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 키스 └ 일상의발견



가슴에 큰 상처가 있어요. 아니,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그냥 진짜로 가슴에 큰 상처가 있어요. 이 블로그 보신 분들은 이미 아실 내용인데, 수술 때문입니다. 수술의 여파로 가슴에 큰 상처가 났지만 이걸로 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적은 없어요. 어릴 적에는 애들이 심장이 없다, 기계심장을 가지고 있다라며 놀려 댔지만 그 당시엔 그냥 제 유니크함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상처를 받지는 않은 거죠.

허나 사람들이 매우 심각하게 보거나 징그럽게 보다보니 슬슬 저도 마음에 컴플렉스가 쌓였었나봐요. 의사들에게 보여주면 의사들도 심각하게 질문할 때가 많았어요. 볼 거 다보신 분들이 이상하게 보다니... 이렇게 사람들이 걱정하거나 징그러워 하는 등의 여러가지 반응들을 겪었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어느 순간부터 이게 내 결함인 것 같다라는 생각이 살짝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부득이하게 수술 자국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게 될 일이 생기면 미안함이 먼저 들더라고요. 이런 징그러운 거 보여줘서 미안해요. 이런거? 심지어는 상대방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지라도, 수술 자국이 줄 우려를 먼저 생각하곤 했어요.

한편으로 저는 어릴 적에 똑바르게 눕지 못했어요. 수술을 여러번 받은 상황이라 똑바로 누우면 수술대에 있는 것 같아서요. 한번은 악몽도 꿨는데 팔다리를 묶은 채로 가슴을 열어 내장 속을 휘젓는 거였어요. 어쩔 수 없는 치료라는 건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무력하게 고통과 충격을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저는 영화나 드라마나 여러 작품들에서 수술장면이나 해부, 장기 적출 장면을 못 봐요. 나머지 고어릭한 장면들도 덤덤하게 보지만, 트라우마가 발동되어 버려서 견딜 수가 없거든요.

어느날 저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었어요. 그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하다가 어쩌다보니 원나잇을 하게 되었죠. 제가 옷을 벗는데 맨몸이니 당연히 그 자국이 보였을 거에요. 그걸 상대분이 한참 바라보더니, 왠지 뜨끔하는 마음에 제가 먼저 말했어요. "미안해요, 좀 흉측하죠?" 미안하달 것 까진 없는데, 그런 말이 나와버린 거에요.

허나 상대분은 말 없이 그냥 그 흉터에 키스했어요.

그 전까지는 거기에 들이대었던 건 메스 밖에 없었어요. 아니,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흉터가 신기하다고 만져보는 사람도 있었기에 거기에 손길(?)이 없던 건 아니에요. 허나 메스의 차가움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그것만 생각하게 되었던 거에요. 거기서 못 벗어난 거죠. 그게 너무 강렬해서, 똑바로 누울 때도 가슴에 칼이 들이대는 것 같아서 두려워 했는데. 그런데 거기에 열정적인 느낌이 닿았다고 생각해보세요. 온정과 애정과 열정의 살갗이 닿을 때, 비로소 흉터 안의 숨어있던 차가운 메스가 사라지는 거에요.

그리고 살갗이 좀 약하다 보니 거기가 보다 예민해요. 그래서인지 성감대를 만진것도 아닌데 거기가 너무 예민해서 애무라도 살짝 괴롭기도하고 살짝 무섭기도 했어요. 그 결과, 나도 모르게 읏읏 하게 되요. 거부감이 들지만 싫진 않단 말이죠. 그만하냐고 물어도 그냥 계속 해도 된다라고 말하게 되요. 왜냐하면 무섭지만 마음이 힐링되니까.

오랜 시간동안 그 기억을 곱씹어보면서,
흉터나 상처에 키스하는 것이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각해봐요.

저는 흉터를 제 삶의 유니크함으로 삼았어요. 그 정도로 흉터는 제 자부심(?)의 하나였어요. 허나 주위 반응에 의해 은근슬쩍 컴플렉스가 되었지요. 살갗이 찢어진 잔상이기 때문에 그로인한 충격이 아예 없지도 않을 거에요.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흉터를 가진 사람들은 트라우마나 컴플렉스를 지니고 있을 지도 몰라요.

그런 흉터에 키스한다는 건 매우 엄청난 상징인 거죠.
그런 흉터라도 사랑해줄 수 있다는 표시인 거에요.
컨텐츠 였다면 "그래도 괜찮아"라는 대사쯤은 쳐줬을 텐데,
그러지 않았죠.
오히려 키스를 하는 반응은 오히려 육감적이고 직관적으로 모든 게 설명되는
말 그대로 좋은 연출인 거에요.

한편으로, 컨텐츠에서 흉터를 가진 사람들은 저처럼 수술에 의해 흉터가 난 사람들이지 않아요. 컨텐츠 속에서 흉터는 전사에겐 필수로 딸려오는 것이거나, 아니면 그 사람의 추악함을 상징할 때가 많지요. 상처는 마음의 상처나 왜곡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이 되요.

여기서 혹시 사랑하는 상대방이 그 흉터의 근원을 알았다면? 그 흉터를 가진 주인공을 극혐할 지도 몰라요. 허나 반대로 극혐하지 않고 키스를 하면, 엄청나죠. 주인공의 힐링과 상대방의 포용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거에요. 에로틱하지만 사랑의 중요성도 볼 수 있어요. 단순 암시적인 측면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어요. 징그러운 상처에 키스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누누히 이야기하는 겁니다
사랑과 섹스는 영감을 주는 거라고요
보세요, 이것은 제가 섹스를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좋은 아이디어잖아요

만일 어떤 이야기꾼이 이야기 실력이 허접하다면 그 사람은 동정이라서 그래요
동정이라서 다양한 경험이 없어서 이야기를 못 쓰는 겁니다
그러니 동정 딱지는 떼고 이야기를 써야하는 겁니다

근데 사서 하는 게 아니라 직접 만나서 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어렵다고요?
...미안해요 제가 구해줄 순 없을 것 같아요

덧글

  • 주사위 2019/09/10 15:15 #

    저는 심장이식받을걸 처음보는 의사에게 진료받으면 무조건 처음부터 알려주기 때문에 의사가 심각해지지 않더군요.

    수술 여러번이면 흉터가 더 흉하게 남으니;; 저도 수술 두번했습니다.

    이식은 잘 돼서 의식은 무사히 돌아왔는데 한밤중이라서 다시 자버렸는데 다음날 아침 간호사가 하는 말이 수술실 갔다 왔다고...

    와파린을 오래먹은 탓에 출혈되는 부분이 생겨서 결국 한번 더 열고 전기메스로 지졌다고 합니다;; 수혈도 받아서 4팩이나 썼다고 ㄷㄷㄷ

    아... 마법사가 되기까지 몇년 안 남았군요. 실제로 마법을 쓸 수 있으면 좋을텐데... 아! 서글퍼~~~ (먼산)
  • 로그온티어 2019/09/10 22:30 #

    아, 주사위님도 고생많이 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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