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특전> 1부 - 겟단 (Get Down) └ ㅋㅋㅋㅋ



안녕하세요.

현대미술특집전, 현미특전의 큐레이터, 로그온티어입니다. 이번이 시리즈 첫 포스팅이니 만큼 앞으로 있을 작품 소개에 앞서, 본 시리즈의 목적과, 오늘날의 현대미술의 현황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오늘날 현대미술은 정말 다양해졌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한 회의를 바탕으로 과거의 것을 해체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해체주의적인 미술 운동으로 인해 많은 저자들과 작가, 미술가들이 다양한 작품들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미술양식과 달리 오늘날의 미술 양식은 매우 다양해졌지만 장르나 양식을 규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뜻이 난해한 작품들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많은 평론가 분들은 양식으로 해석할 수 없는 작품들을 예술이 아닌 것으로 봅니다. 허나 넓은 의미에서는 이런 작품들도 예술이며 해석에 따라 뜻 깊은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런, 난해하고 해석하기 어렵고 양식에 걸맞지 않아 저평가되고 있는 현대미술 작품들을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입니다. 다시 찾아 뜻을 풀어보고 쉽게 생각했던 것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볼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소개드릴 현대미술은 바로 이것.



겟단이라고 불리는 작품입니다. 신원미상의 애니메이터, 그림작가가 그린 작품이며 니코동이라는 갤러리에서 유명해져서 세간의 화제를 불어왔던 작품입니다. 게임의 버그를 보고 본따서 그린 작품으로 사실주의 양식에 속하는 작품이지만, 일본 채널 쓰레드를 대표하는 특유의 캐릭터를 그리고 모션의 일부에 작가 개인의 뜻을 집어넣었기 때문에 팝아트와 작가주의의 경계선에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것은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은 고전이 되어버린 현대미술이지요. 허나 이 작품은 강산이 바뀐다는 10년 후인 지금까지도 유효한 메세지를 던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한번 거론해보고자 하는 것이지요.





시름시름 앓는 듯한 기운없는 표정과 길쭉한 차렷 상태로 서있는 이 캐릭터의 모습은 매우 지쳐있으니 똑바로 설 수 밖에 없는 노동자의 모습 그대로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런 노동자들을 전문용어로 Hassan이라고도 하지요. 키가 크지만 표정과 묘하게 내려간 어깨때문에 매우 기운없어 보입니다. 이것은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발현할 길이 없는, 보다 나은 삶을 살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회의와 권태감을 노골적으로 보여줍니다.



2컷의 포즈 이후로 고된 노동의 시작을 알리는 모습은, 매번 하루 일과를 시작하며 오늘은 괜찮을 거다라는 행복회로를 돌리는 현대 Hassan들의 정신세계를 강단있는 포즈로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이후 굴러가는 듯이 팔을 중구난방으로 뻗는 해괴한 포즈는 말 그대로 굴러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별일없이 구르며 쳇바퀴 도는 듯한 고된 삶을 사는 현대인들의 애환을 희화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간에 나오는, 두 팔을 벌리고 골반을 좌우로 흔드는 행동은 "사랑을 받고 싶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고된 삶에 갇혀 매일 밤 시간이 남아있으면 TV프로그램과 맥주한캔으로 하루를 외로이 마감하다보니 새삼 생겨난 외로움에 몸을 떠는 걸 상징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간에 나오는 골반을 튕기는 이 장면은 "사랑 박고 싶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위와 시제가 같아 보이지만 틀립니다. 격렬한 외로움에 의해 히토미나 AV로 사랑의 갈망을 충족하다 보니 색욕만 증가한 현대인의 방탕해짐을 시사하는 부분인 것입니다.



끝내 Hassan은 지나친 괴로움에 자기 연민에 의한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됩니다.



이렇게 감정과 개인의 애환이 존재하는 사람이지만 세상이 그에게 챙겨주는 것이라고는 일감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쳇바퀴둘며 굴러가는 인생을 사는 현대 노동자들. 그 애환을 그리다가



이렇게 뜬금없이 문득 섭니다. 이것은 급작스런 죽음을 암시합니다. 느닷없이, 정말 뜬금없이 찾아왔지만, 그렇게 굴러다녔으니 몸이 성치않을 일도 없지요. 결국 그는 죽은 것입니다. 처음과 달리 여기서는 관에 들어간 시체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쓸쓸함의 굴레 속에서 힘들게 살아왔지만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하고 고독사로 죽어버리는 인간,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풍자적이지만 날카롭고, 때로는 서늘합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일까요.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혹은 다같이 먹고 살기 위해 우리는 일을 합니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이 많이 나오는 만큼 세상은 보다 각박해지고, 개인의 삶의 자유도 점층적으로 줄어들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가족]의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씨가 "한국과 일본에서 관용의 시선이 사라져가고 있다"라고 경고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는데요. 이렇게 심각해진 이유는 사람들이 이런 힘든 삶에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정신이 피폐해져 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지속적인 자기 희생 속에서 더 나은 내일이 올거라는 믿음 혹은 이런 삶이 아니면 더이상의 삶이 없다는 생각 속에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틀리지 않고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현대 Hassan들. 그들의 숭고함은 인정되어야 마땅하나, 업계 사장님들은 이해해주지 않습니다.

인정받지 못하고 노력해도 궁핍해지는 삶 속에서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극단적인 끊음의 결말은 그 회의감과 의문을 증폭시킵니다. 허나 작가는 어떠한 답도 내지 않습니다. Promise라는 긍정적인 곡을 집어넣어 소격효과로 인해 심오한 분위기를 환기 시킬 뿐. 작가는 이런 사회를 그대로 보여주지만 어떤 감정도 배제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허나, 디테일한 표현을 보면 이것은 단순한 관조가 아닙니다. 작가는 작가주의적 정신에 따라 질문을 던지지만, 자신만의 답을 주지 않음으로써 이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대화하게 하려는 의도를 은연중에 숨기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분위기 유도도 하지 않아 주제에 대한 편견이 안착되지 않게 하여, 이 주제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불러오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져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야기야 어찌되었든, 얼마나 허무하든, 결국 일을 하고 고생을 하지만 자신의 소신과 뜻을 가지고 그 자리에 서서 버티는 인간은 숭고한 법입니다. 많은 보장을 해줄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적어도 그들의 노고 정도는 비하하지 않고, 진심으로 인정해주는 사회가 왔으면 합니다.

덧글

  • 소시민 제이 2019/07/12 08:36 #

    현미 라길레 먹는 현미를....

    가수 현미씨는 너무 오래되었잖.....
  • 로그온티어 2019/07/12 10:22 #

    윽 아재개그
  • 유회선생 2019/07/12 15:43 #

    그리고 브금도 전설이 되었지요 ㅋㅋ
  • 로그온티어 2019/07/12 17:50 #

    브금좋아요 정말좋아요!
  • 건전청년 2019/07/12 23:41 #

    루루슈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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