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린이 대상 작품을 만든다면 / 컨텐츠 규제에 대해 / 동상이몽 └ 일상의발견



저는 어린이들을 위한 게임이나 작품을 쓰고 싶었어요.

제가 전에도 말했지만, 어린 시절에 죽을 뻔한 일을 겪고 우울한 아이가 되었지요.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나도 저런 대책없이 희망적인 걸 그리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해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단 말이죠. 그래서 언젠가 관련 시나리오를 쓰는데 제가 오글거려 못 견디겠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번 손을 놨죠.

이건 뭐라고 해야할까... 제 자신을 극복해야 하는 겁니다. 저는 우울을 못 이겨요. 정확히는, 부정적이고 인간불신적인 그런 걸 못 이긴단 말입니다. 그래서 항상 이상하게 쓰다보면 비틀려진단 말이죠. 물론 사람이 연습하면 된다고, 한번은 정말 긍정적인 결말을 쓰는데 성공한 적이 있어요!

근데 캐릭터 대사들이 모두 욕만 가득했어요.

생각해보세요!

전대물인데 그 5명의 레인저가 모두 욕을 해요!
거기에 상하관계가 있어서 후임에게 프락치도 날리죠.
....

이런 걸 쓰니까 더 우울해지는 것 같네요.

아무튼 우울했기 때문에 유년기에 대한 집착이 좀 세게 가는 게 있어요. 밝고 아무 생각 없이 자랐으면 좋겠다. 그냥 정의를 지향하고 순수하고 뭐 그런 거 말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어떤 아이들은 어두운 환경에서 상처를 받으며 자라고 있을 거에요. 그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늘 그러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저도 우울감을 떨치는데 동화나 이야기가 담긴 책이나 애니메이션의 도움을 받았거든요. 그런 희망을 세상 아이들에게 주고 싶단 말이죠.








근데...









아이들을 타락시키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밝고 건강하게 아이들을 보면 그 아이들은 장려하고 싶지만, 거기서 살짝 오만해지려는 아이들을 보면 어두운 현실을 말하고 싶은 마음이 근질근질해요. 만일, 어떤 아이가 말해요. "우리 아버지는 검사십니다! 정의를 수호하는 검사십니다!" 저는 그럼 조용히 말할 거에요. "정말 자랑스럽겠구나! 그런데 말이야, 내가 네 아버지의 검은 비밀을 하는데, 한번 들어보겠니?"

그런 작품을 쓰고 싶단 말이죠.

아이는 사실, 각자의 세계가 있잖아요. 동심의 세계, 밝은 세계 뭐 그런 거요. 그런 울타리 안 세계가 있어요. 허나 초등학생, 중학생을 거치며, 그 것이 점층적으로 깨지게 됩니다. 그건 울타리가 아니라 알 껍질이라고 해야 겠군요. 알 껍질이 깨지면, 내면에 취약했던 것들이 드러납니다. 부모로부터 덜 받은 영양분, 나의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나의 민낯도 드러나요. 그렇기에 상처를 받습니다. 알 껍질이 깨지고, 내가 점점 드러나거든요.

그게 내면의 자아가 곧게 자라도록,
견딜 수 있을 만큼 천천히 깨지면 좋겠죠.
근데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맞아요, 제 말은 즉슨...
모든 어린이가 옳게 자라진 않아요.
정확히는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라진 않는다는 말입니다.

제가 죽었다 살아난 이후 삶의 허무함을 느꼈던 것처럼 언젠가는 아이의 세계가 깨질 날이 옵니다. 단지, 그게 좀 일찍 와서 비뚤어질 수도 있단 말이죠? 그런 경험을 컨텐츠를 통해 만들고 싶은 겁니다. 저는 항상 그렇게, 아이의 동심의 세계를 깨는 작품도 쓰고 싶었어요. 2가 동심을 지킨다면 이번 3은 깨는 겁니다. 아이를 울리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단지 경악하고 패닉상태에 빠지고, 회의하는 걸 보고 싶어요.

누군가는 사디스틱한 미친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에요.

글쎄요.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깨버리면
상처를 입는 동시에 더 나아갈 기회를 얻거든요
단지 그 기회를 일찍주고 싶은 것 뿐입니다.

아이를 지켜주고, 좋은 것만 보게 자라도록 해도, 세상의 어둠을 온전히 못 보게 할 수 는 없습니다. 매일 뉴스에, 어른들이 무심코 해버리는 말 속에 어둠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늘 컨텐츠 검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저는 말하곤 했어요. 컨텐츠는 잘 검열해서 좋긴 한데, 문제는 검열하든 안 하든 아이는 그 어둠을 직면하게 될 테니까요.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지인의 자살 등등, 부모의 손에서 벗어난 일들에 의해 아이는 어둠을 맞게 될 겁니다.

모든 것은 갑작스럽게 찾아옵니다. 알 껍질은 언젠가 깨지지만, 그 순간이 이르게 올 수도 있고, 좀 늦게 올 수도 있지요. 그리고 평생을 혼란, 원망, 혹은 체념 속에 살게 될 겁니다. 이 경험으로 인생 자체가 시니컬해질 수도 있지만 그 시니컬함이 살아가는 데 도움주진 않아요.

늘 생각했죠. "이런 어둠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걸까?" 늘 생각했어요. 다른 아이들은 정말 평범한 가정이나 올바른 걸 보고, 꿈을 가지며 사는데 왜 나는 빛이라고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걸까?

그래서 제게 두 가지 마음이 생기는 거죠. 하나는 아이들의 마음만은 깨지지 않게 지키고 싶다. 미성년자 다보는 블로그 사이트에 야한 글 써대면서 퍽이나! 나머지 하나는, 그 울타리를 확 깨지 않고 미리 살살 깨주고 싶다는 겁니다. 작품으로서요. 왜냐하면 컨텐츠는 어디까지나 "먼 일의 일"이기 때문에 이입해서 충격을 먹어도 크게 다가오진 않을 거거든요. 다만 아이에게 생각할 여지는 남겨줄 수 있을 겁니다. 적어도 오랜 이후에 갑작스럽게 찾아올 배신감에 충격을 먹을 일은 없겠죠.

저도 바래서 나쁜 일을 겪은 건 아니니까요. 저는 늘 그렇게 생각해요. 이미 주변에 나쁜 일을 겪은 사람들, 아이들, 그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된... 이런 사람들이 많아요. 아이들에게 이런 현실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 때는 언제일까요. 매일마다 아이들은 확률을 알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되요. 그 위험은 외부만 오지 않아요. 부모가 잘못 행동했던, 부모는 기억 나지 않는 순간이 아이에겐 심각한 기억으로 박혀버릴 수도 있지요. 나중에 아이가 20살 지나서 부모와 술 한잔 걸치다가 이야기 나오면 깜짝 놀랠 겁니다. 얼마나 많은 순간을 아이가 기억하는 지에 관해서 말이죠.

한편으로 그래요.

이렇게, 이 지구상 높은 확률의 아이들이 불우하거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자라나는데 나머지 퍼센티지가 마냥 행복하게 자라게 둘 순 없죠. 불공평하잖습니까.

누구는 어둠의 자식으로 자라고 누구는 아니라고?! 누구는 상처받고 평생을 어둡게 사는데, 누구는 행복하고 순탄하게 자란다고?! 두고 볼 수 없어! 모두 어둠의 자식들로 만들 겁니다! 세상의 음습한 모든 것들을 집약시켜 ... 그 뭐뎌냐... 마도카 마키카처럼! 충격과 트라우마를 주는 작품으로 아이들에게 어둠을 보여줄 거야! 충격과 공포에 빠져라! 이 세상 어린이들이여!













이리보면 본문이 왠지 육아밸 테러 같지만 그렇진 않습니다.
위는 그냥 제 생각과 농담을 엄청 순화시킨 거죠.

원래는 컨텐츠와 그것이 아이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순간의 자학개그 욕심을 참지 못하고 좀 변질된 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첨언해서 씁니다.

노파심에 쓰는데, 전 컨텐츠 규제엔 후리한 편이에요.
"엄청난 폭력물이나 성인물을 보여줘도 된다" 그 정도 후리한 쪽은 아닙니다.
다만, 아이가 컨텐츠를 보고 충격을 받을 수는 있어요.

단지, 컨텐츠를 보고 충격먹을 가능성보다는 현실에서 어른들에 의해 상처받을 확률이 더 높을 뿐이죠. 어른이 되고 난 분들은, 아이들이 엄살 부리거나 징징대는 걸 보면서 짜증났던 경험 많을 겁니다. "별 거 아닌 걸로 생트집을 잡네" 생각 들죠. 그래서 폭언을 퍼붓거나, 너무 쉽게 무시해버리고, 그게 오히려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어요. '어 나는 한적 없는데?' 근데 사회에서 말하던 단순한 부정적인 어투가 아이를 쉽게, 조금씩 변화시킵니다. 컨텐츠가 주는 상처보다 그게 더 클 수도 있어요. 라디오에서 괜히 중간캠페인 격으로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 틀어주는 게 아니에요.

더 나아가 말하자면,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보세요. 아이에겐 모든 게 생경한 겁니다. 울타리 밖 모든 게 무섭고 아프죠.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는 아직 백지 상태가 많은 거에요. 어른인 나는 이미 채워진 부분이 많고, '이미 아는 고통이니까' 아이가 느낄 고통이 잘 전달 안 되는 겁니다.

그리고 사람이 되게 웃긴 게, 모두 처음 고통을 겪었을 때를 잊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이겨냈다고 생각한단 말이죠. 실은, 기억나지 않는 많은 순간 (혹은 기억을 잘 안 했던 순간들) 에 조금씩 고통을 겪으며 성장해왔었고, 그 덕에 큰일이 일어날 때 고통을 견디고 성장할 수 있었다는, 그런 구체적인 사실을 기억하지 않아요. 그 밖의 성장과정에서 나도 징징대거나 엄살을 부렸던 경험이 있었는데 그런 건 무시하고 아이들이 약하다고만 생각한다는 거에요.

아무튼, 아이가 유년기에 상처받지 않고 자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생각의 시각지대가 너무 많고, 아이의 모든 것들을 걱정해주기엔 어른도 바쁘니까요. 그렇기에 아이가 고통을 받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단지, 아이가 상처받는 모든 순간엔 부모가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포에 떨 때는 등을 기대고 의지할 기둥이 필요하니까요.

부모가 그래줄 수 없다면, 책을 읽게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그나마 엄청 비뚤게 자라지 않는 데 독서가 제일 큰 기여를 했으니까요.

역사적으로 현자들이 남긴 글과 지식은 누군가가 미리 가본 길이기 때문에, 부모가 옆에서 기둥이 되어주거나 않아도 책이 대신 기둥이 되어준다, 그 개념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야채 먹으라 강요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녀가 20살 이상 되서 술먹게 되면 해장용으로 자연히 야채와 친하게 됩니다 (?)

그리고 20살 되서 부모님과 술을 마시게 될 순간이 올 거에요.
그때 자식이 마음에 담아둔 말을 듣게 될 겁니다.
그떄 부모로서 한번 더 성장하게 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순간, 아이는 행복했고, 모르는 순간, 아이가 상처받았을 거란 걸 말이죠.

이런 일화가 있죠.

저는 어머니와 처음으로 소풍을 나간적이 있어요. 정확히는 아버지가 취중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난 다음날, 어머니가 난장판이 된 집에서 묵묵히 김밥을 싸서 저를 데리고 나왔거든요. 마을 광장에 큰 나무가 있고 주변에 벤치가 있는데, 거기 걸터앉아 김밥을 먹던 거요. 하늘은 푸르고 시골이라 조용하고 평화로웠어요.

제가 유일하게 우울하지 않고 행복했던 순간이 그거 하나 뿐이고,
그 덕분에 소소한 행복의 중요성을 안다고 어머니에게 말씀드렸어요. (취기에)

근데 말하니까 어머니가 머리 긁적이며 그러더라고요
"그런 일이 있었는 지는 모르겠는데, 네가 행복했던 일이라면 내가 잘한 거 맞지?" (...)

서로 시선과 마음이 완전히 달랐던 겁니다.








PS.
...마지막으로,
육아밸 진출하라고 하셨던 분들 전 약속 지켰습니다.

역시,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닌 거에요... 그렇죠? (?)



PS2.
그나저나 미래의 아이들은 선대의 희생주의보다는,
어느 것이 자신을 더 망가지지 않게 할 지를 잘 아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PS3.
생각해보니 지금은 인생의 낙 중 하나가 공원가는 게 낙입니다. 마음에 어둠이 쌓일 때, 이게 딱이에요. 주말에 가족들이 소풍오거나 아이들에게 자전거나 스케이트 가르쳐주는 걸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거든요. 엄마 저기 수상한 아저씨가 자꾸 쳐다봐 그런 평화로움을 보면서, 아직 지켜야 할 게 많다는 걸 느낍니다. 내가 화가 나고 세상이 싫어도, 지켜야 할 것들을 되새겨요.

만일 문제가 터진다면,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지켜줄 수 있을까, 사회가 언제까지 저런 일상을 지켜줄 수 있을까란 고민을 하다 공원을 나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상하긴 한데, 그래요.

덧글

  • 주사위 2019/08/31 08:16 #

    유투브 키드 분야 따로 낸다는데 로그온티어님이 만들어내는 컨텐츠는 얄짤없이 아웃당하겠네요...
  • 로그온티어 2019/08/31 10:38 #

    시간과 예산이 더 있다면, 심의의 눈을 교묘히 뚫는 건 가능합니다(?) 시간과 예산이 있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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