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도우 타워 └ RPG

완전 클리어 후 재리뷰.

쉐도우 타워는 프롬 자사의 시리즈인 킹스필드와 비슷한 컨트롤 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시스템은 묘하게 다릅니다. 약간 로그라이크처럼 변했어요. 적들이 랜덤하게 나타나고, 장비 아이템도 랜덤하게 나타납니다. 땅바닥에 배치된 것은 바뀌지 않지만, 적을 죽이면 나오는 아이템이 랜덤합니다. 좋은 아이템이 나올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로그라이크라고 했지만, 레벨이 랜덤으로 재구성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레벨은 그대로인데 안의 상황만 변하는 거죠. 허나 저는 이 방식에 동의 합니다.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의 진미는 레벨디자인에 있으니까요. 프롬은 랜덤한 이벤트 대신, 잘 세공된 이벤트들과 비밀들을 레벨 내에 꽉 채웠습니다. 깜짝 놀랄 만한 것들이 상당히 많이 있고, 예상 외로 호러블한 연출도 많습니다.











'호러블'하니 말입니다만, 쉐도우 타워에서는 호러 테이스트가 강화되었습니다. 시야가 더 좁아지고, 크리쳐 디자인이 더 악독해졌거든요. 그리고 BGM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공간의 환경음과 멀리서 울부짖는 크리쳐 소리만 들려요.

그리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거나, 일시정지 상태를 20초 이상 유지하다가 풀면 속삭이거나 여자가 웃는 소리가 들립니다. 적이나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데도요. 속삭이는 소리는 일어도 영어도 아닌 무언가 다른 언어이기 때문에, 진위를 더 알 수 없어서, 간혹 듣게 되면 소름이 쫙끼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호러게임 잘못하는 분이라면 새벽에 이 게임하다가 속삭이는 소리듣고 아연실색해서 불키고 엉엉 울지도 몰라요(...)

여담이지만, 크리쳐 디자인은 펌프킨 헤드, 에일리언 등의 호러영화에서 따온 듯한 것들이 많습니다. 에일리언의 한장면을 연상시키는 그 장면을 눈 앞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이 게임이 99년 할로윈데이에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죠. 제작진이 아예 호러 테이스트가 가미된 액션RPG로 본 게임의 노선을 잡았던 겁니다. 그리고 위의 연출에 소름돋았던 걸 되새겨보면, 이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아요.

스토리는 상당히 단순합니다. 그냥 주인공이 타워에 갔다. 타워에서 몬스터들을 다 죽인다. 마계 왕관얻어서 세상 정복, 끝. 호러 분위기를 내기엔 지나치게 다르고, 단순한 RPG 스토리라서 뭔가 안 어울리죠. 허나 위와 같은 사유 때문에 어쨌거나 무섭게 다가옵니다. 저제상 성격의 NPC도 등장해서 괴기한 분위기를 한껏 더해주죠. 아마 마계의 탑이라는 설정 덕일지도 모릅니다. 인간계의 것이 아니니 그것을 낯선 것으로 만들어 코스믹호러의 테이스트를 살짝 섞는거죠.








적이 랜덤하게 나오지만, 구조가 특이합니다; 층마다 적들의 집합을 둔 풀(pool)이 있어서, 구역 로딩시 풀에서 적을 꺼내 배치하는 방식이에요. 그렇게 되면, 어떤 적이 나올 지 모르고, 위험해 보여서 안 죽이고 피해다녔던 강한 적이 (중간보스나 보스몹 제외)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전투 밸런스는 좀 엉망입니다. 초반은 까다로운 게 많은 반면에, 후반으로 갈 수록 점점 더 쉬워지거든요. 그것도 레벨 글라인딩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보이는 족족 다 잡았을 뿐인데요. (위에 썼듯이, 적을 모두 죽이면 특정 확률이 아니면 다신 나오지 않기에 글라인딩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플레이어의 능력이 상승한 게 아닙니다. 다시 플레이해도 초반은 까다롭지만, 후반에는 그냥 대놓고 딜하게 되요. 왜냐하면 능력이 월등하게 세져서 공격 받을 때 넉백이나 스턴도 잘 먹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냥 간단히 말하자면, 주인공은 졸라 쎄지는데 반면에 후반 나오는 적들의 패턴은 단순해지고 느슨해져요.

이유는 게임 자체의 SP로 인한 성장 시스템과 체력 포션 때문입니다.

적을 죽일 때마다 SP가 조금씩 차오르는데, SP가 차오를 수록 캐릭터는 점점 더 강해집니다. 강한 적을 죽일 수록 SP가 오르는 량은 많아지죠. 그리고 SP는 투자하는 게 아닙니다. SP를 얻으면 자연히 전체 능력치가 올라가요. (소울 포인트를 사거나 땅바닥에서 주워서 투자를 할 수 있지만 그건 보너스 수준. 적들을 잡아서 얻는 SP의 량으로 올라가는 스탯이 월등합니다.) 투자 잘못해서 캐릭터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일은 전혀 없지만, 덕분에 캐릭터가 다재다능(?)해져 버려서 게임 자체가 상당히 느슨해져 버린 겁니다.

그리고 체력포션. 체력포션은 캐릭터의 체력을 무조건 100퍼센트 채워주기 때문에, 캐릭터의 최대 체력에 따라 효율성이 달라집니다. 따라서 초반에는 체력포션을 안 쓰고 아껴놓고 중반에서야 조금씩 쓰게 된다면... 적 잡아서 얻는 체력포션만 모아도 어느새 4~70개나 늘어나 있는 걸 보게 될 겁니다 (...) 나중 갈 수록 좋은 방어구가 나오기 때문에 체력관리가 한층 더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레벨디자인도 나빠집니다! 땅의 세계에서는 보스전 가기 위해서는 낙사할 위험이 있는 구불구불한 외길에서 적과 싸워야 합니다. 하지만 괴물의 세계에서는 괴물이 2~3마리 등장하는 복도만 걸으면 금방 보스전에 도달합니다. 빙빙 돌려깎기로 잡을 수 있는 최종 보스도 맥이 빠지게 하는 요소입니다.

그리고, 일본RPG의 특성이자 문제라고 해야 할 텐데... 후반에 마법이 봉인되거나 마법이 통하지 않는 적이 등장합니다. 특히 최종보스는 마법이 통하지 않아서 물리공격을 때려야 합니다. 보통 이럴 경우, 중반에 마법공격만이 통하는 적을 둬서, 중반에는 기사 계열 캐릭터가 시련을 받고 후반에 마법사 계열 캐릭터가 시련을 받는 것으로 (후반에 마법 계열 캐릭턱라 하는 건 최종보스의 공격에게서 전사를 막는 것이 전략의 전부가 되죠.) 컨트롤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어쨌거나 검과 피지컬로 다 때려잡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마법은 특수한 경우 아니면 그냥 쩌리가 됩니다. 후반에는 마법 방어력이 높은 보스나 몹들이 튀어나와서 마법의 필요성을 더욱 낮춥니다.

그리고, 그렇다보니 활이 최고의 무기가 됩니다. 횟수제한이 강하지만 그래도 시전 마법처럼 원거리 딜을 날릴 수 있거든요. 그리고 꽤 잘 박힙니다! 후반에 까다로운 마법이 원소 마법으로 결계를 치는 것이라 보니 원거리 물리 딜을 날릴 수 있는 활이 상당히 유용해집니다. 결국 후반엔, 잡몹 잡을 칼 3~4개랑 활은 줍는 족족 다 챙기고 다니게 됩니다.

최종보스도 2차와 3차보스를, 기본적으로 얻을 수 있는 Bow와 Hunting Bow 활만 있으면 딱히 찌르기 (Pierce)에 투자하지 않아도 헛발만 안 날리면 그냥 잡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전투 밸런스 망치는 주범이 있습니다. 버그요. 프레임 드랍으로 인해 게임이 느려져서 적의 공격을 가시적으로 파악하고 당장 회피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적이 어딘가 끼어서 낑낑 대는 사이에 적의 옆구리를 노릴 수도 있고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적들은 특정 구역 이상 나가질 못합니다. 그래서 까다로운 적이라면 길찾기 구역 이상까지 유인해서 보이지 않는 벽에 걸려 더이상 움직이지 못할 때, 그때 잡는 것도 방법이 됩니다. 꼭 그렇게 유도 안 해도, 버그가 워낙 만연해서 그냥 그렇게 잡게 됩니다. 하지만 그 버그를, 벽을 뚫는 공격과 적의 피격객체의 원통화로 해결합니다. '원통화'란, 적이 자신의 모양을 변형해도 자신이 서있는 좌표 주변의 원통모양으로만 피격객체가 형성됨을 말합니다. 그리고, '원통'이기 때문에 중심에 제대로 박아야 합니다. 사각형이었다면 피격객체 밖에 삐죽나온 모서리에 닿기 때문에 안 맞은 것 같은데 맞은 효과가 일어나거든요. 허나 원통도 문제는 있습니다. 분명 폴리곤에 닿은 것 같은데 피격판정이 안 나거든요. 무기의 리치들도 대체적으로 지나치게 짧게 만들어놔서 난이도를 올렸지만, 그래봐야 벽에 낑기면 그러거나 말거나 난이도가 낮아지는 겁니다.

이 문제는 이 들의 데뷔작인 킹스필드 때부터 있었던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프롬은 한동안 이 문제를 고치지 않았습니다. 주 수입원이었던 컬트팬에게서 별 문제되는 비판을 받지 않았기에 그냥 문제를 내버려 둔 것인지 몰라도, 이것은 게임의 공정성을 해치는 요소입니다. 가끔 버그에 의해 내가 유리하거나 불리해질 때, 게임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게임의 질에 대해 의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재밌게도, 그런 불공정함이 오히려 게임 특유의 테이스트를 만들어요. 왜냐하면, 유저에게 유리한 버그와 유저에게 불리한 버그가 서로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저가 불리한 환경에 놓여서 답답해 있다가, 갑자기 적의 AI버그에 생긴 빈틈을 노려 적들을 섬멸할 때의 희한한 쾌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이죠. 결국 성숙하지 못한 본인 기술력으로 덜 완성된 게임을 출시한 거니까 괘씸한 건 달라지지 않습니다.





모든 장비에 내구도가 있으며, 반지의 내구도가 하락하면 마법을 못 쓰고, 무기의 내구도가 하락하면 무기를 못 씁니다. 때문에 무기들이 모두 내구도가 0이면 도망다녀야 합니다. 바이오 하자드처럼 나이프 그런 거 없어요. 그래서 저급 무기를 얻어도 섣불리 버리기가 곤란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느새부턴가 약간 서바이벌호러처럼 면모합니다. 초반에는 노데미지가 거의 필수플레이가 되고, 깊숙한 곳에 있는 강력한 적이나 피할 수 있는 강한 적은 되도록이면 피해놨다가, 보다 적은 피해로 잡을 수 있을 때 도전하는 것이 가끔 필수 전략이 됩니다. 왜냐하면 강력한 적을 억지로 잡으려고 하다가 피가 상당히 깎이면 손해거든요. 후반에 체력을 강제로 깎는 구간들이 많아서 조기에 체력포션을 낭비했다간 상당히 곤란해지는 상황이 많습니다.

여담입니다만, 특정 아이템 드랍률이 플레이어의 능력치에 따라 달라지는 듯 합니다. 고정적으로 드랍되는 것도 있지만, 회차 플레이를 거듭할 수록 레어 아이템의 등장여부가 달라졌거든요. 제가 방어력에 SP를 투자할 때는 명예의 풀플레이트 갑옷이 하나 나왔고, 찌르기(pierce)에 포인트를 좀 투자할 땐 방어력 투자할 때는 나오지 않은 석궁이 나왔습니다. 이것은 캐릭터의 특성화를 더 강력하게 해줍니다. 저렙몹 잡았는데 고렙을 상대할 만한 레어템이 튀어나오는 밸런스 문제를 터뜨리긴 하지만 말이죠.

이렇게 만든 이유는 쉐도우 타워 시스템 특성 때문입니다. 장비가 능력치를 올려주기 때문이죠. 시스템상, 좋은 장비를 끼면 능력치가 대폭올라가기 때문에, 몸이 근딜러라도 마법 성능 올려주는 장비를 장착하면 근딜 마법사가 되어버리는 흉악한 경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게 내 붐스틱이다! 그러니까 본인 시스템 문제 막으려고 되려 땜빵놓은 케이스에요.

한편으로, 체력의 중요도가 상승하는데요. 체력으로 내구도 수리를 할 수 있거든요. 동시에, 체력은 경우에 따라 전체 체력의 반만큼 차오릅니다. 따라서 위의 내구도가 중요한 만큼 체력관리도 중요합니다. 되도록이면 체력이 닳지 않도록 세이브하고, 체력포션을 모으는 게 중요해집니다. 그래야 수리도 원활히 할 수 있고, 센 적과 전투할 때도 든든해지거든요.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결국 닥치고 체력과 활인 게임이 되었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이 게임은 자유도가 높습니다. 레벨끼리 내통해 있는 통로가 많아서 워프 장소만 잘 안다면 5분만에 최상층과 최하층을 오갈 수 있어요. 그리고 적을 죽이면 SP가 올라 성장하지만 적을 꼭 전부 죽이란 법은 없습니다. 즉, 잘하면 적 스킵하고 배치된 장비나 아이템 줍고 꼼수로 보스 죽여서 게임을 조기에 클리어 할 수 있단 말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내려갈 수 있는 길은 쉬운데 올라가는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쉐도우 타워의 희한한 부분이죠. "내려갈 수 있는 길은 쉬운데 올라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 거요." 깔깔깔. "어? 저기 가볼 수 있겠다."하고 냉큼 떨어지는 순간, 그곳 적의 수준이 캐릭터의 장비와 능력치보다 높다면 지옥을 맛보게 되실 겁니다. 즉, 어려운 장소에 너무나도 쉽게 도달할 수 있어요. 킹스필드는 그래도 아뿔싸 싶으면 돌아갈 수 있었는데 이 게임은 레벨 특성이 타워라 보니 잘못 떨어지면 다시 올라갈 방법 찾기가 어렵습니다. 왜 이렇게 만들어놓은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물론 게임 내 레벨을 잘 알고, 숨은 요소도 다 안다면 쉽게 올라갈 테지만 초보자들은 그걸 모르겠죠. 결국 이전 시점으로 로드를 해서 장시간 플레이한 시간을 날려버리거나 게임을 리셋하고 말 겁니다.

노파심에 쓰지만 게임 속 레벨이 복잡한 건 아닙니다. 지도가 없어서 불편하긴 하지만, 과거에 던전RPG에 비해선 길을 찾을만한 수준이거든요. 랜드마크 없는 미로 속을 욕질하면서 지도그려가며 뺑뺑 도는 게임이었다고, 그건. 그래도 이건 레벨마다 지역적 특성이나 랜드마크가 있어서 길을 찾을 수 있는 편입니다.









[쉐도우 타워]가 컬트팬들에겐 호평을 받는 게임이지만, 킹스필드의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된 케이스의 게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테이스트가 형성되긴 했지만 그 조차도 밸런스 붕괴요소를 일으킵니다. [쉐도우 타워]의 새로운 디자인은 파고들기에 맞춘 듯 하지만, 플레이할 수록 밸런스 붕괴를 드러내기에 역설적으로 파고들기가 불필요해지게 됩니다.

물론 킹스필드 때부터 이어온, 던전이 주는 긴장감과 빡빡함을 헤쳐나가는 즐거움은 상당합니다. 허나 게임 자체는 그것 이상의 기능은 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