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온티어의 나의투쟁 └ 업데이트!



매일 깔짝깔짝 생각하고 있어요. 100만 되면 대문을 새로 작성하고 컨셉도 바꾸고, 시즌도 3으로 바꿔야지. 어떤 사람은 물어요. 블로그 질에 왜 그렇게 공들이냐고. 그냥 즐거우니까요? 쓸데없는 건 알지만, 시즌을 부여하고 블로그의 색을 재단하는 것만큼 재미난 것도 없거든요.

사실 블로그의 시즌과는 다르게, 저는 생각이 매일 달라지곤 합니다. 정확히는 어제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거죠. 저는 여태껏 고민을 안 해왔던 적이 없어요. 나, 이대로, 이렇게 생각하고 써도 되는 걸까? 글을 던져놓고, 고민하다 지우거나 아니면 그 글을 포기하지 않고 변호하며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진지하게 나가지 못하는 건 제 스타일이에요.

진지하게 말하다보면 그 글이 타인에게 호소하는 글이 될 때가 있어요. 혹은 좀 지나치게 메세지만 넣는 글이 되거나요. 그 이유가, 저는 상당히 감정이입이 심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떤 것에 집중해버리면 남의 감정이나 고통이 몰려올 때가 있어요. 이입해버리면 제 몸이 아파오거나 그 사람처럼 행동하게 되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혹은 슬펐던 일이 떠오르면, 현재의 감정이 그 순간으로 쉽게 점프해버립니다. 제가 주로 오락영화를 자주 보는 이유가 있습니다. 난해하거나 우울한 영화를 보면 그 속에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하거든요.

하루는 글을 쓰거나 캐릭터를 만들 때가 있었어요. 저는 캐릭터를 짜거나 이야기를 쓸 때, 캐릭터의 감정에 몰두해서 이 캐릭터가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을 정한 뒤에 짭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제가 가족들과 술마시러 갔던 가 그랬을 거에요. 헌데 제가 술에 취했을 때, 저는 제 마음의 말이 아닌 캐릭터가 하는 말과 행동을 해버린 겁니다. 하고 나서 나도 모르게 놀란 적이 있어요.

그래서 그 뒤로는 몰입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글을 쓰다보면 제가 너무 몰입해서 한 방향의 입장으로만 글을 쓰고 있음을 자각합니다. 글을 쓰면서 제 위에 덧입혀졌던 감정이 휘발되면, 다시 제 자신으로 돌아오니까요. 자각하는 순간, 저는 위의 생각을 보고 저게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인가를 판단한 뒤에 아니라고 생각되면 지우고, 의미있다고 생각하면 밑에 반박하는 글을 쓰거나, 아니면 진지하지 못한 농담을 칩니다.









둘째로, 제 사고방식은 "완전히 옳은 생각은 없다" 측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생각이 확정되면 그 확정된 사고방식 밖의 사람들을 포함할 수 없거든요. 어떤 생각이든지 사각지대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소외되는 사람들은 확정된 생각 아래 피해를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확정된 생각은 편견을 만들 거든요. 좋아 이세상에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이래, 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이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들 중에 예외적인 사람들은 그걸 보고 어이없어할 거라는 말입니다. 근데 그 의견이 수면 위로 떠올라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게 된다면, 예외적인 사람들이 체감할 편견은 무척이나 커지게 되죠.

어떤 생각이 확정되면 그 생각에 의해 억눌리는 사람이 존재하는 겁니다.

제가 자유주의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이유기도 하고, 제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할 때도 회유를 하지 강요하지 않는 것이기도 해요. 제가 유일하게 강조하는 것은 회의주의입니다. 사람들이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을 가지는 것은 중요해요. 그러나 문제점이 생기면 자신의 바운더리 안에서 변호만 하지 않고, 보다 개선되고 포용적인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포지션이 깨질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루션이 하나 생긴다면 주저할 이유는 없다고 봐요. 그게 정치의 목적이니까요. 이전에 어지러웠던 것을 다시 정리해보는 거요.

동시에 "완전히 옳은 생각은 없다"라는 말은, 모든 생각이 세상에 필요하다는 말이 되기도 해요. 어떤 생각은 너무 극단적이라서 위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좀체 나서지 않는 이유는, 세상에 자극적인 주제를 말하는 사람들도 결국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자극이 없다면 깨닫지 못할 것도 있으니까요. 허나, 너무 자극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 피해를 볼 사람도 있으니, 그 반대편도 존재해야 겠지요. 그리고 그 반대편의 힘이 강해지면 그의 힘을 억누를 새로운 세력이 필요해요.

그래서 저는 그 모든, 서로 반대되는 세력들이 밸런스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보는 편인 겁니다. 따로 터치를 하지 않아도, 밸런스는 자동적으로 갖추게 된다고 믿습니다. 사람들이 자극주의에 현혹되곤 하지만, 자극주의에 반하는 사람들도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으며, 세상엔 또 그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존재하거든요. 스스로 자정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만일 자정이 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은 어긋난 상황을 자정시킬 필요한 화력을 리크루팅하려고 할 겁니다. 허나 그 리크루팅 과정에서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 사람이 사상전쟁에 휘말리는 상황을 원치않아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건 알리는 겁니다. 이런 상황이 있다고 알리는 거죠. 감정을 섞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몰입해버리면 저는 강렬한 글을 쓰게 됥 테니까요.







정리하자면 제가 이글루스 내에서 글 쓰는 패턴에는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너무 과열된 양상을 띄면 농담을 해서 과열된 열기를 환기하는 거고
하나는 세상의 어떤 소식을 전하는 거죠

과열된 양상을 띌 때는 그 과열된 양상 자체를 까거나, 아니면 이상한 점을 꼬집어내서 엉뚱한 농담을 치려고 하는 편입니다. 세상의 어떤 소식을 전할 때는 알려진 사실을 전하고 모르는 사실은 모른다고 쓰죠. 자극적으로 쓸 때도 있지만, 반대되는 생각도 적어서 최대한 중화를 시키려고 합니다. 아무렇게나 써버렸다간, 제가 엉뚱한 사람을 내몰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안 그러려고 하는 거죠.

저는 10년동안 블로그 하면서 많은 글을 써왔고 그 글들이 중구난방인 경우가 많았기에, 저도 이 블로그 정체성 모르겠다고 난장판이라고 드립을 자주 치지만, 저는 이미 제 포지션을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오랫동안 저는 제 바운더리 안에서 제 생각을 수선하고 고치고 반성해왔죠. 그 결과물이 오늘의 이 블로그를 만든 겁니다.







그리고, 살면서 힘든 일이 참 많아요. 전에도 쓰다 지웠지만, 저는 선천적으로 우울한 기질이 있기에 잘못하면 패닉상태까지 갈 때가 있어요. 불안장애도 다른 사람보다 심하죠. 그리고 제가 일하면서도 생기는 트러블이 많은데, 저는 주로 그런 건 여기 안 쓰죠. 어느날 썼는데, 제가 힘든 것에 관해서 위로를 받는데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진 않더라고요. 아니, 위로해주시는 건 감사합니다만, 저는 위로받으려고 글을 쓴 게 아니라 그냥 쓰고 잊어버리려고 글을 썼을 뿐이라서, 위로 받았을 쯤에는 이미 감정이 날아간 상태거든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쓰다가 지우거나 아니면 그냥 안 쓰고 말게 되었습니다. 혹은 이야기에 그런 내용들을 담거나요.

아무튼 저는 매일이 감정 컨트롤하는 게 고역입니다.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저를 컨트롤할 수 있게 도와준 건, 블로그 질 아니면 책 읽기, 아니면 나가서 일을 하는 거에요. 일을 하다보면 나쁜 사람도 만나지만, 좋은 사람도 만날 수 있죠. 제가 어떤 방면에서 너무 엇나가는 생각을 할 때면, 항상 좋으신 분들이 제게 힘을 복돋아주고 가거든요. 그리고 어떤 낯선 곳의 정서를 느낀다는 건 가끔 저를 불안케 하지만 반대로 흥분되게 하기도 합니다. 이 곳의 사연은 무엇일까, 여긴 어떤 공간일까? 라는 호기심을 주거든요. 쉬는 시간만 되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다가 주의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가족들은 말해요. 제가 난해한 성장과정에서 지금껏 비뚤지 않고 살아온 게 의문이라고요. 저는 그냥 나보다 더 어렵게 사는 분들도 존재한다고 말하며 넘기고, 실은 모르죠. 지금까지는 잘 살고 있지만 앞으로 어떨지. 장담은 못하는 겁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껏 비뚤지 않게 살아온 이유는 좋은 사람들 덕분이에요. 때로는 못난 행동 안에 불안한 내면을 숨기고 있는 사람도 있고, 겉으로는 착하지만 속에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사람도 있지요. 어떤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는 건 제가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그 사람을 질책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살아왔던 사람들은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음을 아니까요.

허나 그런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달라질 수는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만남에 의해서 인생이 나빠질 수도 있지만, 어떤 계기를 만들어내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사람의 중요성을 체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똑같고, 구질구질할 때는 다 구질구질해 보이지만, 어딘가에는 생각을 환기시키는 색다른 사람이 나타납니다. 앗,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답답함이 조금 환기될 때가 있어요. 그래도 모든 존재가 있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물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죄를 지은 사람에게 그 말을 하면 되게 위험하죠. 그래서 저는 그런 사람들을 "존재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으나, 자신이 그 가치에 등을 돌린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죄를 짓는 것과 남에게 나쁘게 구는 행동은 모두에게, 사회에게 등을 돌리는 행위로 보는데요. 그것이 자신의 감정을 낫게, 혹은 쾌락을 줄 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자신을 깎는 행위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분은 제목에서 움찔하고 들어오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나의 투쟁]을 제목으로 왜 썼냐고요? 사실, 제 생각을 저는 지지하지 않아요. 항상 회의적으로 보죠. 이 글은 제가 쓴 글 중에서 가장 선동어조가 높은 글이에요. 따지고 보면(...) 그래서 비슷한 저서인 [나의 투쟁]을 붙인 겁니다. 비슷하니까요.

한편으로 제 세계관이나 생각이 매우 난해하다는 걸 이해하고 있어요. 누군가에게 말하면, 그 사람이 매우 당황하는 걸 많이 봤거든요. 말하자면, 제 생각은 너무 깊게 들어가는 성향이 만들어낸 미로와도 같은 곳이에요. 일단 마감처리는 다 되어 있는데 파고들면 매우 해괴한 그런 장소죠.

또한 투쟁이라는 단어가 틀린 것도 아니었어요. 저는 제 꼴리는 대로 살아왔고, 그렇기에 제가 거기에 간섭받는 걸 싫어해요. 허나 요즘은 젊은 분들, 제 또래분들도 남에게 간섭하기를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예를 들면 너 왜 그 사람 지지 안해? 너 왜 그런 운동에 참여 안 하니? 너 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니?

이런 거요.

그때마다 제가 설명을 하면 ... 위의 사실들을 봐요. 이미 너무 길잖아요. 사석에서 말하기 쉬운 말들은 아니죠. 그래서 대충 농담으로 뻐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생각을 공격하거나 덮으려는 의도가 보일 때가 있어요.

난해한 단어들을 쓰면서 덮으려고 하거나,
아니면 감정적인 단어를 쓰며 저를 공격할 때가 있어요.

난해한 단어들은... 굳이 쓸 필요없는데 쓰는 분들이 있어요. 의아할 때가 많아요. 모르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보통 사람들이 모르는 단어를 왜 쓰는 거지? 제가 교수님들을 좀 많이 만난 적이 많아요. 작품 고증을 위해서든 아니면 도움을 받기 위해서든요. 그 분들은 일반인들에게 이론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항상 레퍼토리를 마련해두고 계시죠. 이걸로 모든게 간단하게 설명되는 건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도 이해하기 쉬우니까 그 레퍼토리로 설명하는 겁니다. 난해한 단어들을 쓴다는 건, 아무리 봐도 그 단어를 안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기 때문이지,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을 하고 싶어서 쓰는 표현은 아니란 겁니다. 그래서 난해한 단어들이 속속이 나오면 저는 다른 생각을 해요. 그 사람이 지적허영심을 충족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죠.

혹은 감정적인 단어를 쓰면서 공격하는 상황이 있죠. 어떤 분이 좀 과격하게 말하실 때요. 그 분 본인이 어떤 상황에 관해 깊게 빡쳤지만 참고 넘어갔는데, 그 예시되는 일에 대한 감정이 내내 억눌려 있다가, 그 예시와 비슷해보이는 일을 벌이는 제 행동에 폭발하는 겁니다. 그냥 조용히 이야기해도 될 것인데, 갑자기 목청이 커지고 어조가 세져요. 때로는 말하는 분의 예시가 어긋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너무 억눌려 있다보니 발화점이 확장되어 버려서, 약간 틀어진 예시에도 폭발해버린 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제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 꼭 위와 같은 이유가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이 들지만,
"너는 그런 사람이야" 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습니다.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도 말을 안 해요. 그냥 토론의 분위기에 기대고 말죠.

허나 어떤 사람들은 제가 특정한 패턴에 든다고 생각되면 이렇게 말합니다 :
"너는 그런 사람이야"

맞아요. 저는 항상 "그런 사람"이라는 편견과 싸워왔어요. 혹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많이 대립해왔죠. 저는 주로 지다가, 성인이 막 되었을 쯤에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는 생각 하에 남긴 흑역사가 상당히 많아요. 어른들과 남들의 생각 사이에서 투쟁하다 너무 많은 컴플렉스나 불안증이 생겨서 제 자신의 생각을 과신했기 때문이죠.

지금은 그걸 이해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내 것, 내 삶, 내 가치관은 내가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사는 거죠. 뭔가 잘못된 생각이 있다면 더 불이 커지기 전에 가서 수정하고, 나도 잘못된 생각을 양산하지 않으려 노력하죠. 누군가의 생각을 억누르고 싶지도 않아요. 그래서 그럴 기미가 있다면 가끔 저는 변호하러 가는 거죠.





블로그가 재밌으려면 사람들이 많이 유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저도 요즘은 자극적으로 자주 쓰는 편이에요. 요즘 좀 너무 똥싸듯이 글을 썼어요. 닦아야 하는데 휴지가 부족할 지경이죠. 낚시도 많이 하죠. 주로; 혹은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척 막나가는 이야기를 하다가 정신병동 엔딩으로 끝나거나. 그 이유는 위에 이미 다 적혀 있는 겁니다. 내 생각을 강조하기 싫고, 인상은 주고 싶을 때, 그런 방식을 많이 써요.

아무튼 자극적으로 쓰고 자극적인 글들만 메인에 많이 올라오다보니, 분탕종자나 생각없이 싸지르는 걸로 찍히는 일들이 많더라고요. 어떤 분들은 아직도 절 그렇게 생각하셔서, 차단이 되어 있더라고요. 말하지만 저는 어느정도는 존중합니다. 너무 세상을 시니컬하게 바라보는 게 아닌 한요. 저도 시니컬하게 쓸 때가 있지만, 시니컬하단 게 그냥 자기 감정에 취해서 싸지르는 것이다라는 것쯤은 압니다. 허나 그런 화법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재밌으니까요. 허나 제 성향이 시니컬한 건 아니에요. 그냥 재밌으니까 그런 문체로 쓰는 거죠.

아무튼 이 글을 쏟아내는 이유는... 글쎼요.

가끔은 저도 제 스스로를 제 검증하고 돌아볼 필요성을 느껴서요. 나는 이대로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가끔 제가 지난 글 행적을 보면 그러지 않을 때가 많거든요. 가끔은 감정에 섞여서 이상한 말 쓸 때도 있었고, 좀 이상한 짓을 하기도 했었죠. 그래서 다시 기준을 상기하고 다 잡을 필요성이 있는 겁니다. 혹은 어떤 분에게 이 블로그를 즐기는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거나요.






마지막으로 제가 성적으로 방탕한 글을 싸지르는 이유는 간단해요.

솔직해지지 않으면 그건 비뚤어지거든요. 그리고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성적 지향이 아니면 뭐든 말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가끔 제가 먼저 솔직해지면 어떤 분이, 아 나도 그런데! 라고 말해요. 그러면 나의 욕망을 충족해 줄 수 있는, 그것도 최대한 바람직한 방법으로 충족할 수 있는 상황이 일어나는 겁니다.

권위적으로 굴면 때로는 그런 부분을 놓쳐요. 그냥 자유롭게, 너프하게 살아도 돼. 이렇게 살아도 되고, 저렇게 살아도 돼. 그래서 저는 그러는 거죠. "빡쳐요? 섹스 하세요! 대신 사랑하는 사람과요." 혹은 여친없어서 커플들을 증오하는 솔로들에게 "솔로분들 서로 맞는 사람끼리 뽀뽀하세요! 애널이 건강에 안 좋다면 프롯도 괜찮답니다!" 그리고 그걸 외치는 제가 공개적으로 쳐맞는 거죠.

ㅋㅋㅋㅋㅋㅋ
그겁니다. 그게 제 스타일이에요. 저는 그 범주에서 완전히 벗어난 적이 없어요.





제가 새로운 것을 계속 알려드리고 제공해주려고 하는 이유도 그것이 어떤 스노비즘 때문은 아니에요. 레퍼런스를 자주 쓰지만, 그건 내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귀찮아서 대충 제목으로 때우는 거고요.

권위주의 말이죠. 평론에 그게 좀 있어요. 심지어 사람들도 명작을 좀 과하게 숭배하는 경향이 있죠. 저는 그건 반대하는 입장이고, 그렇다고해서 여느 B급영화 지지자들이나 힙스터처럼 무조건 난해한 걸 소비해야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도 않아요.

제가 새로운 것을 계속 소개시켜드리는 이유는 그겁니다.

제가 청소년 기에 정말 세상이 갑갑했어요. 그런데, 그때 제 인생을 구원해주고, 저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줬던 작품들이 있어요.

300원에 산 시스템쇼크2 CD와
유튜브에서 들은 테크노치 음악이었죠.

저는 씨발 시스템쇼크2를 하면서 테크노치, 가바, 하드트랜스 음악을 들었을 때 거칠게 섹스받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동안 쌓여있던 정욕을 풀어주려고 아주 거칠게 노는 느낌이 들었단 말이죠. 제 청소년기의 일입니다. 지금은 별로 안 좋아해요. 나도 늙고 힘이 없어서 거칠게 놀자고 제안오면 한숨부터 나오더라고요.

근데 저 2 작품은 세간에 알려진 바가 전혀 없었어요.

시스템쇼크2는 매장에서 300원에 구입해서 알게된 게임이고, 테크노치는 인터넷을 떠돌다 우연히 알게된 음악이었죠. 입소문도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 오롯이 우연에 의해서 알게된 작품이었죠. 저는 흥분해서 비슷한 장르도 뒤적거렸습니다. 나중에 바이오쇼크와 디스아너드가 줄줄이 흥행하면서 시스템쇼크2도 알려지고, 이 게임들의 장르명칭이 이머시브심이라는 것도 알았죠.

근데 좀 그런 게...

이머시브심을 어떤 게임의 중대한 가치? 같은 걸로 보는 세력들이 보이는 겁니다. 정확히는, 바이오쇼크를 하면서 누구는 명작이라고 하는데 저는 바이오쇼크를 맹렬하게 싫어했어요. 그래서 바이오쇼크는 시스템쇼크2 보다 구리다고 했더니 예술을 모른다는 공격이 들어오더라고요.

아니 싫어할 수도 있죠. 왜냐하면 바이오쇼크는 시스템쇼크2의 쿨함과 과감함이 없어서 싫어하거든요. 좋은 작품이란 건 아는데 그냥 제가 싫은 거에요. 잘 정제되고 세공된 것을 본 느낌인데, 너무 세공되어 있는 나머지 갑갑한 느낌도 드는 게임이 제겐 바이오쇼크였어요. 그래서 싫어하는 겁니다. 누구에게 플레이하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싫은 거라고. 내가 철학과 예술을 모르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작가주의적인 게임은 힘이 너무 들어가서 부담스럽거든요. 내 생각도 있는데, 게임이 생각을 강하게 말하는 순간, 저는 게임을 플레이하고 경험하는 게 아니라 머릿속으로 토론을 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아무튼 그래서 제가 그놈의 게임의 예술성 드립을 아직도 싫어하는 겁니다.

심지어 과거에 택시드라이버 리뷰를 했을 때도, 제가 어떤 글을 썼던가 했었는데, 누군가가 저더러 "당신은 스콜세지의 세계관을 모른다"라고 말하더군요. 씨프 스토리에 대해 썼을 때도, 제가 번역과 캐릭터성 까지 포럼에서 읽어서 쓴 건데 누군가가 "당신은 개럿을 모른다"라고 말하더라고요.

[다이카타나] 때도 FPS와 젤다식 퍼즐의 조합은 기괴하지만 시도는 좋았다고 봅니다. 무기도 너무 실험적이고, 어떤 건 불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실험성 하나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라고 쓰니까 어떤 이가 "아니다 이 악마야"를 말하더군요.

이런 거에요. 어떤 평이 주가 되고, 그 주가 된 평에 의해서 어떤 작품은 단정 지어져요. 좋다, 나쁘다로요.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이 평론적으로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제가 그 속에서 어떤 스타일이나 규칙을 좋아하지만 그 규칙이 평론적으로 보자면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허나 평론은 말 그대로 이론이죠. 어떤 규격 아래에 놓고 게임을 평가한 겁니다. 개인의 규격이 아닌 거에요.

사람들이 그거 안좋다고 말해도, 제가 꿋꿋이 거길 가보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누군가는 이걸 혐오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이걸 좋아할 수도 있어요. 누군가는 그 작품 속의 것을 색다르게 이해하고, 새로운 발상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허나 특정한 평론을 향한 옹호와 소비는 작품의 어떤 가치는 묻혀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저는 일단 그 평론을 존중하되,
다른 방향의 것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러니까 누군가는 그걸 보고서 덕통사고를 일으켜서
삶에 새로운 환기같은 게 될 수 있잖아요.
제 삶과 마음에 들어왔던 작품들이 어떤 마이너한 작품들이었던 것처럼요.

그래서 계속 나아가는 거죠. 미지의 영역으로요.






뭐... 그게 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