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맨에그제 └ RPG



글쓰기 앞서, 이 게임을 처음 잡은 게 15년 전의 일입니다. 아니 다시 계산해보니 16년전이네요. 그리고 여태껏 깨보지 못했습니다. 여태껏요. 게임 자체가 저랑 안 맞았어요. 그냥 진행방식부터 특유의 난이도 조정 방안이나 배틀 시스템이 저와 안 맞았습니다. 게임 시스템은 안 맞는데, 세계관과 캐릭터는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중학생 때 록맨에그제를 비틀어낸 XXX를 기획하고 게임메이커로 제작하려고 하다 바이러스 먹어서 다 날린 후에 현타와서 만들지 못하고 있었죠.

생각해보면 록맨에그제 애니메이션도 정주행은 못 했습니다. 일부 에피소드를 보지 않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저는 록맨 에그제를 껍데기만 보고(?) 좋아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 밖에는 미완의 역사만 가득하고 말이죠. 계속 생각은 나서 계속 플레이 해봤지만 시간이 많지 않거나 역시 게임스타일이 안 맞아서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말했듯이, 록맨에그제의 설정 자체는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클리어해야겠다는 생각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약간 한이 맺혔달까요.

본 서두가 긴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16년 뒤인 얼마전






깼습니다.

욕을 욕을 하면서 깼는데, 난이도 때문이 아니라
... 의외의 것들 때문에 욕을 하면서 꺴네요 (...)






게임 자체는 JRPG의 그것입니다. NPC를 수소문해서 해결의 떡밥을 찾는 것, 랜덤 인카운터, 레벨 숏컷 여는 개념, 던전 구조... 단지 배틀 시스템과 배틀 시스템에 때문에 아이템이 배틀칩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여담입니다만, JRPG는 정말 개발하기 편한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구조만 안다면 AI짜기도 편하고, (길찾기가 세게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판단만 시키면 되는 거라서) 배틀 디자인하기도 편합니다. 필드에서 싸우는 액션RPG라면 필드지형이나 적 배치도 깐깐하게 디렉팅을 해야 하나 이렇게 배틀페이지가 따로 있는 게임이라면 배틀 페이지 내에서 계속 이것저것 테스트하며 그룹을 짤 수 있으니까요.

말하지만, 쉽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단지 구조를 짜고 테스트하기는 편한단 말이죠.

여담으로, NPC와 대화하고 특정 이벤트를 쫓아야 (유저가 특유의 논리대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스토리 순서대로 플레이해야) 진행되는 부분처럼 JRPG 특유의 단점이 있습니다.








양덕들의 뇌피셜에 따르면 게임 자체가 쉽다고는 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우선 게임 자체에서 많은 배틀칩이 있으나, 프로그램 어드벤스나 보스 맞춤형 공략을 펼칠 생각이 없다면, 버스터와 곡괭이의 조합의 덱으로 모든 걸 깰 수 있습니다. 보스도 이걸로 깰 수 있어요. 사실 다른 배틀칩이 컨트롤하기 까다롭기도 하고, 가로막는 벽이나 시전속도 땜에 일부 배틀칩은 사용하기 더욱 더 까다로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곡괭이와 버스터를 애용하게 되는 거죠. 곡괭이가 메인딜이고 부가딜은 버스터로.

빨리 적들을 속단내긴 어렵기에 곡괭이만 채워넣은 게 정말 좋은 덱은 아니지만, 맵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게 될 때는 곡괭이가 편할 때가 있습니다. 맵에 등장하는 바이러스들을 쉽게 잡을 수 있는 배틀칩이 들어간 덱 맞추려고 일일이 하나하나 덱을 수정하는 것보단 편하더군요.

허나 이렇게 자신에게 맞는 덱, 보편적인 덱을 찾지 못하면 게임 자체가 심히 어려워지고 전투에 대한 부담감도 자연히 상승하게 됩니다. 그 전투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다른 지역을 싸돌아다니며 카드를 모아야 하고 전투를 연구해야 하는데 그 시간이 타 RPG에 비해서 무척 깁니다. 그게 문제죠.

그리고 아머를 찾지 못하면 게임이 심히 어려워지지만, 아머를 찾으면 게임이 쉬워집니다. 그냥 엄청 쉬워집니다. 이건 어떻게 보면 원작인 록맨의 특이점을 계승한 것이기도 합니다. 허나 아머를 갈아끼울 필요가 없다는 게 추가적인 단점. 상성이 맞든 안 맞든 아머 끼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무던히 게임을 깰 수 있습니다. 다만, 아머가 없다면 게임난이도가 다크소울보다 더 어려워집니다.

정말 어려워집니다. 불가능하지는 않아요. 허나 조건이 있습니다. 거의 노데미지로 깨야하고, 어떤 적 그룹의 경우 주인공의 바닥을 작살내니까 앞서 있을 일을 계산하며 움직여야 하고, 눈앞에 패턴도 피해야 합니다. 다크소울은 까짓거 그래봐야 피하고 때리는 거잖아요. 이건 체스마냥 앞 수를 계산하며 움직여야 하니 거기서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액션RPG로서 명중률이 없다는 건 장점입니다.

배틀칩은 스킬 개념을 TCG 시스템에 녹아낸 편입니다. 프로그램 어드벤스는 패턴이 복잡하지만 따지고 보면 포커에서 족보 개념과 비슷합니다. 중복 배틀칩을 10장 이상 우겨넣을 수 없는 규칙이 있는데, 5장도 아니고 10장인 이유는 아마도 특정한 카드가 자주 나오도록 전략을 짜는 것과 막장덱의 방지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적당한 수를 고른 것 같습니다.





던전 디자인은 정말 좋았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꼬여있고 미로같은 던전에, 각 던전마다 특성과 고유의 퍼즐이 있어서 테마별로 풀어보는 맛이 다릅니다. 덕분에 길찾기가 어려운데 미니맵... 아니 맵 자체가 없습니다. 아이 오브 비홀더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스스로 노트에다 길을 그려서 맵을 분석해야 하는 고전 RPG를 떠올리게 했어요.

거기까진 괜찮은데, 문제는 본 게임이 인카운터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몇 보만 가도 전투가 일어나는데, 길은 찾아야 겠고, 근데 또 전투가 일어나고... 이래서 길 하나 찾는데 곱절배의 시간이 흐르는 경우가 꽤나 많습니다. 그리고 본 게임은 전투가 경우에 따라 빡셉니다. 생각할 것도 많고 순발력을 테스트하는 상황도 많죠. 따라서 던전을 해메다보면 여느 RPG보다 더 쉽게 피로해집니다.

그리고 전투 시스템과 배틀칩들의 관계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서 전투의 즐거움이 천지 차이가 납니다. 몰라도 재밌고 알면 더 재밌고가 아니라, 모르면 진짜 좆같고 알면 그럭저럭 재밌고라는 게 문제(...)




악당컨셉은 [아이언맨2] 같고 (물론 본 게임이 훨 이전에 나온 겁니다만) 주제는 친구. 스토리 자체는, 악당 대 영웅이라는 구도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 내용입니다. 다만 악당이 계획을 짜고 실현하고 그걸 막으면서 주인공이 가야할 곳이 늘어나고 그곳에서 친구가 늘어나고, 친구와 대전하며 배틀칩을 받으면서 주인공은 자연히 강해집니다. 이에 대해 아예 록맨이 "우린 서로 소통하니까 강한거다. 혼자 싸돌아다니는 누구와는 다른 것이지."라고 주제에 못을 박기도 합니다. 물론 그 말은 오퍼레이터와 네비와의 관계에 대한 말입니다만, 어쨌거나 이것은 관계, 친구에 대한 이야기이도 하니까요.

스토리 곱씹어보니까, 어렸을 때는 엔잔이 꽤 간지났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오만에 의해 혼자 돌아다녔던 엔잔이 고독한 늑대같아서 어렸을 때는 꽤 멋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잘생긴 찐따네요.

아무튼 친구를 만나고 친구와 대전하고, 경우에 따라 여러번 대전하며 친구에게서 배틀칩을 뜯어내는 것으로 (...) 친구와의 관계가 자신을 강하게 한다는 주제를 게임플레이로 설명하는 편이라서 이 부분은 호평합니다. 그 관계에 대한 철학적 잣대를 악당인 WWW에게도 적용했다면, 아크가 형성되서 깔끔하고 좋았을 텐데 그게 좀 아쉬움...










록맨 : 일어나! 잠만보새꺄
넷토 : (.........?)
록맨 : 넌 내가 욕을 해야 일어나지
넷토 : 그래서 니가 욕맨인거잖아
록맨 : 이새끼가... 네비라고 지멋대로 창씨개명하네








결과적으로 즐겨본 게임은 아니었습니다.

깼을 때 기분 좋았던 것도 "아이고 드디어 숙원하나 풀었다"라는 해방감에서 였지, "와! 즐거웠다!" 라는 경험은 아니었어요. 허나 제 반응이 미적지근 했던 이유는, 본 게임의 완성도나 게임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 취향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제가 탐험과 문제해결, 수집가의 플레이방식을 좋아하다보니 전투가 지겹도록 붙는 본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뿐입니다.














PS1.
록맨이 사이토인 건 알았는데, 1편부터 넷토가 록맨의 정체를 알게될 줄은 몰랐네요. 근데 떡밥이 크게 없다가 막바지에 너무 급작스럽게 밝혀지는 지라, 그게 쫌 묘했습니다. 아우가 형에게 명령질하는 전후무후한 캐릭터성을 지니게 되긴 했지만, 말했듯이 밝혀지는 과정이 너무 급작스러워서요.

"JRPG치곤 스토리가 약해, 스토리에 뭔가 팍 하는 게 있어야 하는데, 지금껏 쓰다보니 그냥 록맨이 다 쳐부수는 것만 이야기만 되고 있짆아? 단순하니까 알고보니 록맨이 형을 갈아만든 인공지능이라고 땜빵쳐보자"

라며 대충 끼얹은 느낌? 물론 그게 독특한 캐릭터성을 만들어내긴 했지만 그래도;





PS2.
근데 한국기준으로 말하컨데,
사실이 밝혀진 이후의 대화가 형제와의 대화치고는 너무 딱딱합니다.
영어판을 플레이해서 그런가, 뭔가 진짜 딱딱해요.

친구였다가 갑을 관계가 형성되는 느낌?
넷토가 갑의 위치에 있는 건 달라지지 않았지만 을이 슈퍼인 느낌?

대화가 절대로 친근하거나 평범하지 않아요.

우리 형제는 안부를 물을 때 "집에 엄마 없냐" 고 하는 게 일상인데
아, 그러니까 어머님이 일보러 가서 집에 안 왔냐고 묻는 겁니다.

가족으로써 통성명 했다면
싸우고 욕도 하고 서로의 지랄성을 맛보고 서로 손절도 해봐야 하는 겁니다.
그래도 결국 모른 체 하기도 뭐한 게 가족이니까요.





PS3.
공공 기물에 자유롭게 해킹하는 초등학생들을 보면서,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는 애들이라지만,

너무 특권이 쎈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덧글

  • 무지개빛 미카 2019/07/16 09:29 #

    욕맨.... (진짜 한국식 창씨개명이군요. 풉)
  • 로그온티어 2019/07/16 09:50 #

    바이러스 파이터 타이틀 뿐 아니라 아가리 파이터 타이틀도 획득한 2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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