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와 혐오와 성찰의 오딧세이 //영화광





전 영화 안 좋아합니다. 많이 본다, 리뷰가 짙다라는 이유로 제가 영화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부모님도 영화 분석하는 이야기 듣고 왜 그쪽으로 안 빠졌냐며 한탄하곤 하는데 말하지만, 글쎄요, 저는 영화 관심이 없어요. 그냥 오락용으로 보는 거죠. 케이블에서 틀어주는거 매년 챙겨보고, 극장에서 영화 개봉하면 가서 보고, 기회생기면 보고... 보다보니 취향이 생기고 그런 겁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더러 영화 좋아한다고 말하신다면, 그거 심히 실례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영화를 더 분석하고 영화를 만들고 싶어 노력하는 사람들이 진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죠. 저는 그냥 심심할 때 영화보는 관객일 뿐입니다. 그리고, 보는 걸로 좋아한다 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솔직히 말해서 3000편은 봐야 루키죠. 저 정도는 우스운 겁니다. 같은 영화 재관람 하지 않고 국경을 넘어 다양한 작품에 관심을 들이고 봐야죠. 저처럼 장르 하나만 매진하며 편식하면 영화를 극히 단방향으로 봐버려서 진가치를 놓쳐버리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보면서 지금쯤 의문이 들겁니다. 이게 무슨 포스팅이냐? 그냥 왓챠갔다는 포스팅이죠, 뭐겠어요. 간만에 왓챠가서 리뷰나 몇 개 찌르러 가다 영감이 생각나서 포스팅하는 겁니다. 왓챠갔다, 그게 이 포스팅의 내용의 전말이니, 알짜배기 정보를 원하신다면 CIA, NSA에 가세요.

아무튼, 상황을 보니, 이렇더군요.



여기서 5점짜리 몇 개 더 빼려고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기준에 맞추려고요. 작년인가 갑자기 평론가 뽕이 돌아서 영화사에 길이 남을 법한 작품에 5점을 주는 일이 많았어요. 기술을 좋게 썼거나, 보기 드문 서사가 있거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걸작으로 칭하는 영화들에게 높게 점수를 줬단 말이죠. 허나 그렇게 되자, 정작 제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영화가 기준 미달이라고 점수가 낮아지는 일이 생겼어요.

어느날부터 그게 심히 마음에 걸려서 얼마전부터 평점을 다 수리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죠. 영화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사람인데, 일말의 스노비즘에 의거해 그렇게 평점을 줬단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내 영혼의 걸작을 인정하지 못하게 되버리는 일이 발생해요.

힙스터정신과 스노비즘을 버린 이유기도 합니다. 모두 남들의 시선 생각하거나 자기 이미지 빌딩을 위해서 작품을 좋아하고 고급스럽게 포장하려고 애쓰는 거잖아요. 저도 그런게 있던 겁니다. 그래서 내가 오롯이 좋아하고 깊은 인상을 받은 것에 좋은 점수를 주기로 한 거죠. 그냥, 제 마음을 위해서요. 내가 어떤 것에 주로 매료되는 지를 제 자신에게까지 속이기 싫어서요.








그러다 보니 재밌는 광경이 펼쳐졌는데, 제가 준 5점에는 대중적인 작품도 있지만 대중적이지 않은 작품도 뒤섞여 있게 되었씁니다. 평론가나 관객평도 어중간한 컬트적인 작품이 5점에 올라가 있기도 하고, B급 영화가 5점에 올라가 있기도 하더군요. 참고로 추억보정을 전부 뻈습니다. 다시 보고 나서도 지금까지 영감을 주는 영화만 올려놨죠.

추억보정하니 말인데, 제가 다시 보고나서, 싫어하게 된 영화도 꽤 있었습니다. 그때는 재밌게 봤는데, 머리에 피가 마르고 나서 보니까 영 아닌 작품들도 꽤 많았어요. 이것으로,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습니다. 내가 뭘 진정으로 좋아하는 지 알려면 영화를 다시 보는 게 좋은 거죠.

추가로, 이렇게나 많이 봤는데 블로그에 왜 감상문이 안 올라왔냐 라는 생각을 품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귀찮아서는 아닙니다. 매달 책 한권 분량의 글을 싸지르는 제 성격보면 귀찮아서는 아니죠. 단지, 저는 같은 인상을 받은 영화는 평가를 쓸 가치를 못 느끼는 것 뿐입니다. 어떤 영화를 보고 그와 다른 영화를 보면 다른 점이 보일 때가 있지만, 다른 점이 보이지 않거나, 그 다른 점에 대해 불만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엔 제가 포스팅해서 뭐가 싫었다고 언급합니다.

허나 아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을 때도 있어요. 이거 굳이 포스팅해야할까? 동어반복인 것 같은데 그럴 바에 근황이나 더 쓰자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거 쓰는데 데이터 낭비를 하기 싫어서 근황을 쓰는 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되서요.

모순아니냐고요? 하! 인간은 이중적이고 모순덩어리입니다. 그걸 모르셨다면 저는 그분을 사회생활도 못하고, 철학도 없이 그냥저냥 오늘만 살고 하루하루 똥이나 싸는 기계로 봅니다. 얼마나 불쌍해! 인간이 모순덩어리인지도 모르고 화냈다가 자기 변명이나 하면서 살다가...





(독자의 심정)








미안합니다.

아무튼 아무튼, 위의 문장에서 보시다시피 인간과 사회에 대한 철학이 확고한 편입니다. 이중적이라느니, 모순적이라니느니, 상당히 부정적인 어감의 단어를 많이 쓰는 게 보이죠. 허나 저는 인간불신적이지 않고 인간의 삶에 대해 낙관적인 편입니다. 솔직히 낙관보다는 방관에 가깝지 않을까 싶은데,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다 내일이면 뒈질 지 모르는 생명들인데라는 정신으로 사니까요. 이 놈은 부정적인게 맞아 단지 자기 욕망과 무지에 의해 타인을 몰아세우는 사람들이 싫을 뿐이죠.

자신의 이중성과 갭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까지 포용하고 회의하지 않는 사람에게 발전이란 없고,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답답하거든요. 주변 사람들에게 고구마를 뇌에 쑤셔넣는 듯한 고구마강간을 일삼는 답답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많은 것을 보기에도 시간이 아까운데,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발전도 없고 남과 자신에 대한 통찰도 없어 민폐만 끼치는 노잼인 사람과 함께하고 싶나요? 아니면 좆같아도 매일마다 패턴이 바뀌어서 매일 매일 새로운 저와 함께하고 싶나요?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참고로, 저와 함께한다면 밧줄과 로터기와 촛농과 가죽 옷이 기다리고 있...










(이글루스 심정)










아무튼 아무튼

저는 인간불신적인 영화를 싫어합니다. 우울한 영화도 싫어요. 제가 부정적이고 우울한 성격인 건 맞지만, 거기에 온 정신을 매진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요. 우울해지거나 부정적으로 변할 수록, 빛을 간직해야 할 필요성과 소중함을 더 크게 느낍니다. 그리고 자신이 우울하다고 우울한 영화를 보는 건 답이 아닙니다. 나 자신의 처지와 맞닿아 있는 듯한 영화를 보며 공감을 느끼지만, 공감 이상의 기능은 하지 않거든요.

사람을 만나도,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면 나의 정서와 분위기는 변하지 않아요. 하지만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 내가 불편해질지 언정, 끝내 나는 다른 세계로 가게 됩니다. 다른 분위기와 정서를 만끽하게 되지요. 영화도 마찬가지에요. 밝을 때 어두운 영화를 보면 또다른 세계가 열리고, 어두울 때 밝은 영화를 보면 몸이 절로 움츠러들지만 그래도 지금의 나를 탈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죠.

물론 나는 바뀌지 않아요. 저는 우울해 질 겁니다. 부정적으로 변할 거고요. 허나, 거기에 안주하면 될 일이 없다는 걸 알기에, 가끔은 나를 벗어나 다른 세계에 이입하는 경험을 하고 싶은 거죠. 그럴싸한 행복과 그럴싸한 숭고함에 대한 설득에 넘어가도 보고, 인생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복잡하고 재밌다는 사실에 한껏 빠지는 겁니다.

영화가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면 그건 영화 잘못 아닌가요?

아뇨, 나 자신이 마음을 지나치게 닫고 있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영화가 충분히 설명했지만, 나의 정치적 시선이나 불편함에 의해 그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놓쳤을 가능성도 있어서요. 지나치게 팔짱을 끼면 다른 것을 안거나 품을 수가 없잖습니까. 그리고 품지 못하면 그 것의 온정과 진심을 느낄 수가 없지요.

그래서, 내가 좋아하고 내가 공감하고 내가 감동한 영화에 높은 점수를 주지만, 지나치게 게으른 각본과 연출이 있지 않은 이상 제 맘에 안 들어도 2점 이하로는 점수 잘 안 주는 이유기도 합니다.









글이 쓰다보니 나는 어떻게 점수 주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영화를 좋아하는 기준이 어느새 공적으로 바뀌었다고요. 사적인 이유로 쌈마이틱한 영화를 좋아할 수도 있는 건데, 그런 자신은 무시하거나, 타인이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요.

호불호 갈리거나 불호가 강한 영화 리뷰를 보면 그게 유독 보여요. 스노비즘 가득한 리뷰어들이 자신의 감상아 아닌 평론가나 보편적인 평에 대한 동어반복을 하고, 이에 반하는 생각을 지닌 소수 지지자들은 소수 언더독 정신에 빠져서 주류나 대중의 시선을 비난하죠. 그냥 어떤 점이 좋았고, 이 부분은 문제되는 것 같다라고 깔끔하게 정리하면 끝날 일인데

작품가지고 신경전을 벌이고, 감정싸움을 하는 겁니다. 셰도복싱을 하거나요.

근데 그게 나쁘다고요? 아뇨.

제가 위에도 말했듯이 그건 그냥 본능이고, 본능이 나빠보인다고 하지 말라 그럴 수는 없는 거죠. 니체 초인정신에 의거해 자존심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나 화를 내고 싶은 마음을 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요. 오랫동안 그게 습관화되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라면요. 그리고 그게 습관이 되었다 하더라도, 화나 스트레스를 푸는 구석이 없다면 오히려 쌓여서 마음의 병이 되버리고 말죠.








살면서 느낀 건데, 대중문화와 주류 평을 따르는 문화는 틀리기 싫어서 때문인 것 같아요. 내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왜 그런 생각을 가졌는 지를 타인에게 변호해야 하는데, 그게 두려워서 그런 거란 말이죠. 하지만 그것이 나답지 않게 사는 방향이라면 문제가 되어요.

인간의 뇌 특성이 그렇죠. 뇌에 어느 혈류가 막히거나 출혈이 나면 잔혈관이 그 근처에 뻗어나가게 되요. 이처럼 나답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거세되면 그 욕망은 왜곡된 방향으로 뻗어나가게 되는 겁니다. 잔현관처럼요.

그렇다보니 결국 나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나의 나쁜 점에 대해 계속 회의해야 하는 순간이 와요. 타인의 불편을 거스르지 않고 나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죠.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불편한 점이 끝내 거슬려서 나를 비난하거나 나를 궁지로 모는 사람이 생겨요. 아님 나의 단점과 헛점을 이용하거나요.

결국 자유를 원한다면, 모험을 감행해야 하는 거죠. 내가 자신을 변호해야 할 때가 옵니다. 홀로 외로워질 각오도 해야하는 거죠. 세상에 나를 대변해 줄 진기한은 없더라고요. 필요하다면 내가 진기한이 되야죠. 내 성향은 뭔지, 나의 결정이 왜 그러했는 지에 대해 납득할 수 있게 세상에 설명을 하며 나의 권리에 대한 투쟁을 해야 하는 겁니다. 무작정 맞아준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무작정 비난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죠.











오랫동안 내가 생각하는 작품성과 신념을 가지면서 생활하다보면 지쳐요. 어느날은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어느날은 내가 오만했던 건 아닐까 회의해요. 하지만 무언가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개념을 보여줘서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싶다는 생각과 꿈은 유효해요. 그걸 위해 저는 제가 피해보더라도 모험을 감행하곤 해요. 저기엔 뭐가 있을까, 가보는 거죠.

영화나 게임은 그런 도전정신을 옹호하는 경우가 많아요. 허나 현실에서 도전정신은 대부분, 허무한 죽음이나 비참한 실패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죠. 좋게 봐줘야 정신승리 정도에요. 그래도 가는 이유는 더이상 막다른 골목에 있기 싫어서겠죠.

영화 취향 이야기하다가 삶의 태도에 대한 열변을 토하니 이상한 느낌을 받으신 분들도 많을거에요. 미리 말하지만 저는 여호와의 증인을 믿지 않습니다. 사이코... 뭐 그런 이상한 종교를 설파하려고 이상한 글을 쓰는 게 아니에요. BDSM을 홍보하려고 하는거죠. 여러분은 피학가학의 미학을 아셔야 합니다. 딜도가 강제로 박힐 때 그 느낌을 아십니까? 전신이 성감대가 되는 느낌을 아시냐고ㅇㅛ....


(글 읽는 모두의 심정)







이글루스 미안합니다. 내가 원래 이래요. 선처를

딴 건 아니고, 그냥 다양화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래요. 저는 중고등학생 때 느낀게 뭐냐면, 나는 보통의 아이들과 다르게 취향이 틀리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취향이 맞지 않다고 친구들에게 장난삼아 욕도 많이 먹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켠에는 불안이 싹트곤 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세상이 원하는 성향과 다르다면 저는 앞으로 밥벌어먹기 어려울 거란 말이 되거든요.

그 불안이 폭력으로 바뀌었죠. 역으로 대중을 비난하고 멸시하고 무시하는 폭력이요. 어떤 사람이 저의 멸시를 보고서, 제게서 힙스터적 폭력이 보인다고 했어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릴 것 같아요. 내가 불안하니까 내가 선호하는 장르나 표현법을 무시하는 주류를 비난해왔던 것은 맞지만, 힙스터들 처럼 무조건 소수 취향이 자신의 개성이 된다고 소비하고 그런 건 아니에요.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 대중적으로 변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니까요. 그 직후 개념이 변하면 그때부터는 내 작품을 돌려줘! 라며 소리를 지르게 되지만요.

근데 대중작품을 소비하고 연구하면서 느낀 건, 나도 대중작품이 싫지는 않더라는 겁니다. 게임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과거에는 감흥 없던 작품이 어른이 되서야 이해되거나 보다 깊은 감명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렇기에, 시선의 확장의 중요성을 실감했죠.

허나 그러고 나니까 소수나 좋아하거나 인기없는 작품은 허접해서 그런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지나치게 대중작품을 옹호하는 성향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 그러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덜 소비하게 되고, 지나쳐버리는 일도 발생해버리고 말아요. 사람들이 싫어하지만, 제가 과대해석까지 부여하며 지나치게 좋아하는 작품도 생겼죠.

나중에는 오랫동안 회의하다가, 나 중심의 것을 키우는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었지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무엇일까, 그 스타일이 먹히려면 어떤 것을 더해야할까라는 맛연구로 변한 겁니다.

전 영화를 좋아하진 않지만 싫어하진 않아요. 많은 영감을 얻거든요.
제 주된 방향은 게임입니다.
허나, 영화에서 배우는 것도 많아요.

근데, 영화의 스토리텔링을 따와서 컷신을 만드는 그런 부분은 싫어요.

다만 영화에서 제한된 러닝타임 아래 감정과 상황을 담기 위해 써먹는 시각적 효과와 디자인, 대사에 신경씀이 제게 많은 영향을 줘요. 저렇게 하면 유기적으로 감정을 전달하겠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는 부분이 많아요. 게임과는 또 다른 디자인을 만들 아이디어가 샘솟게 되요.










....뭐 그렇단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