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현재 └ 교양채널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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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물은 애증이다. 물에 빠져 죽다 살아난 기억 때문에 물을 싫어하지만, 나를 위로하고 힘을 내주게 만드는 건 물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사에 애증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내 천성일지도 모르겠지만, 물에 대한 기억 때문에 만사에 애증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곤한다. 내 모든 기억 속에는 항상 물이 있었으니까.

아무리 지쳐도 물 한잔이면 회복되고,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몸이 아플 때 목욕이 회복을 도와준다. 허나 샤워를 하다가도 머리에 물이 쏟아지면 갑자기 물에 빠졌던 기억이 떠올라 갑작스럽게 물을 꺼버리곤 한다. 물을 갈망하고,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싶지만 쉽사리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처럼, 물은 내 수많은 상처 중 하나다. 물에 대한 감정과 변덕스런 마음은 영영 바꿀 수 없는 내 성향이 될 거다. 허나 내가 싫어하는 성향이다. 바꾸고 싶지, 허나 쉽사리 되지 않으리란 걸 안다. 영화나 드라마 처럼 아주 강렬하고 시적인 경험이 아니고서는 바뀌지 않겠지. 허나 그런 일을 겪기란 어렵다. 내가 구조되었던 것처럼 물(수렁)에 빠진 나를 누군가가 나를 끄집어내 줄 확률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극히 드무니까. 어쩌면 나는 거기서 죽었고, 지금 이 모든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결국 물은 나에게 삶이었다. 내 삶에 대한 태도도, 경험도, 의미도 다 물과 통한다. 철학적 용어, 이론도 많이 배웠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와닿지 않을 때가 있다. 그냥 말이지, 때로는 실존하지도 않고 뇌 속에서 떠오르다 사라지는 어떤 개념일 뿐이다. 허나 물은 실존한다. 그리고 물은 다양한 것을 남긴다. 나에게 가장 와닿게 인생과 삶의 가치를 설명하는 직설적이자 자연적 요소는 물이었다. 그 물 하나가 모든 걸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준다.

너무 적어도, 과도하면 나를 죽이는 독과같은 것이지만 결국 내게 필요한 것. 나에게 힘을 주지만 때로는 나를 상처입히는 것. 내가 거부하고 싶어도 결국 받아들여야 하는 것 말이다. 내 몸에 그것들이 들어오길 허락하고 싶지 않아도, 내 육신이 그걸 원한다. 갈증은 본능을 넘어 내 신체시스템의 일부고, 내가 아무리 정신을 가다듬고 상위 욕구를 중시한다고 해도, 나를 이루는 그 신체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하니까.

물을 마시거나 물에 의해 위로를 받을 때 나는 그런 한계를 느끼곤 한다.

그렇잖아, 복잡하지 않고 간결하잖아. 물이란 게 어떤 것인지. 쓰다보면 한도 끝도 없지만, 결국 곁다리들일 뿐. 결국 간결하다. 삶은 필요함과 위험의 연속이다. 허나 어떤... 철학적 허영심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이 너무나도 간결하고 분명하고 재미없으니, 다른 생각을 품고 싶어하는 거라고. 때로는 삶에 질식하는 것 같으니까, 다른 것에 의미를 두고 싶어하는 거다. 그냥 음미할 수도 있지만, 음미하기엔 너무 무향무취의 그것.

어떤 사람들은 삶을 찬양하고 삶을 비판한다. 온갖 이상한 단어와 이론들을 끌고와서는 나를 설득하려 한다. 허나 나는 매일마다 물과 직면한다. 내게서 모든 건 물과 같고, 나는 질식하기 전에 물이 밀려오는 걸 막거나 필요할 때 물을 찾는 본능만 있을 뿐이다. 난 내 자신과 내 생각을 그 이상으로 평가해본 적이 없다.












2
오늘도 악몽을 꿨다. 물에 빠지는 꿈이었고, 깨어나고 나니 전신이 떨렸다. 이번에 몇 번째인지는 모르겠더라. 매번 기분나쁘고, 내 전신에 갑갑함이 올가미 엮이듯 죄어와 끝내 내 정신까지 조각내는 느낌이다. 꿈에서 깰 때마다 나는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다가, 동시에 싫어진다. 이것도 한 두번 겪어야 기쁜 거지, 여러번 겪으면 사는 게 아픔의 연속일 뿐이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의기소침해지니까. 그리고 그게 끝날 날은 내가 죽는 날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냥 어기적거리며 출근하고, 어기적거리며 사는 거지. 내게 추가된 보너스같은 삶 속에서, 그저 이 끝만은 아프지 않고 영적이길 기원하면서. 허나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그건 내 얼굴로 쏟아지는 차가운 찬물 한 바가지같아.

사적 감정은 안 가지고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으로 임하고 싶은데 꼭 그렇게 감정이 냉정해지진 않더라고. 어떤 사람들은 나더러 인생에 고행이 없어서 그런 거라던데, 정작 내 이야기를 꺼내면 아프리카 소년병이야기가 나온다. 그 보다는 덜 힘든 거라고. 글쎄, 그래도 걔네는 총을 쏘고... 그 찢어진 살갗 사이로 내장을 쏟아낼 지언정 일찍 죽잖아? 나는 매일매일이 조금씩 내장이 쏟아지고 쓸리는 기분이라고.

그래서 안정을 취하려고 누워도 보지만, 다시 밀려드는 거지. 누군가는 생각을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라고 하지만, 그럴 수가 없는 걸 어떻게 할까? 뇌에서 자발적이고 발작적으로 생각을 꺼내오는 걸 어떻게 해. 어떤 사람들은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내게 문제가 많은 것으로 본다. 그냥 내가 좀 모자르거나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허나 나는 그런 사람 중에선 가장 냉정하게 생각하고 잘 버티고 있는 거다. 자부심은 크게 느끼지 않지만, 없는 건 아니다. 이러다가 미친 놈들 여럿 봤는데, 그래도 난 기준선을 가지고, 드라마킹은 되지 않으니까.

난 내가 어떤 면에선 한심하다는 걸 알고, 어떤 면에서는 미련하다는 걸 안다. 허나 어떤 면에서는 가치가 있다는 걸 알지. 어떤 면에서는 위험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안전하다. 모든 게 그런 것 아닐까? 물처럼. 그냥 다 물인 거다. 이 세상에서 물리적으로 위험을 주지 않는 것은 오로지 이야기와 같은 허상의 것 밖에 없다. 그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위로를 찾고자 하지만, 결국 일시적인 거지. 현실의 나는 현실의 회복과 치유가 필요한데, 현실의 것들은 너무 위험한 것들만 보이니까. 그것이 무언가의 프로파간다에 의해서든, 광고에 의해서든.

그래서 사람들은 오히려 진짜 삶에 외면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실망과 허무와 우울만 남으니까. 말로는 하지만, 태도를 보면 외면하는 게 맞다고 나는 생각했다. 허나 단정짓고 싶은 마음은 없어, 나도 가끔 그러니까. 모든 것은 위험하지만, 결국 필요하다는 것. 그렇기에 때로는 가까이하고, 멀리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나도 가끔 망각한다.

갑작스런 말이지만 영화 [그래비티]나올 때 삶에 대한 예찬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허나 글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삶을 바라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 지라 [그래비티]의 결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끝내 삶의 집중, 예찬으로 끝나는 영화 엔딩은 지나친 예찬의 사각지대로부터 온 묵직한 질문에 우리 스스로를 취약해지게 만들 수 있다. 나는 그래서 사각지대 없는 회색시선을 꿈꾸는 거고.

나는 지금이 그렇다. 회색. 딱히 위험하지도, 안전하지도 않은 상태.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친척들은 그래서 내 걱정을 많이 한다. 내 반응이 그렇게 에너지 넘치진 않으니까. 그렇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내 삶을 이해하며 "얼마나 힘들겠어"라 말하고, "그땐 몰랐다"라며 헛말로 나를 자극했던 것에 사과하는 분도 있다. 허나 내게 상처가 있어도, 나는 그 말로 치유되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무언가가 있다면 이젠 그냥 바라보고 가끔 꾸짖고 그냥 같이 껴안고 사는 거지.

그래서 나는 오늘 일어났고, 내일도 일어날거다. 내 식대로 살면서 나는 망가질 거고, 그 끝은 좋지 않을지 모르지만, 뭐라고 해야 하나... 이젠 그냥 "그래"라고만 생각하고, 표면적으로는 크게 반응하지만 내적으로는 별 생각이 없다. 블로그에서조차 진담으로 쓰지 않고 호응만 해주고 마는 걸 보면, 나는 저 우주 너머로 사라지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분명한 사실이 있다면, 그냥 이게 삶이라는 거다. 딱히 빛날 것도 없고, 위험하지만 필요한. 아름답다는 평가는 지나치다. 그 말에 현혹되어 희망을 품다 큰 절망에 사라지는 사람도 많이 봤으니까. 나는 그냥 황무지같은 삶에서 내가 앞으로 조금 더 살 수 있는 우물을 찾으러 해메는 사람이다. 근데 이 세상에 나만 그럴까? 나는 그 질문을 하고 싶었다.










3
어떤 사람들은 내 하는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동감해준다. 어떤 사람은 잘 생각했다고 말해주지만, 나는 모르겠다. 나는 내가 잘 생각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으니까. 내가 하는 이야기도, 그냥 속에 담아둔 이야기 이것저것 꺼내는 거지, 그 이상의 이유는 찾은 적이 없다.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가끔은 그 밈이 내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다.

덧글

  • G-32호 2019/11/09 20:55 #

    언브레이커블이라는 히어로 영화 안같던 히어로 영화가 생각나네요. 주인공이 천하무적인데 물이 유일한 약점이었죠.
  • 로그온티어 2019/11/09 21:00 #

    그러고보니 저 말이죠, 여기저기 높은 데서 뛰어다니고 산타고 건물도 타고 다녔는데 뼈한번 부러져 본 적이 없네요. 힘은 없지만 민첩이 ALL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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