적 스토리에 머물 것이고, 구체적 스토리텔링을 원하는 사람들은 구체적 스토리를 위해 파고들 것이니, 양쪽이 윈윈하는 겁니다.

저는 양쪽 다 좋아합니다. 허나, 전자의 추상적 상징들에도 공감하기 어렵고, 후자의 구체적 진실에도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이 지나치게 떠받들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튼 감명깊게 보신 분들에게, ...그 감명이 정말 [룰 오브 로즈]의 진가치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은 겁니다. 너무 부실하고 의미없는 가학성이 많거든요. 어른들의 행동을 아이들이 극단으로 상징화시킨거라는 암시를 마지막 챕터에 던져주지만, 그건 그냥 변명입니다. 그냥 크레용으로 아무렇게나 그려놓고 크레용 던져주며 거기에 대한 의미를 말하고 끝내는 무책임한 것이죠. 크레용이 사람들에게 대체로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어떤 생각을 가져다 주는 지, 주제와 어떻게 연결되는 지를 고민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냥 사족이 될 뿐입니다. 근데 [룰 오브 로즈]가 그래요.

그동안 [룰 오브 로즈]는 재야에서 많은 호평을 받아왔습니다. HD리메이크도 고려되는 중이죠. 허나 저는 의심해요. 가치가 본질보다 너무 확대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본 작품이 부활했을 때, 그런 사람들이 또 등장할 지도 모릅니다. 소위 말하는 '아시는 구나!' 사람들이요. 제 생각에 그 사람들은 친구들에게 안녕하살법을 외치며 덕밍아웃과 야외수치플레를 노리는 사람들보다 더 심각하게 공포스럽고 두려워 해야할 존재입니다.

보고 예술적 가치를 몰라도 욕을 먹음 당하고 비하당할 필요는 없습니다. 싫다면, 싫은거죠. 그걸로 저급한 인간과 고급 인간을 나눈다는 건 좀 그래요. 허나 끝내 의심해야 하는 겁니다. 나는 정말 진실되게 작품을 본 걸까, 껍데기를 보고 찬양하는 건가 같은 것 말이죠. 그냥 휘둘려도 되지만, 뜻다름을 찾게 될 경우, 다른 문이 열립니다. 정답은 없지만, 어쩌면 [룰 오브 로즈]의 비행선에서 나와 색다른 자유를 만끽하게 될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