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 잭의 집 └ 코미디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게 뭐냐면, 어린아이같다는 겁니다. 규칙들과 금기를 벗어나 천진난만하게 숭고함을 깨버리고, 나쁜 생각을 가지고 노는 그는 트릭스터에 가까운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늘 극단적이었어요. 허나 그 극단에서, 인간의 감정의 모순을 드러냅니다. 그의 영화를 보면 늘 벌거 벗겨진 기분을 받아요. 쇼펜하우어가 토론의 끝은 인신공격이라던데, 그는 스크린을 통해 모든 관객에게 인신공격을 퍼붓거든요.

"니가 그토록 숭고히 생각하는 인간성에 대해 말해볼래?"
"행복이 뭐냐고? 니들이 다 쳐 뒈지는 순간에 쳐해봐야 행복의 허무를 알겠지!"
"인생은 섹쓰야!"

이렇게 인신공격을 받은 관객의 반응은 둘 중 하나입니다. 화를 내거나, 아니면 감전당한 듯 충격에 빠져 가만히 있거나. 허나 두 증상은 다르지 않습니다. 두 증상은 관객 내면의 방어기제가 깨져서 나타나는 증상이거든요.

트리에는 아마도, 그것을 충격요법과 같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방어기제가 깨지면, 메세지가 쏙쏙 들어올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그는 한바탕 고문을 시킨 뒤에 아름다운 장면을 삽입합니다. 그는 참극과 괴로움 속에 미학을 불어 넣습니다. 그렇게 끔찍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세상의 의아함을 보여줬어요.

허나 [살인마 잭의 집]은 끔찍함 뿐입니다.








[살인마 잭의 집]에서 주인공 잭은 연쇄살인마에요. 그는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그것도 연쇄적으로 저질러 왔죠. 뭔가 영감을 받아서 사람을 죽이기도 해요. 여자와 아이를 죽이기도 하고, 멀쩡한 일가족을 죽이기도 하죠. 재미삼아 사냥하듯 죽이며 희생자들을 동물 취급하기도 합니다.

영화 전개 방식은 이래요. 잭은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이 나오고, 나레이션 (액자 밖) 으로 잭을 평가하는 버지와 자신을 변호하는 잭의 대화가 나옵니다. 잭은 희한한 궤변을 늘어놓으며 자신을 변호합니다. 작품 내내 그런 식이에요.

영화의 논리성은 중구난방처럼 보입니다. 잭의 살인이 탄로날 위기에 처하지만 자연의 섭리에 따라 허무하게 증거가 지워지고, 어이없게 수사망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영화적인 매력이 없는 건 당연하고요. 이것은 관객의 이해도에 따라서 납득여부가 달라질 거에요. 실제로 연쇄살인 사건 케이스를 살펴보면 조기에 범인을 잡아 막을 수 있었는데, 경찰의 초동수사 미흡이나 수사 방향성의 어긋남, 자연의 문제등으로 막지 못한 경우가 많거든요. 그걸 잘 아신다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아니라면 영화가 멍청하다며 분개할 겁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좋아, 연쇄살인마와 연쇄살인사건들의 민낯을 드러내려는 건 알겠어. 근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해? 그리고 이런 소재로 굳이 영화를 만들었어야 했을까?

그 의문이 들때, 제 생각은 [멜랑꼴리아] 시절로 돌아갔아요. 그 당시 깐느 영화제에서 트리에는 나치 옹호 발언을 했거든요. 그리고 깐느에게 '밴' 당했었죠. 제 생각에, 그 논란이 있을 적에 트리에는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나치로 개그를 쳐볼려고 했지만, 그 농담은 사회적으로 이해되기 어려운 농담이었거든요. 그걸 보면서 트리에는 금기를 깨는 자신의 불편한 작품이 예술로 용인되는 이유가 뭘까라는 생각에 도달하기 시작했을 거에요. 그러다 트리에는 연쇄살인에 대한 서적을 읽게 된 것 같아요.

연쇄살인마가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는 단순해요. 타인의 삶보다 자신의 삶이 극단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이죠. 왜곡된 자기만의 미학이나 성욕, 혹은 자기만의 규칙에 빠져 사회나 타인에게 분노하거나 감정해소 도구로만 바라보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렇게 악마가 된 이들이 연쇄살인마인 거에요. 그리고 특이하게도, 그런 흉악범에 끌리는 인간들이 꼭 있죠.

트리에는 그런 범죄 서적들을 읽으며 자신의 미학이 연쇄살인범의 미학처럼 끔찍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들었던 게 분명해요.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이 사람 작품은 불편하잖아요. 여자든 남자든 그의 작품은 너무 노골적이니까. 일말의 미학이 있지만, 그걸 감안해도 작품 자체가 불쾌할 정도로 괴롭고 우울한 건 사실입니다. 그렇게 까지 만든 이유는, 트리에 자신의 사고방식이 그렇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자존감이 슬슬 떨어지잖아요. "결국 나는 예술을 하는 사이코일 뿐인가!" 그때 트리에 내면에 자기 방어기제가 발동되요. 트리에는 궤변을 늘어놓기 시작해요. 자신의 예술 작품에 대해 궤변을 늘어놓기 시작한 거죠. 그렇게 도를 넘은 묘사를 하고 여자배우를 괴롭히면서 까지 영화 찍기를 강행한 이유는 내가 사이코라서가 아니라 세상에게 내 메세지를 강력하게 전파하고 싶기 때문이야!

그런 식으로 트리에는 궤변과 궤변을 늘어놓다가, 체념해요. 그리고 한마디 남기죠. "그래 씨발, 내가 나쁜 놈이다." 그는 스스로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살인마 잭의 집]은 라스 폰 트리에의 자학으로 이뤄진 작품입니다. 내가 예술하며 살아남은 이유는 순전 운일지도 몰라라는 사고방식을 잭이 어설퍼서 놓친 증거물이 빗물에 사라지는 것으로 보여주고, 살인 저지르고 궤변을 늘어놓는 잭을 통해 예술이라는 정당성 하에 관객을 괴롭히는 트리에 자신의 가학성을 변명합니다.

이 작품에서 라스 폰 트리에는 관객의 민낯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요. 찌질하기도 하고, 변명하기도 하고, 유치하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합니다. 필름으로 욕구해소를 하는 자신의 민낯을 드러냅니다. 그는 아마도 알고 있었을 거에요. 이 영화를 보고 관객들은 욕하고 나갈 거라고요. 하지만 그러라고 만든 영화인 겁니다. 결국 이게 나야, 그리고 나도 알아, 난 지옥에 갈거야.

트리에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이 연쇄살인마와 다른 점을 이야기합니다. 연쇄살인마는 끝내 궤변하고 트릭을 써서 천국에 가려 하지만, 트리에는 자신을 상징하는 잭을 지옥으로 떨궜다는 거요. 트리에는 그래도 잘못에 대한 궤변은 늘어놓지 않기로 한 겁니다.

참고로 편집이 꽤 나쁩니다. 갑작스럽기도 하고, 음악 하나를 연속으로 자주 틀기도 하죠.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자의식이 매우 과잉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중2병이라고 해야할까요? 허나 그런 자의식의 과잉이 주는 느끼함과 좀 거리감을 두고 싶은 느낌을 의도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작품이 제 해석처럼, 단순 트리에의 자학의 시는 아닐 지도 모릅니다. 허나, [다운폴] (몰락) 의 히틀러 역을 맡았던 브루노 간츠가 이 작품에서 주인공을 질책하는 버지로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