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가이 └ 코미디





짐 캐리의 악역 연기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케이블 가이] 때문이었어요. 바보역할이나 이중인격자, 편집증환자등의 역할도 어두웠지만, 진짜 민폐를 끼치고 결핍 속에서 끔찍하게 갈망하는 악역의 모습을 보인 건 [케이블 가이] 뿐이었거든요. [케이블 가이]에서 짐 캐리는 정을 갈망하면서, 자신의 정의 충족을 위해 불법까지 이용하고 타인을 궁지에 몰기도 하는 웃기면서도 무시무시한 집착남을 연기했어요.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이것은 [미저리]의 희극판이 됩니다.

[케이블 가이]는 TV를 보고 성인이 된 어른아이에 대한 영화입니다. 칩 더글라스는 부모의 지시에 따라 TV만 보고 자라면서 TV로 세상을 배운 남자입니다. 또한 부모에게 받아야 할 충분한 정을 받지 못해 인정에 대한 갈망과 비뚤어진 인성을 가진 남자이기도 하죠. 위에 썼듯이, 인정을 얻기 위해 불법도 자행할 정도고, 타인을 궁지에 몰기까지 할 정도에요.

처음에는 그 협박 수단이 TV였습니다. 집에 스티븐의 여친이 온 줄 몰랐던 칩은 TV 케이블을 끊어버리는데요. 스티븐은 여친과 영화를 보면서 데이트를 즐길 생각 때문에 케이블을 연결해 달라고 합니다. 스티븐은 칩의 집에 여친이 온 줄 모르는 상태였고요. 칩은 TV를 끊으면 당연히 스티븐이 케이블 구걸을 하기 위해 자신과 놀아줄 거라고 생각해서 케이블을 끊었는데, 칩에게 TV가 전부였던 것처럼 스티븐도 케이블 끊고는 못살거라고 생각해서 끊은 겁니다. 허나 그 시기에 스티븐은 여친과의 시간을 위해서 케이블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케이블을 구걸한 거죠. 다음 진행을 위한 개연성을 갖추면서, 두 캐릭터의 마인드의 다름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추가로 스티븐의 성격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의 스티븐은 칩이 기분나쁘거나 이상하지만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보통 사람같으면 내쫓거나 기분나빠서 표현할 상황이지만, 스티븐은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요. 칩이 케이블을 끊었을 때도, 노발대발하지 않고, 칩의 이상한 요구도 들어줍니다. 스티븐의 인성을 보여주는 대목이지만, 더불어 스티븐이 타인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하는 소극적인 성격임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끔찍하게 적극적이고 질척한 칩과 함께 하면서, 제 생각에, 소극적이었던 스티븐 또한 인성에 변화가 왔던 것 같아요. 보다 적극적으로요. 물론 스티븐과 칩은 서로 완벽한 정반대의 성향입니다. 허나 제 경험상, 소극적인 사람은 적극적인 사람에게 끌려가게 되어있고, 싫다고 하더라도 적극적인 사람의 행동에 따라주다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처럼, 메디블타임에서 스티븐과 칩이 창 대결을 하는 부분은 뭔가 심리적으로 깊은 느낌을 받았어요. 스티븐이 내면의 소극성에 의한 거절을 하지만 칩의 질척거림은 끝내 다가오고, 결국 스티븐이 창으로 칩을 쳐내는 겁니다. 스티븐이 칩을 쳐냄으로서 자신 내면의 적극성을 발견하는 거죠.

또한 스티븐은 소극적이지만 인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정에 열린 마음에 칩도 질척이다 스티븐과의 인간관계에서 어떤 충족을 느낀 모양이에요. 그래서 온갖 법을 어기면서까지 스티븐을 가지려고 하는 거죠. 허나, 덕택인지 칩은 위성접시 위에서 무언가를 깨닫게 됩니다. 타인에게서 인정을 요구하는 욕망이 컸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스티븐의 인정으로 인해 욕망이 가라앉았을 때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TV를 통해 자라면서 부족해진 사랑을 갈망하며 자신이 커왔다는 걸요.
그리고 성찰하는 순간, 빌런은 영웅이 됩니다.

어떤 분은 궁금할 거에요. TV만 보고 자란 애가 어떻게 타인을 설득하거나, 비리를 저질러 협박도 할 줄 아는 거지? 쌍둥이 법정재판을 다루는 TV 뉴스에서 그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TV에서 자극적이고 사건 위주의 뉴스를 틀어주는데, 칩이 거기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배워버린 거죠. 즉, 부정적인 뉴스를 통해 세상의 부정만을 배운 겁니다. 세상의 온정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배우고요. 칩이 노는 방식과 타인과 어울리는 방식이 지극히 극적이라는 데서 그걸 알 수 있습니다. 처세술은 뉴스에서나 나올 법한 위법행위만을 저지르면서 처세를 하고요. 그냥 쉽게 말해서, TV(미디어)가 그를 망쳐버린 겁니다.

근데 이런 생각이 또 듭니다. 스티븐과 여친이 부모를 만나러 가는데, 거기 칩이 나오죠. 스티븐은 기겁하며 칩에게 나가라고 하지만, 칩은 연극적인 행동을 하며 스티븐을 몰아세웁니다. 근데 여기서 칩의 연극이 왜 통할까요? 왜냐하면 가정에서는 TV를 보기 때문입니다. TV를 칩만큼 소비하지 않더라도, TV를 통해 개그도 알고 TV를 통해 세상을 보기도 합니다. TV가 문화와 정서를 전달하는 게 현대사회의 기본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즐길거리로 소비하는 동안에, TV로 배운 정서나 문화가 머릿속에 박혀버렸던 거죠. 그래서 칩의 연극적인 행동이 어떤 부분에서는 통하는 겁니다. 그리고 칩 또한 그것이 통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거죠. 그런 반응들이 현실적이지 않고 너무 연극적이지만, 그걸 받아들일 정도로 TV정서가 가정 내에 박혀버린 현실을 풍자하는 부분입니다.

[케이블 가이]에서 칩을 연기한 짐 캐리는 너무 극적인 연기만 해대기에, 처음부터 관객의 기를 질리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단순히 짐 캐리가 어두운 사이코를 연기해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보다보면 정말 기가 질리거든요. 허나, 그렇기에 정말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는 심리가 발동해서, 중후반부부터 질척임이 심해질 때는 정말 무서워지는 감이 있습니다. 특히, 케이블을 통해 공권력도 매수하는 능력으로 몰아붙이는데 어이없어서 웃기지만 은근히 현실적이라 더 무서워요!

어떤 사람은 다른 데서 가입해도 되는 케이블 하나 때문에 매수될 수 있나? 라고 생각될 텐데, 그건 스티븐과 깊은 관계가 아닌 이상 스티븐의 심정을 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먼 거리에서는 별 대수롭지 않을 일이라면 눈 감아줄 만 하다고 할 때 눈 감아주는 게 사실 사회에요. 군대나 사회에서 벌어지는 비리는 큰 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이정도면 눈 감아줄 만 하다"고 생각되어 일어나는 작은 비리들이 많습니다. 호의를 받은 상황에서, 내가 이것 좀 해도 되지? 라고 물었을 때, 크게 문제될 것 없다 생각되면 유도리 있게 "그래. 해라"라고 고개 끄덕여주는 게 사회에요. 위에도 썼듯이, 칩은 사회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며 여러가지 복합적으로 인성이 성장한 인물이 아닙니다. 이런 부적절한 관계로 관계를 맺는 방법만 배운 사람이죠.

또한 칩 더글라스를 연기하기 위해, 억양도 바꾼 짐 캐리는 처음부터 결말까지 호연합니다. 특히 억양을 바꾼채로 가라오케 기계 앞에서 모사를 하는 장면은 기가 질릴 정도로 압권입니다. 그리고 짐 캐리는 비참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극적인 행동을 하며 인생을 극화시켜 사는 인물의 모든 것을 카피해내기도 했어요. 칩은 인생을 극화시키는 것을 방어기제로 삼는 인물입니다. 타인을 대할 때는 칩의 연극적인 방어기제가 튀어나오죠. 왜냐하면 TV로 인간 대하는 법을 배웠으니까요! 그러나 아무리 방어적인 사람도 방어가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삶의 요동침을 견디지 못할 때요. 결말에서 칩은 헬기의 빛을 보며 그 요동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칩의 인생에서 잠시 연극이 끝나는 순간이죠.

이게 [트루먼쇼]의 결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트루먼쇼]에서 트루먼의 bow가 영화 밖 관객과 영화 속 트루먼에게 동시에 인사하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케이블 가이]에서 칩이 감정에 동요하다 연극이 깨지는 순간, 칩(짐 캐리)은 무언가에 혼이 들린 듯이, 메타적인 주제를 읊거든요. 표정이 비슷해서 그리 느껴졌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케이블 가이]는 90년대식 발랄함이 깃든 사실상 뻔한 90년대 블랙코미디 영화로 볼 수 있지만, 짐 캐리가 보통의 코미디 연기와는 다른 기괴한 연기를 보여주고, 각본의 시사적인 통찰력이 합쳐져 가치를 자아내는 작품입니다. 감독인 벤 스틸러가 직접적으로 각본을 쓴 것이 아니라서 그가 한 것은 단지 그 모든 것을 살려낸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이렇게 방향을 틀은 것은 벤 스틸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원래 각본은 그냥 못말리는 친구 이야기에 대한 거였고, 상당히 밝았다고 합니다. 허나, 벤 스틸러는 좀 더 '침해'하는 방향으로 짜자고 했으며, 각본가인 홀트가 이 요구에 따라 매우 어둡게 각본을 쓰고 프로젝트에서 나가자, 프로젝트에 남아있던 벤 스틸러와 주드 아파토가 홀트가 남긴 각본의 방향을 다시 다듬어 본 작품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벤 스틸러의 감각과 시사정신(?)을 느낄 수 있는 작품임은 맞는 겁니다.

한편으로 워낙 짐 캐리가 발정난 원숭이마냥 끼끼거리며 날뛰다 보니 한 끼하는 잭 블랙도 4분의 1끼만 먹고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덧글

  • 鷄르베로스 2019/10/09 23:50 #

    개인적으로 배트맨의 이니그마 연기가 정말 좋더라구요
  • 로그온티어 2019/10/10 00:07 #

    그게... 저는 너무 오래되서 기억이 잘 안나네요. 나중에 배트맨과 로빈 한번 더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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