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그레스 └ 액션





증강현실게임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 앱게임의 애니화는 봤지만, 증강현실게임 애니화는 처음봐서 조금 당황했습니다. 거기에 2D의 맛을 살린 3D 그림체라니... 중반에 보다가 묘한 모핑 현상을 보고서야 눈치챘을 정도로, 3D치고는 2D 애니메이션의 매력을 잘 살린 편입니다. 그림체는 약간 카우보이비밥의 그거 같았고요. 아니 주인공이 그래서 그런가. 주인공이 카우보이 비밥 주인공과 마이 아카데미아 어쩌구의 그 주인공을 닮아서요. 초록머리에 부산한 머리니까(...)

전체적인 분위기는 재패니메이션 다우면서도 살짝 다릅니다.

일단 재패니메이션 특유의 것들이 좀 있어요. 클리셰요. 엄청난 패기가 막판에 등장하는데 그게 "힘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식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전개지요. 솔직히 막판에 이걸 너무 남용해서 좀 지루해지는 감이 있어요. 일본 애니메이션풍 악당의 비웃음과, 말이 많은 악당도 등장합니다.

재패니메이션과 다른 점이라면, 설명이 간결하다는 겁니다. 일단 설명할 것이 많지 않아요. 어떤 힘에 대해 다른 철학을 가진 두 진영이 있고, 둘이 싸웁니다. 그런데 그 힘을 악용하는 존재들이 세력을 넓히고 있다는 것. 그것만 알면 됩니다. 자유와 통제와 악용이라는 대중에게 익숙한 SF 주제를 썼기에 이해가 빠릿한 편이에요.

관객들에게 익숙한 주제와 배경을 다룬 컨텐츠라도 전개의 유니크함과 작품 특유의 흥미를 끌기 위해, 이런 뼈대 위에 걸맞는 다른 설정을 기입해야 합니다. 결국 익숙해도 설명이 필요하단 말이죠. 그래서 만들어낸 다른 설정도 존재하기에, 이 작품은 익숙하면서 낯선 작품이 됩니다. 쉽게 말해서, 결국 설명은 필요하다고요.

보통의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우, 이걸 파워게임과 설명으로 해결합니다. 파워게임 속에서 상황을 설명충 수준으로 설명하면서 파워게임을 계속하는 식으로 설명하죠. 허나 [인그레스]의 선택은 추격전과 발견 플롯 속에 조금씩 설명을 덧붙이는 것으로 해결합니다.

쉽게 말해, 일단 상황을 벌이고 난 다음에 휴식기 순간에 잠깐 설명하다가, 다른 상황이 전개되는 식으로 전개되는 편이에요. 휴식기와 설명 타이밍도 그럴 싸하고요.

문제가 있다면, 설명 안 하고 그냥 인그레스 세계의 힘을 보여준다는 겁니다. 맞아요. Show, don't tell이죠. 일단 힘의 위력부터 보여주는 겁니다. 허나 힘에 대한 설명이 없기에 좀 난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그레스는 터미네이터를 오마주해 그 구도를 사용합니다. 일단 주인공이 일방적으로 쫓기는 거에요. 누가 적이고 아군인가라는 중요한 실마리가 풀리기 전까지는 살기 위해, 지키기 위해 쫓겨가며 실마리를 조금씩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이상한 힘과 권력을 쓰는 사람들에게 쫓기는 것으로 막강한 힘에게서 도망치다가 자신의 힘의 가능성도 찾아갑니다.

적과 아군이 정해지고, 본 스토리의 궤도에 올라서면 작품은 버디무비의 형식을 띕니다. 이 구도는 [사무라이 참프루] 느낌이 나요. 아니면 [48시간]이거나요. 여기까진 뻔하기에, 작품은 인그레스 세계 속의 XM의 힘을 빌려 개성을 만듭니다. 미래를 보는 능력과 과거를 보는 능력의 조합으로 권력자들의 돈의 힘을 이기는 구도로 나가는 거죠.

작품 자체도 재패니메이션 특유의 츳코미 남발과 과장주의를 자중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요즘 많이 써먹는 섹드립이나 바카개그도 없고요. 일상파트같은 부분도 없습니다. 영화처럼 쫓고 쫓기고 계속 문제에 직면하고 현 사태에 대해 고민하고 캐릭터의 비애나 인격적 성장에 모든 시간을 할애하는 편입니다.

재패니메이션 특유의 느끼함을 싫어하시는 분도 그럭저럭 소화할 수 있는 작품이 된 겁니다. 아마, 인그레스가 일본게임이 아니라서 그럴 거에요. 제가 자꾸 느끼하다고 이야기해서 재패니메이션의 특성이 나쁘냐고 물어보실 분도 있을 겁니다. 아뇨, 나쁘지 않은데 요즘 재패니메이션들은 너무 느끼한 감이 있었어요. 내수에만 치중하다보니 갈라파고스화 되버려서, 모든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을 만한 안정적이고 진중한 작품보다는 자기들만 이해하는 코드만 남발하는 감이 있었어요. 묘사가 너무 과하기도 했고. 적어도 [인그레스]는 그 기름기를 뺀 것 뿐입니다. 재패니메이션의 매력이 빠진 게 아니라, 과장적이고 내수적인 부분만 빠진 겁니다. 제 생각에 일본 애니메이션의 미래는 넷플릭스입니다. 일본의 내수 집중에서 해방될 수 있는 작품을 내도록 일거리를 계속 던져주고 후원해주니까요.









예측하셨겠지만, [인그레스]는 남다른 작품이 아닙니다. 초반은 [터미네이터], [넥스트], [매트릭스]가 떠오릅니다. XM과 필드의 개념이 설명하고 나서는, 그것들을 자신이 가진 고유의 게임 속에 잘 비비기 시작합니다. 능력을 방출하는 개념은 [패러사이트 이브], 필드개념은 [에반게리온], 인류보완계획은 [데이어스 엑스:휴먼에볼루션]을 닮았습니다. 중국인이 흑막은 아니지만, 흑막 아래 적으로 나오는 점도 [데이어스 엑스] 1과 휴먼에볼루션의 특징이었죠. 마지막에 첨단기술을 장착한 사람들의 정신이 나가는 부분도 그 작품과 닮았습니다. 자유와 통제로 둘로 갈린 세계는 [데이어스 엑스:맨카인드 디바이디드]의 세계관을 닮았고요. 결말에서 진짜 흑막인 스포일러는 [유년기의 끝]을 암시합니다.

말하자면, 익숙한 SF와 서브컬쳐 들을 모조리 들고와 잘 비벼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SF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은 오마주된 부분과 철학과 주제의 재차용과 변주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거에요.

[인그레스]는 쉴틈없는 추격전 끝에 반전과 반전의 연속이며, 특유의 설정과 활용과 비밀들은 모험물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거에요. 자유와 통제, 권력의 집중화와 그만큼 커지는 뜻있는 광기에 대한 현 사회를 관통하는 테마도 좋았습니다. 명작은 아니지만 보기를 권장하는 작품입니다. 매우 재밌거든요.

허나 재미는 모험물로서의 재미지 액션은 아닙니다. 액션씬이 조금 드물고, 매우 허무하게 끝나는 면이 많아서 그 부분이 좀 아쉬웠습니다.







사운드와 그쪽 프로듀싱은 조금 호불호 갈립니다. 사운드가 먹먹해지거나 안들리는 경우도 있어서요. 어떤 부분은 아예 사운드 들리기를 포기하고 BGM으로 땜빵하기도 합니다. 위기 상황에서 건조한 BGM을 까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런 부분들은 호불호가 갈릴 거라고 봐요. 물론 작품 내에서 크게 중요치 않은 위기씬이라서 관객이 너무 여기에 이입하지 않도록 소격효과를 주기 위함은 압니다. 허나 그러지말고 에피소드의 결말부에 그런 장면들을 넣어 관객들이 이입하게 만든 뒤에 클리프행어 결말로 끝내버리는 게 더 나았을 거에요. 왜냐하면 위기상황인데 위기답지 않게 묘사하면 너무 전위적이잖아요. 예술적인 애니메이션이면 모르겠으나, 이 작품은 대중적인 증강현실게임을 배경으로 한 게임이니까요.



근데 반전으로, BGM 구성이 끝내줍니다. 얼터너티브 포크록으로 시작되는 인트로와 엔딩부터 시작해서, 반겔리스와 마이클 매칸이 잘 쓰는 그 스타일에 요한 요한슨의 월드뮤직스러움(?), 트렌트 레즈너의 베베꼬인 감각, 클리프 마르티네스의 히스테리컬하고 직접적인 레트로 감성이 뒤섞인 작품 내의 BGM과 OST들은 다양한 분위기를 형성해주거든요. [아인] 때도 느꼈지만, 넷플릭스에서 제작하는 재애니메이션 음악들은 OST 선정이 탁월하고 좋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우울하거나 심각하거나 매우 히스테리컬하거나 드라마퀸스런 작품은 아닙니다.
대중적인 블록버스터나 미드 느낌 생각하고 보시면 편할 거에요. 그만한 청량감도 있고요.









PS.
작품 전체를 보시면 위에 제가 올린 인트로의 의미가 사실 스토리 전체를 상징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실 겁니다. (안 보셨다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니 결말 보기 전에는 스포일러처럼 느껴지지 않을 거에요.) 인트로 자체가 스포일러. 저는 스포일러 전부터 이미 눈치챘지만요. (...) 작품들을 너무 봐서, 이젠 떡밥을 눈치채는 쓸데없는 능력만 늘었어...

PS2.
포스 센서티브

덧글

  • 2019/10/07 23:3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10/08 00:4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주사위 2019/10/08 09:49 #

    안그래써(안그랬어) 제목보자 떠오른 아재개그...
  • 로그온티어 2019/10/08 10:45 #

    역시 제목을 잘지어야!
  • 로그온티어 2019/10/08 13:54 #

    ....아 지금생각해보니까 센서티브가 어쩐지 눈에 익더라니

    스타워즈의 포스 센서티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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