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burn bridges └ 일상의발견



돌아갈 다리를 불태우지 말라는 말이 있었다. 내가 아는 어느 사람은 이 말을 강조했다. 아무리 적을 져도, 다시 합류하게 될 일말의 여지는 남겨 두라는 말이었다. 화가 나고 쓰레기 같은 존재라도, 인맥을 끊어 자기 발목을 잡을 일은 절대 하지 말란 소리기도 하다. 때로는, 내가 오히려 참을성이 나빴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봐야 한다는 이유도 있었다. 왜냐하면 가끔 인성이 나쁜 사람들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허나 그게 쉽지 않다. 그 사람이 거기 있는 이유도 여러가지 부조리에 의한 것일지도 모르고, 그 사람과의 악연이 오히려 나의 발목을 잡는 사례도 있거나, 내 인성을 훼손하게 되는 일도 있을 수 있으니까. 오히려 태우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기 때문. 혹은, 극단적 분노에 타오르면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내가 모욕감과 환멸을 느낄 만한 일을 당했다면 더더욱 그럴만하지.

일하면서 그런 사람은 만나기 싫다.
근데 때때로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게 정상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완벽하지 않으니까. 가끔은 신경질도 내고, 이중성을 드러내고, 화도 내고, 어딘가 답답하거나, 꼰대짓하거나, 모지라 보이거나, 지나치게 감동해버려서 일처리가 등한시되거나... 등등으로 비효율적인 행위를 하면서 성격적 결함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저도 모르게, 화가 날 만한 일을 만든다. 왜냐하면 세상에 자기검열이 강한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 일하면서 피해먹고 한탄하고 열등감느끼고 그러다 어딘가 성격적 결함이 생기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정말 사람 좋아 보인다 해도, 오랫동안 같이 부대끼며 살면 뭔가 문제가 드러나곤 한다. 단지, 오랫동안 살다보면 거의 타인을 알아서 서로 문제를 견디고 사는 거지. 그 사람의 불편한 점도 알지만 선한 점도 아니까. 나는, 그게 솔직히 진짜 인간관계라고 생각한다. 서로 불편하지 않은 게 아니라 서로 불편을 알고 감내하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진짜 인간관계라고.





근데 그게 안 보인다면? 난 오히려 그게 더 무섭다. 불편하지도 않고 거슬리지도 않아. 사회적으로 용인될만한 언행을 보이는 것. 때로는 의롭고 때로는 천사같은데, 절대로 화도 안내고, 다리도 불태우지 않아.

둘 중 하나다. 첫째는 지나치게 자신을 깎아먹으면서 참고 있는 경우. 이 경우엔 언젠가 그 사람은 폭발하게 된다. 혹은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있을 거다. 어느 쪽이든 관계가 편하게 유지될리는 없다.

두번째는, 타인을 이해하는 동시에 무척이나 계산적인 사람이다. 근데 난 모종의 이유로 이게 더 무섭다. 모든 사람들은 존재가치가 있다는 걸 파악하고 있지만, 그렇기에 타인의 모자람을 받아주면서까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단 거니까. 그건 극한의 스트레스인데도 불구하고 이익을 위해 그걸 감내하고 있단 거다. 사람은 이런 거에 혹한다니까? 불편함없이 다 포용해주는... "사람좋은 사람." 내가 불편해 할 것을 하나도 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은 존재하기 어려우니까. 아니, 오히려 이상한 거지. 그 말은 즉슨, 이미 그 사람은 나에게 대한 계산이 끝났다는 의미거든. 정확히는, 내와 대다수가 생각하는 불편함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는 말이란 뜻이니까.

사람과 오래 부대끼다보면 그 사람이 어느 순간에 감정에 도취되는 순간이 보일 때가 있다. '사람 냄새 난다'고 할 수 있는 행동을 할 때. 내 경우, 그런 순간은 단순 사람이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순간이 아니다. 감정의 동요나 에너지가 흐르는데, 그것이 남에게 불편함을 줄 정도로 커질 때나, 혹은 지나친 행위를 보이거나 기존의 자기가 유지하던 가면과 다르게 이질적인 행동을 할 때. 나는 거기서 그 사람이 속마음을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근데 어떤 사람은 그런 게 안 느껴질 때가 있다. 일관적이야. 그럴 때 나는 싸함을 느낀다. 어떤 떨림도 느껴지지 않아서 동기조차 가늠하기 어려우니까! 사람이 살다보면 동요하거나 흔들릴 수 있는데 그런 게 전혀 없어.

그래서 가장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고 말하곤 했다. 자신을 타인에게 호감을 받을 수 있도록 다듬는 노력파거나 치밀한 사람이며,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이미지를 이해하고 그걸 이용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어딘가 사회 보기 드물 현자였을 지도 모르지만, 그런 사람일 수록 특유의 에너지가 넘쳐서 누구들과 적을 잘 지는 사례들이 많다. 근데 모두가 인정하는 호인이라면 이상한 거지.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한다. 진짜 악마는 영화 속 남을 비웃는 사이코패스만이 아니라고. 그렇게 적을 안 지는 사람도 위험하다고 말이다. 남을 비웃거나 타인의 생명을 비웃는 사이코패스도 위험하지만 그건 가시적인 위험함이다. 사회적 이미지를 잘 알고 잘 이용해먹으며 바보짓 안하는 그런 사람들은 치밀한 거니까.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잖아. 그 정도로 독하고 사람을 이해하는 존재라면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보는 거다.

실제로, 세상에 범죄를 저지르고 사라진 사람들 중에는 죄를 저지르기 전까진 남과 적을 지지 않은 케이스도 있다. 실제로, 그래서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르기 전까지는 그 동기를 이해를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많거나, 그 사람은 누명을 쓴 거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 호의를 주지만 동기를 알 수 없는 저 너머의, 다리를 불태우지 않는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건너편에서 자신과 연결된 다리들을 바라보면서. 어떤 계산 하에 나와 연결을 유지중인 건 아닐까? 나는 의심한다.







PS.
생각해보면, 참 나도 영악했었다. 어릴 적엔 피해자 코스프레나 간신 역할을 잘 하고, 연기에도 능했거든. 부모님이 참다참다 잔머리 굴리지 말라고 주의를 줄 때도 있었다. 커서는 나에 대한 시선과 이미지를 활용해 욕먹으면서 뒤에서 챙길 건 다 챙긴 일도 있었다.

그땐 참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짓 했던 떄였다, 당연 지금은 사람 불편하게만 안 하려고 분석하고 연구하는 기질을 쓰지, 피해를 주려고 쓰지는 않는다. 그냥 트릭스터마냥 해괴한 짓을 저지르긴 했어도, 일이 커지면 나는 혼날까봐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그 심정이 이해가서 두려웠다. 그래서 영악하지만 넘을 넘는 행위는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여담이지만, 선악설이니 성선설이니 그런 걸 믿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애초에 성선설이니 선악설이니 논쟁이 의미 없는게, 악과 선을 규정하는 건 이미 사회를 지배하고 활동하는 사람들이고 자기 사상에 의해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를 규정하고 있을 뿐이잖아. 실제로 자연에는 선도 악도 없는데. 자연재해가 일어났다고 자연이 나쁘다고 말하거나 그래도 자연일 뿐이라거나... 그 정도 논쟁 수준과 다를 거 없다고.

그저 어떤 성격은 태어나서 가질 뿐이다. 그 성격이 스스로를 악하게 만드냐 선하게 만드냐는 내 생각에, 사회의 선택과 본인 선택에 달린 것 같다. 위에, 사회를 전적으로 따르는 사람은 무섭다고 썼지만 모르지. 그게 어떤 사회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정답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 그런 언행의 이면과 문제점을 간과하는 사회라면 전혀 문제가 없는 거다.

덧글

  • 2019/08/13 17:5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로그온티어 2019/08/13 18:02 #

    그런 사람 예방법이 하나 있는데, 관심사를 흐트리는 겁니다. 내가 뭘 중요하게 생각하고 뭘 불안해하고 조급해 하는지 잘 드러내지 않는 거죠. 걱정하고,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 마음을 긁어줄 말과 제의를 하는 사람이 한 명 있씁니다. 그 사람이 위험합니다. 그래서 조급해도 절대 조급함이나 어딘가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합니다. 사기꾼들 눈에는 그게 보이거든요.

    이런 사람들을 피할 방법은 없고, 이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게 습관이 됬을 뿐이라 그게 나쁜 건지 아닌 지 잘 모를 뿐이거든요. 다만, 이런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을 때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속셈을 알아도 다짜고짜 윽박지르거나 타이르지 않습니다. 자존심을 건드려 증오범죄에 휘말릴 수 있어요. 그러니 거짓말을 하거나 당해주는 척하다 피하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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